4월 5일은 청명(寒食)으로 고향 북쪽에서는 공휴일이다. 산에 산에 꽃이 피는 시기이다. 남쪽에서는 벚꽃이 한창이다. 이 시기 북쪽 고향에서는 조상의 묘부터 살핀다. 묘소 주변을 정돈하거나 혹은 묏자리가 좋지 않거나 먼 거리 오가기가 불편하면 청명날에 맞추어 이장(移葬)을 한다. 떡이며 부침이며 과일 같은 구하기 힘든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서 산으로 오른다. 이러한 제례의식에 참여 못하는 사람들은 산에 갈 이유가 없는, 조상의 묘가 없는 사람들이다. 북쪽 고향집도 조상묘가 없어 청명날이면 아이들을 대동하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제상을 차려놓고 집안에서 제사를 한다. 할아버지는 중국 장춘 어디에 묻혔고, 기일(忌日)도 모르는 장손인 아버지는 막연하게 비슷한 날을 추정했다. 생전에 좋아했다는 담배를 상위에 놓으면 신기하게도 사람이 흡인하는 것처럼 반짝이며 타들어갔다. 어머니는 제상 차리는 것을 거들면서도 못마땅해했다. 사진도 없는 제상에서 부모님들은 눈물을 보였다. 나에게는 고향이지만 부모님에게는 타향이고 두만강 건너 정든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인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슬픈 것도 딱히 기쁜 것도 몰랐던 청명(寒食
요즘 젠더 갈등과 페미니즘 토론이 뜨겁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이슈의 논란에 기성세대와 청년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여성가족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 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반대쪽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성차별, 성폭행 등을 이유로 들면서 대안도 없이 폐지하려 한다고 날 선 토론을 했다. 여성으로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전자의 주장 또한 일리가 있다. 젠더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활동들이 소명을 다했다면 어떤 시대적 소명으로 여성들을 불러낼 것인가. 여성의 사회적 참여문제, 현존한 성폭력, 성추행, 인구절벽 등 여성문제가 정치의 쟁점이 된다. 여성이 무엇이기에 정치적인 논쟁이 되는 가? 인류의 보존에는 여성역할이 크다. 냉동된 정자가 아무리 많아도 여성의 몸을 빌리지 않고는 이 세상에 올 수가 없다. 그럼에도 신체구조상 강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억압했다. 파괴적인 남성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보호본능이 강한 여성들은 그것을 방지한다. 그래서 가산점을 주고서라도 부처에 여성비율을 높이려는 이유이다. 밥상도 같이 못했던 남녀가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는다고 평등하게 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한부모가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
神은 세상 모든 만물을 주관할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 그리고 창조한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꽃을 주었다. 꽃이라 이름 불러주기 전에는 몸짓에 불과했으나 알맞게 불러 줌으로써 무엇이 된다. 흔들리며 피는 꽃도 있고 이름을 불러줌으로 꽃이 되기도 한다. 이것을 생물학적 성(性)과 사회학적 성(性)으로 구분하면 젠더(gender), 섹스(sex)가 된다.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불러내고 응답함으로써 완전한 무엇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균형이 깨지면 갈등이 생기고 권력과 힘에 의한 폭력이 생기는 것이다. 여성은 꽃 인가?라고 물으면 남북한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말할 것이다. 남쪽사람은 ‘빵과 장미’ 아니면 다른 무엇일 것이다. 북쪽출신인 나는 노랫말 가사를 생각한다. 여자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때 남쪽남자는 ‘너 나와 친구할래, 아니면 남자할래’고 물음으로써 자신이 남자임을 확인시킨다. 북쪽남자는 무엇이라고 할까. ‘너 나와 동무할래 아니면 오빠할래’고 하여 자신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근접시킨다. 연애하는 과정에도 오빠가 아니라 동무라고 하기도 한다. 동지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고 동무는 친구이다. 동지라는 말보다 동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동무에서 연인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정월에 뜨는 저 달은 새 희망을 주는 달, 정월대보름은 둥근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보름달을 보며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기를 소원하며 조상들은 이 날에 쥐불놀이, 풍물놀이, 윷놀이를 하는 풍습이 있다. 태양을 이용해 만든 것이 양력이라면 달을 기준으로 만들었다하여 달력(曆)이다. 음력과 양력을 모두 명절이라 할 수 있으니 달이 해를 품든지, 해가 달을 품던지 지리적 환경에서 비롯된 력(歷)에 대한 인식이 그렇다. 음력설과 정월대보름을 즐기며 노는 풍경은 두만강을 넘어 조선족동네에 살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가족끼리 모여서 물밴새(만두)를 빚고 화토와 카드게임을 하며 밤새껏 며칠을 질리도록 논다. 0시 기준으로 폭죽소리가 요란하고 밤하늘은 환상의 색상으로 별천지가 된다. 놀이라야 마작을 주무르고 화토를 치고 술에 취하는 것이다. 남쪽에서의 음력설은 폭죽소리는 없어도 가족이 모여 명절을 즐긴다. 소비할 음식을 사고, 밤새워 전을 부치고 제사를 지내는 주부들의 손길만 바쁘다. 그리고 선물을 준비하며 새해축하 문자를 보내고 도로에는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선다. 북쪽 고향에서의 70~80년대에는 빗과 칫솔로 물감을 뿌려 종이에
북쪽의 2월은 28일이라는 가장 적은 일자에도 가장 많은 式(식)과 놀이가 있다. 式에는 기념일과 민속명절이 있다. 민속명절로는 정월초하루와 대보름이 있고 기념일로는 2월 8일 건군절과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이 있다. 기념일에는 각종 행사에 의식적으로 참가해야 하지만 민속명절에는 취향에 따라 한바탕 놀아볼 수 있는 날이다. 2월에 빨간 날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軍(군) 창건일이 두 개나 있다. 2월 8일은 1948년 생겨난 것이고 4월 25일은 1932년 김일성이 만주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한날이다. 2018년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4월 25일은 창건일로, 2월 8일은 건군절로 되었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軍을 기념하는 명절이 두 번이나 있어 2월에는 휴일이 하루 더 늘어났다. 그리고 민속명절인 음력설은 80년대 후반부터 휴일로 지정되었고, 대보름은 2003년에 휴일로 지정되었다. 그리하여 2월에는 총 4번의 儀式(의식)을 치른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이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이다. 이때 식료공장에서는 주민들에게 공급할 제품을 만든다. 제품은 날짜를 맞추어 생산하는데 자재와 조건은 우선적으로 보장해 준다. 그리하여 2월 16일에는 적
새해를 축하합니다! 만나면 서로가 주고받는 인사이다. 이날에는 궁색한 살림일지라도 새 옷을 사 입고 낡은 옷이라도 아주 깨끗하게 손질해서 입는다. 마지막 밤인 31일에는 눈썹이 희어진다고 자정이 되기까지 잠들지 않는다. 그렇게 맞이한 새해 첫날에는 정갈하게 만든 음식으로 조상들에게 먼저 제사를 지낸다. 추석처럼 요란하지 않고 간단하게 한다. 가장 좋은 것을 나름의 규정에 맞게 상위에 올려놓고 술잔을 돌리고 다음에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한다. 남쪽에서처럼 해돋이를 보면서 소원을 말하는 풍경은 없다. 그러나 설날 아침은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다. 색다른 음식을 만드는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절구에 떡 찧는 소리도 들린다. 떡이 만들어지면 아이들에게 들려서 이웃에 보낸다. 그러면 이웃은 그릇에 떡을 담아 보낸다. 이렇게 오고 간 떡 그릇이 보낸 만큼 다시 돌아온다. 식사가 끝나고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동네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러 다닌다. 아주 작은 세뱃돈을 주는데도 신나서 다닌다. 여자들은 설날에는 이웃집 출입을 삼간다. 남자들은 흥취가 돋아 스승의 집을 찾거나 친한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신다. 또 다른 풍경으로는 설날 아침에 누가 먼저 수
처음으로 오피니언의 필자로 원고의 한 지면을 맡았을 때 새해에도 이어서 지속적으로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다. 감사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쓰려했으나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2021년을 돌아보며 우선 경기신문에 감사드리며 2022년에는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다는 것을 다짐한다. 그동안 겪었던 좌절을 여기에 모두 적을 수 없지만 2021년은 특별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절망했을 때, 원하는 길은 아니었으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행동에 옮기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 어떤 해보다 값지고 보람 있는 것들을 얻었다. 귀한 경험을 얻었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 생업을 포기해야 했고 그만큼 가난해질 용기가 있어야 했다. 반듯한 길을 가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만들어가야 하는데 아무리 수고롭게 노력을 해도 얻을 수 없으니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감당해야 했다.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이 없었기에 잘하려고 노력한 것뿐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020년 비영리 단체인 ‘내고향만들기공동체’를 설립했을 때 경험도
가난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죽 이야기, 부족함이 없을 때 먹으면 건강식이지만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는다면 슬픈 이야기가 된다. 뜨거우면 불어서 먹고 식으면 그냥 음료 마시듯 ‘쉬운 죽 먹기’다. 남쪽에서 죽은 아주 고급지게 만든다. 배부른 곳에 와서 다시는 죽을 먹지 않으리라 했으나 별식으로 자꾸 권하기에 먹는데 그때마다 죽의 맛에 감탄한다. 죽에 대한 몇 가지가 기억을 떠올려 보면 가난한 때에 싫도록 먹었던 것이 먼저 떠오른다. 그 시기 먹었던 죽은 식욕에 대한 원초적 해결을 위한 것이기에 처절하다. 아주 작은 양으로도 살릴 수 있었는데, 영양실조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어미의 곡성, 떠도는 아이와 노인들, 죽느냐, 사느냐가 생사를 가르니 부족한 식욕이 식탐을 만들어 먹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죽 한 그릇이 소원일 때가 있었다. 곡기 없는 죽을 먹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면 생명이 경이롭기도 하다. 이 시기 먹었던 죽은 ‘맛’보다는 ‘생존’이었다. 죽을 ‘맛’으로 먹었던 때도 있다. 항상 가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넉넉할 때는 낭만도 있어 솥을 둘러메고 냇가로 나가 고기를 잡아 즉석에서 어죽을 끓여먹고 한바탕 놀 때도 있었다. 청진이나 해변가 사람들
고향은 지척에 있어도 오갈 수 없으니 지구의 반대편보다 더 멀리 있는 듯하다. 때로는 미움에 온 몸을 불사르다가도 때로는 술 한 잔에 목메는 날도 있다. 아니 생각하려 해도 기억을 소환하지 않고서는 나도 모르는 나를 이해할 수가 없어 취중에라도 목 놓아 불러보고 싶은 것이 고향이다. 술이라면 제일 먼저 아버지를 떠올린다. 세상살이 어려워 숫 덩이 같은 마음이라도 술 한 잔으로 해독할 수 있다며 이유를 붙여가시면서 드신다. 어떤 술을 마실가. 대부분 누룩을 발효시켜서 만든 증류이다. 알코올을 얻으려면 먼저 누룩이라는 곰팡이 균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은 화학공장에서 나온다. 시장에 나온 것을 사다가 재료(가루)와 섞어 놓으면 곰팡이 균이 자라고 두 번째로 독에 넣고 보름 정도 지나면 술 익는 소리가 엄청 요란스럽다. 뚜껑을 열어 향긋한 냄새가 나면 잘 익은 것이고 시큼한 냄새가 나면 술도 시어져 버린다. 가마에 넣고 열을 가해 오르는 증기를 냉각시키면 관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것이 술이다. 여기에 세신 뿌리나 오미자를 넣으면 정품보다도 더 맛있는 향기로운 술이 된다. 이 것을 서민들이 먹는 농태기(소주)라고 한다. 식량이 귀한 때일수록 술에 대한 수요가 더욱 높
때 아니게 첫눈이 내리니 밭에 있는 배추가 얼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서둘러 김장김치를 해서 비여 있는 냉장고에 채워 넣어야 마음이 놓이는 이것은 무엇일까. 김치를 먹어야 속이 시원히 풀리는 생리적 유전자가 있어 가을이 깊어지면 배추 가격부터 알아본다. 입안을 시원하게 해주는 김치를 북쪽 사람들은 쩡~ 하다고 표현하고 남쪽 사람들은 시원하다, 또는 맛있다고 말한다. 겨울동안 먹어야 할 맛의 즐거움 중 하나로 김장김치 담그기는 의례행사처럼 공동체가 모여서 만드는 것으로 오래된 전통이다. 새싹이 돋아나는 봄부터 시작하여 가을까지 밭에서, 들에서 나는 채소는 모두 김치가 될 수 있다. 쩡~ 하고 시원함은 1차 발효에서 생기는데 채소와 소금이 만나는 과정이다. 쩡~ 하고 시원한 맛은 양념인 고춧가루, 마늘을 아주 적게 사용하는 것이 비법이다. 이것은 한반도 북부지역인 함경북도 량강도, 자강도에서 김치 만드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렇게 만든 김치는 추운 지역적 환경과 어울리며 고유한 맛을 낸다. 갓이나 영채 김치가 젓갈을 사용하지 않아야 제 맛을 내는 것과 같다. 동해안에 위치한 함경도와 강원도, 서해안의 평안도, 황해도 지역에서는 2차 발효과정인 감칠맛을 내는 젓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