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보이지 않는 존재물에 공포를 느껴왔다. 예를 들어 잡귀 잡신이 그러했다. 귀신은 보이지 않으니 조금만 부정한 일을 저지르면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귀신을 몰아내는 온갖 비방술에 애를 썼다. 문명이 발전하고 첨단기술이 만연한 오늘날에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 국력을 소모하고 있다. 정체는 알고 있으나 그걸 막을 방도가 없다. 기껏 할 수 있는 게 마스크를 쓰고 바깥출입을 삼가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도 거리를 두고 만나야 한다. 이 고약한 질병 앞엔 강대국도 맥을 못 쓴다. 어떤 강대국의 지도자도 이번 사태를 잠재울 수 없었다. 영웅이 필요한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똑똑하고 영리하며 유능한 사람이 우매한 민중들을 인도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지금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가장 안전한 길은 자신이 자기를 지키는 길밖에 없다. 기업도 나라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 이럴 때 생각나는 우화가 있다. 어느 왕국에 나이 많은 임금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임금은 한 신하를 거느리고 정원을 걷고
나는 일주일에 두서너 번 산을 오른다. 산기슭에 작은 마을이 있다. 그곳엔 집집이 조그만 텃밭을 가꾸고 있다. 텃밭에는 토마토, 상추, 고구마 같은 작물들이 심겨 있고, 텃밭 변두리 잡풀 속에는 호박넝쿨이 우거져 있다. 오늘 아침 따라 밭두렁을 타고 함초롬히 피어있는 호박꽃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슬 머금은 호박꽃이 찬란하기가 그지없다. 호박은 농부가 가꾸는 곡물 중에서도 가장 손이 안 가는 작물이다. 그저 이른 봄에 아무 데나 구덩이를 파고 호박씨를 심는다. 그 위에 오물을 한 바가지 끼얹으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호박은 혼자서 뿌리를 뻗고 줄기를 뻗어 산지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이맘때면 어지러이 꽃을 피운다. 암꽃은 화려하고 수컷은 꼿꼿하며 단출하다. 호박꽃에도 벌 나비가 날아든다. 벌을 끌어들여도 잔잔한 꿀벌 따위가 아니다. 말벌이나 왕벌이 호박꽃을 찾아든다. 그런데 왜 호박꽃인가? 정말 호박꽃이 그렇게 못난 꽃인가? 사람이 키우는 작물 중에 호박꽃처럼 화려하고 장대한 꽃이 없다. 벼도 꽃을 피우고, 고구마도 꽃을 피우고, 보리도 꽃을 피운다. 그 모두가 호박꽃에 비하면 견줄 바가 못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못난 여자를 가리켜 호박꽃에 비유
아침에 산에 오르니 아까시꽃 향기가 코를 찌른다. 아까시꽃이 피면 여름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아까시나무를 심은 곳은 고종황제 때 미국회사에서 경인 철로를 놓을 때였다. 철길을 내기 위해 산기슭을 잘라내니 산사태가 날 염려가 많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당시 중국에서 번식하던 아까시나무를 가져다 심었다고 한다. 그 아까시나무가 강한 번식력으로 이 나라 산천을 뒤덮었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 가도 아까시나무가 없는 곳이 없다. 그런 아까시나무가 이제 천덕꾸러기로 변했다. 아까시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다른 수종을 심고 있다. 그러나 이 나무는 아무리 제거해도 그 끈질긴 생명력을 완전히 몰아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아까시나무는 척박한 땅 자갈밭에서도 잘 자란다. 뿌리에서 스스로 자양분을 만들어 그 뿌리를 넓고 길게 뻗쳐 나간다. 산소 주변에 아까시나무가 있으면 그 뿌리가 무덤 속까지 파고든다며 꺼려했다. 심지어는 불길이 드나드는 구들 아래까지 아카시아 뿌리가 뻗는다고 집 주변에는 아까시나무를 심지 않는다. 사실이 그러하다. 본래 아까시나무는 척박한 땅에 심는다. 아까시나무는 번식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밟아도 솎아내도 일어서는
벗은 나무에 눈부신 봄꽃잔치가 벌어졌다. 곱다. 정말 곱다. 그러나 이 봄꽃잔치가 얼마나 갈 것인지. 금방 피었던 벚꽃이 잠시 눈을 돌린 사이에 낙화 되어 눈꽃처럼 흩날린다. 떨어진 저 꽃잎 자리에 어느새 녹음이 돋아난다. 벌 나비가 날아든다. 햇볕도 따갑다. 저 무성한 산림, 저 무수한 초목들, 푸른 하늘 아래 산천이 참으로 아름답고도 곱다. 그야말로 따사로운 햇살 아래 세상천지가 변하였다. 참으로 호시절이다. 허나 내 마음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외롭고도 그리운 마음에 하루에도 열두 번 창밖을 내다본다. 나에게도 저런 호시절이 있었던가. 아무렴 있었고, 말고 창밖에 내비치는 꽃봉오리 같은 나의 아름다운 시절도 있었다. 내가 살던 시골은 너나없이 가난했지만 나는 그 가난 속에서도 늘 꿈을 꾸어 왔다. 언젠가는 저 십 리 밖 읍내에 나가서 시골 장터도 구경하고 싶었다. 읍내 아이처럼 예쁜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잠시 아버지를 따라 읍내에 나가서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양장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 꽃무늬가 화사한 원피스를 맞춤옷으로 내게 입혀주셨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동화 속 공주님 같
가는 세월을 누가 막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늙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나도 세월을 느낀다. 팽팽하던 피부도 웃을 때 보면 잔주름이 가득하다. 그런 내가 한심해서 가끔 친구들한테 물어볼 때가 있다. “얘 내가 부쩍 늙어 보이지.” 그럼 친구들은 말한다. “아냐 넌 나이보다 젊어 보여.” 그럼 나는 피식 웃는다.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한다. 위로의 말이겠지. 절로 늙어가는 내 모습을 솔직히 인정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늙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천날 만날 마주 보고 사는 내 남편도 옛날 같지가 않다. 늘 피곤하다고 한다.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픈지 주말이면 가던 등산도 그 햇수가 줄어들었다. 그런 남편도 먹고살기 위해서 출근길에 나선다. 젖은 낙엽처럼 어깨가 축 늘어져 현관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참으로 안쓰럽다. 그날 밤 따라 남편은 후줄근히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당신 솔직하게 말해봐. 지금 내 모습이 어때? 나 진지하게 묻는 거야.” “뭘요?” 하고 내가 다그치자 남편이 말했다. “솔직히 내가 조금 늙어 보이지?” 나는 남편의 물음이 하도 황당해서 그냥 웃어 넘기려했다. “아냐, 아냐. 진지하게 묻는다고 했잖아. 날 봐
오늘날 도깨비는 아이들 동화 속에서나 등장한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도깨비는 살아 있었다. 도깨비는 주로 후미진 마을 어귀나 상엿집, 공동묘지 같은 데 살고 있었다.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면 여지없이 도깨비가 나타나 길가는 길손의 혼을 뺏었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도깨비는 읍내 오일장이 서는 밤이었다. 술에 취한 동네 어르신이갈치 몇 마리를 새끼줄에 꿰차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오면 다리가 하나뿐인 도깨비가 나와서 시비를 붙었다. “나하고 씨름 한판 붙자.” 도깨비의 빈정거림에 술에 취한 어르신은 도깨비와 밤새 씨름을 한다. 죽을힘을 다해 도깨비와 힘겨루기를 하던 어르신은 날이 희뿌연 해서야 도깨비한테서 풀려났다. 날이 새면 밤새 씨름판을 벌인 동네 어르신이 돌아와 도깨비와 겨룬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가시밭을 얼마나 누비고 다녔는지 얼굴에는 상처 자국이 선연하고, 장에 간다고 차려입은 무명바지저고리는 온통 흙투성이로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도깨비에 얽힌 얘기는 우리 민족의 혼처럼 도처에 깔려 있었다. 절구 방망이 도깨비, 달걀 도깨비, 낮도깨비, 밤도깨비, 망태 도깨비 등 주로 오래된 물건이나 지팡이가 도깨비로 변했다. 그 도깨비가 언제부터인
선생님이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곤충실험을 하게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곤충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관찰을 시작했다. 그런데 유난히 선생님의 눈을 끈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책상 위에 거미 한 마리를 올려놓고 큰소리로 명령을 하고 있었다. “기어! 발발아, 기어!” 그러자 가만히 있던 거미가 기어가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아이한테 가서 물었다. “넌 지금 거미로 뭘 하는 거니?” 그러자 아이가 선생님한테 말했다. “얘 이름이 발발이에요. 내가 기어가라면 기고 서라면서요.” “정말?” “보세요. 발발아 기어!” 그러자 거미가 기어가기 시작했다. “서!” 그러자 기어가던 거미가 멈춰 섰다. 그러던 아이가 거미의 다리 하나를 떼어냈다. 그리고는 또 소리를 질렀다. “기어!” 거미는 기어갔다. 아이는 거미의 다리 하나를 또 떼어냈다. “기어!” 거미는 뒤뚱거리며 기어갔다. 그러던 아이가 거미의 다리를 모두 떼어내고 소리를 질렀다. “발발아 기어! 기어!” 그러나 다리가 뜯겨나간 거미는 기어가질 못했다. 마침내 아이가 선생님을 향해 말했다. “관찰 다 했어요.” “그럼 관찰 결과가 뭣이니?” 아이는 관찰 결과를 말했다. “예. 거미는 다리를 다 떼어내면
이른 아침 산에 올랐다가 느긋하게 내려온다. 그새 바람이 바뀌었다. 살갗을 파고드는 꽃샘바람이다. 그야말로 봄바람이다. 바람치고는 이놈의 봄바람이 조금 묘하다. 따지고 보면 봄과 바람은 엄연히 다른 의미의 명사다. 그러나 이걸 붙여서 하나의 합성어를 만들어 놓으면 그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사실 우리말에 바람이 들어가면 왠지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느껴진다. 돈바람이 그렇고 치맛바람이 또한 그렇다. 봄바람에 처녀·총각이 바람을 피우는 건 괜찮지만 늙은이가 늦바람을 피우면 패가망신을 하기 마련이다. 그중에 듣기 좋은 바람이 바로 봄바람이다. 기나긴 겨울이 가고 산천초목이 눈을 뜨는 계절이니 오죽 반갑지 않으랴. 내 나이 이순(耳順)을 넘었건만 아직도 봄바람이 불면 가슴이 설렌다. 봄이 주는 이미지는 낭만과 쓸쓸함이 함께 한다. 봄은 그만큼 여린 감정의 선을 잔잔하게 흔든다. 우리 조상들은 봄을 일 년이 시작되는 계절로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한 해를 말할 때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한다. 한겨울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대문짝에 써 붙이진 않는다. 반드시 봄에 써 붙인다. 아마 한 해의 시작이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 같다. 우수 경칩이 지나면 산야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고 보면 창밖의 풍경이 달라졌다. 열세 살 소녀의 젖가슴처럼 동그란 목련의 꽃봉오리가 눈길을 끈다. 어디 이뿐이랴. 창문 아래 수목들이 그새 움을 틀었다. 새싹이 돋는 걸 보니 봄이 완연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봄은 봄이로되 바람은 아직 겨울이 남았다. 이럴 때 내 앙가슴도 왠지 설렌다. 더구나 이 겨울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재앙에 휩싸여 있다. 온 나라가 들썩인다. 일어나면 전염병 이야기에 마스크 이야기다. 사회적 거리를 두어 사람을 만나도 2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대화를 하라고 한다. 도시도 한산하다. 길거리에는 민중의 수도 줄었고 지하철을 타도 승객들의 자리가 텅텅 비었다. 참으로 암울하고 엄습한 겨울이다. 그런데 이 암울한 겨울의 벽을 뚫고 보이지 않는 계절의 변화가 왔다. 봄이다! 봄이로다! 봄이 오니 봄병이 든다. 잊었던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뜨거운 햇살의 이국의 풍경이 나를 그냥 두지 않는다. 꼭 해외여행이 아니래도 좋다. 떠나고 싶다. 어딘가로 훌쩍 마음 맞는 사람과 은밀한 여행이라도 하고 싶다. 이렇듯 봄이 오면 매화가 활짝 핀 섬진강 변 풍경이 떠 오른다.
태초에 하늘이 사람을 만들 때 앞만 보고 살게 만들었다. 사람의 생각도 앞만 보고 산다. 과거사만 더듬고 사는 사람은 십중팔구 낙제 인생들이다. 사람은 걸음을 걸어도 앞으로만 걷는다. 표정을 지어도 앞에 있는 얼굴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낸다. 좋을 땐 입으로 소리 내어 웃고 싫을 땐 눈살을 찌푸린다. 그리고 감정이 복받치면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른다. 악수를 할 때도 얼굴을 마주 보고 손을 잡는다. 그렇다. 싫고 좋은 표정들이 앞면인 얼굴에 쏠려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현재 상태를 알 수 있다. 몸이 아프면 안색이 편안하지 않다. 기분이 나쁘면 입이 댓 발이나 삐져나와 있다. 행복하면 표정이 밝다. 이렇게 세상만사가 그 사람의 얼굴에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도 알 수 있다. 만물 중에 감정을 얼굴로 표현하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 가히 얼굴 하나로 사람은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과연 그러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얼굴로만 감정을 표출하지는 않는다. 뒷모습으로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쓸쓸하고 외롭고, 화나고 분노에 찬 모습들이 뒷모습에서도 능히 드러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사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