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사회의 진보와 향상을 위한 진지한 첫걸음마다, 거기에는 반드시 그 주된 원인으로서 신앙의 역할이 있었다. 그러므로 신앙에 기초하지 않은 모든 가르침은 사회의 개선에 언제나 무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가르침이 훌륭한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방식에는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훔친 불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니)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고 건강한 사회 기구를 위한 첫걸음은 언제나, 땅에 대한 당연하고 평등하며 빼앗을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 물론 그것이 전부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럼으로써 그 밖의 모든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 그 보장이 없는 한 다른 모든 것은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헨리 조지) 사회는 공통의 신앙과 공통의 목적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사회적인 활동은 종교에 의해서 성립된 원칙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다. (마치니)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다. 어쩌면 “옛 성인들에게서 배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
어떤 사람이 죽어서 그 영혼이 하늘나라에 이르자, 그 앞에 온몸이 고름투성이에 추악하고 더럽고 소름이 끼치는 여자가 나타났다. “너는 도대체 누군데 내 앞에 나타나 내 길을 막느냐?” “나는 너의 행실이다.” (페르시아 속담) 중요한 것은 선한 행실에 대한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천이다. (탈무드) 착한 일을 하고, 자비롭고, 온화하고 겸손하며, 좋은 말을 하고, 선한 일을 생각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항상 배우며, 항상 진실을 말하고, 분노를 억제하고, 만족을 알고 인내심이 강하며, 친절하고, 웃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와 스승을 존경하는 사람, 이들은 모두 선인의 벗이요 악인들의 적이다. 거짓을 말하고, 훔치고, 음란하고, 속이고 욕하고, 악한 일을 생각하고, 오만하고 게으르며, 이웃을 중상하고, 인색하고 무례하며, 파렴치하고, 화를 잘 내고, 남의 것을 가로채며, 복수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고, 질투심이 강하며, 미신에 빠지는 사람, 이들은 모두 악인의 벗이요, 선인들의 적이다. (페르시아의 교리문답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미루지 말라. 왜냐하면 죽음은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마쳤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불쑥 찾아오기 때문이다. 네가 이 세상
그 사람이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하는 것만큼 그 사람의 인격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은 좋은 감정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은 더욱 더 좋은 감정이다. 사람들이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크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에게는 숨길 수 있지만 신에게는 숨길 수 없다.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져서 세상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예수) 아무것도 감출 필요가 없는 삶, 그와 동시에 자기가 한 일을 사람들 앞에 특별히 자랑하지 않는 삶을 살라. 신의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사람들의 평판에 따라 울고 웃지 않는다. 사람은 공기의 숨도 쉬지만 또 정신의 숨을 쉬어야 한다. 정신의 숨을 못 쉬면 공기가 콧구멍으로 드나들어도 산 사람이 못 되고 죽은 사람이다. (함석헌)/ 주요 출처 :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생각한다. 생각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그 생각은 합리적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어떤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에 대해, 신에 대해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라. 그저 닥치는 대로 잡다한 생각을 하지만, 자신의 영혼과 신에 대한 생각만은 하려들지 않는다. 그들은 춤에 대해, 음악에 대해, 노래에 대해 생각하고, 건축에 대해, 부에 대해, 권력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서 부자와 권력자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대체 인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파스칼) 인간의 중요한 의무 중의 하나는, 우리가 원래 하늘로부터 받은 이성의 빛을 최대한 빛나게 하는 데에 있다. (중국의 지혜) 진정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부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서 말하는 가치에 이끌리지 말고,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율적인 정신적 탐구욕보다 존엄하고 생산적인 것은 없다. 무엇보다 먼저, 인생의 모든 일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하여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들을 죽이거나 괴롭혀서 죽음에 이르게 하지 말라. 살아 있는 모든 것 속에 너 자신이 깃들어 살고 있음을 알라. (부처) 자연은 우리를 같은 재료로 같은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내보냄으로써, 우리를 형제로 만들었다. 자연은 우리 속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불어넣고, 우리를 친구로 만들었다. 또한 자연은 우리에게 정의를 실천하도록 만들었다. 자연은 남을 돕기 위해 우리의 손은 내밀도록 만들어져 있다. 우리의 하나됨은 수많은 돌로 지은 돔과 같은 것이다. 만약 돌들이 서로에게 기대지 않는다면 돔은 이내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세네카) 나는 인간과의 일체감을 똑똑히 의식하고 느낀다. 또 그러한 일체감은 비록 미약하기는 하지만 동물에게서도 느낀다. 곤충이나 식물의 경우 그 일체감은 미약해지고, 미시적인 존재와 인간의 감각을 넘어선 초대형 존재에 이르러서는 그 일체감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나에게 그 일체감을 느끼는 감각기관이 없다고 해서, 이들의 일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과의 유대감을 갖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너 자신으로부터 제거
예지의 조건은 도덕적 순결이며 예지의 결과는 정신적 평화이다. 선한 사람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보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에 더 마음을 쓴다. 그는 말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내 일이고,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느님의 일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마땅히 할 일을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이내 싫증을 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육체적으로 누구보다도 약하다고 느낄 때도, 정신적으로는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 (류시 말로리) 뭔가 슬프고 괴로운 일이 일어났을 때는, 먼저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하라. 두 번째는, 전에도 여러 가지 일로 슬퍼하고 괴로워했지만, 지금은 그 일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것을 생각하라.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너를 슬프게 하고 괴롭히고 있는 일은 하나의 시련에 지나지 않으며, 그 시련을 발판으로 정신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사람의 정신은 지극히 완전한 상태에 머물 수도 있고, 지극히 타락한 상태에 머물 수도 있다. 좋은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
불행한 정신적 고뇌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모두 끝없는 변화 때문에 영원한 소유(관계)를 허락하지 않는 사물(인간)에 대한 우리의 집착 탓이다. 오직 영원하고 무한한 것에 대한 사랑만이 우리의 마음에 순수한 기쁨을 준다. 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신은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자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신을 본디 사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신을 두려워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은 두려워해야 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인격체뿐이다. 나는 신이 인격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신을 사랑할 수가 없지만, 나 자신이 인격체이기 때문에 역시 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신에 대한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사랑에 대한 사랑이다. 이 사랑이야 말로 최상의 행복이다. 그러한 사랑은 어떠한 존재도 예외 없이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비록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너는 신에 대한 사랑과 사랑의 행복을 잃게 될 것
인간은 누구나, 특히 그리스도교는 더더욱,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서든 재물을 통해서든 언론을 통해서든, 전쟁과 그 준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전쟁과 그리스도교는 양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쟁이란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이는 것이고, 그리스도교는 내가 진정 살기 위해서는 너 또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헌정) 무장된 국가와 전쟁, 이 두 가지가 언젠가는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통치자들이나 이 세상의 권력자들에 의해서는 아닐 것이다. 전쟁은 그들에게 너무나 큰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전쟁은, 전쟁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운명은 자신들에게 달려 있음을 깨닫고, 자신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자, 자신들을 병사로 만들려고 하는 자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그만 둘 때,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하르두엔) 만약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서로 손을 잡고 평화를 지킨다면 우리는 권력자들에게 그들의 병사들이 가져다주는 이익보다 훨씬 많은 이익들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사람들이 온갖 번뇌로부터의 벗어나기 위한 사색과 수련까지 배운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인류의 복지를 위해 일하게 된다. 우리는 권력자의 행복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릴 수 없듯 스스로 칭찬함으로써 평판을 높일 수는 없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면 칭찬할수록 사람들의 평가는 내려가는 법이다. 남들한테서 좋은 말을 듣고 싶거든 스스로 자신의 좋은 점을 늘어놓지 말라. (파스칼) 사상과 그 표현, 즉 언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상과 언어를 가지고 노는 것은 좋지 않다. 속된 사람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드러나도록, 현명한 사람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가려지도록, 언어는 그렇게 주어진 것이다. (로버트 사우디) 자신에 관해 남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결코 마음이 평화로울 때가 없다. 페르시아 사람 사디는 언젠가 아버지 옆에서, 집안 식구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 밤새도록 자지 않고 코란을 읽었을 때의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밤중이 되어, 나는 코란에서 눈을 떼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기도를 드리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코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죽은 것처럼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너도 어서 가서 자도록 해라.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바에는.’” 아첨을 하는 것은, 말하는 자신을 낫
우리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살고 있고, 인류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만약 우리가 우리를 보내신 하늘의 뜻을 실천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좋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달구지를 끄는 말은 자신이 어디로 무엇 때문에, 무엇을 싣고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말이 얌전하고 온순하게 짐을 끌고 간다면 그 말은 자기가 주인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예수는 말했다. 만약 우리가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만 행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가벼운 것이고 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의지를 자신의 의지처럼 실천하라. 그러면 하느님은 너의 의지를 자신의 의지처럼 이루어줄 것이다. 하느님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희생하라. 그러면 하느님은 다른 사람들이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희생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탈무드) 위의 문장을 간단히 줄이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