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언론정책 주도자들이 내뱉는 말들이 소름을 돋게한다. 전임 정부가 임명한 언론기관장 갈아치우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더니,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보도를 계기로 폭주 기관차를 방불케 한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4일 국회에서 “인터넷 뉴스가 가짜뉴스를 퍼뜨리면 그걸 공영방송이 증폭시키고, 이를 특정 진영 편향적인 매체들이 방송을 하면서 또 환류가 되는, 말하자면 가짜뉴스 악순환의 사이클”이라며 “수사 당국의 수사와는 별개로 방송통신위원회 등 이걸 모니터하고 감시하는 곳에서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기자 출신 장관급 인사가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 장제원 의원은 전제 조건을 달았지만 언론사 ‘폐간’도 고려해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의원의 도를 넘는 발언이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신학림의 대장동 인터뷰는 허위 인터뷰라며 “사형에 처해야 할 국가반역죄”라고 했다. 유신정권이나 전두환 군사정부 시대에도 이런 극단적인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정치권의 언론을 향한 살벌한 공격에 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25회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11일 끝났다.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은 우리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됐나?라며 자괴감을 곱씹어야 했다. 동아일보가 8월 14일 전현직 잼버리 준비와 운영에 참가한 전현직 책임자 11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보도했다. 이 가운데 본인이나 소속 기관에 책임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일을 하다 잘못될 수 있다. 개인이나 국가나 잘못을 저지르고 그 잘못이 뭔지도 모르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남 탓으로 돌리면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반면,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할 때는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고, 과도한 질타를 받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솟게 한다. 누가 봐도 이번 잼버리는 국제 망신이다. 근래 우리 사회엔 그릇된 풍조가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 국민의 찬사를 받을 만한 일에는 너나없이 고개를 내밀고, 비판을 받을 일이 발생하면 묵묵부답이다. 책임은 아래로 전가하고 공은 내 것으로 낚아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이 새만금 숙영지 화장실을 점검하고 박수를 받았다”고 썼다. 낯뜨거운 자기 자랑이었다. 이런 일이 왜 벌어질까? 언론 탓이 크다. 정파적 보도
지난 6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논란을 빚고 있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에 대해 사업 자체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양평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고속도로 종점(양평군 양서면)이 김건희 여사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땅 인근(양평군 강상면)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널리 유포돼 있었다. 엄청난 뉴스거리였지만 전통언론은 원 장관의 기자회견 전까지 철저하게 외면했다. 이 기자회견에서 원 장관은 ‘장관직을 걸겠다’ ‘(더 나은) 최종 노선이 있다면 다음 정부에서 하시라‘는 등 장관으로서 격에 맞지 않은 격앙된 태도를 보였다. 폭발성 있는 사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언론 보도가 엉뚱한 경로를 밟고 있다. 계획이 바뀐 과정이 투명했는지, 국토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들의 과잉 충성이 빚은 참극이 아닌지가 관심사인데 검증은 없고 독자들을 정치싸움에 몰아 넣고 있다.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종이 신문을 발행하는 대부분의 대형 신문들이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사안이 지면을 통해 보도된 건 원 장관의 기자회견 다음날인 7일자였다. 원 장관의 발언인 ‘야당 선동에 양평고속도로 백지화’와 야당
KBS가 뉴스의 중심에 섰다. 대통령실이 지난 5일 한전이 전기료와 통합 징수해 온 ’KBS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도록 법령을 개정하라‘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하자, 사흘 뒤 김의철 KBS 사장이 ’수신료 분리징수가 철회되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실 발표가 있자, 조선일보는 ‘KBS 수신료, 전기료와 분리 징수한다’고 확정된 것처럼 보도했다. ‘수신료는 사실상 국민세금···국민 불편 호소 반영’이라는 대통령실 입장만을 부각시켰다. 중앙은 ‘대통령실 KBS 수신료 분리징수 권고···개혁 신호탄?’이란 스트레이트 기사와 ‘대통령실 “KBS 수신료 통합징수, 국민 찬성 0.5%뿐”'이라는 제목으로 해설기사를 내보냈다. 두 신문은 분리징수가 ’개혁‘인지 ’개악‘인지에 대한 검증은 없었다. 동아는 ’대통령실 “KBS 수신료, 전기료와 분리징수를‘이란 제목으로 보도해 가치판단을 배제했다. 권고를 반영한 제목이었다. 해설기사도 대통령실이 제시한 국민 97%가 분리 징수를 찬성한다는 주장과 공영방송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KBS 입장을 균형 있게 반영했다. 한국·경향·한겨레는 첫 번째 사설로 KBS 수입의 45%를 차지하는 수신료 분리징수의 문
“비정상의 정상화 1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1주년을 맞는 5월 10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대통령의 주관적인 평가를 제목으로 썼다. 넓게 보면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긍정적인 33% 내외의 일부 국민 생각이다. 세 명 중 한 명 정도만 수긍한다는 말이다. 다음날인 11일자 5면에는 ‘2년차 국정은 속도 더 내서 변화 체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서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국정 기조에 맞지 않는 관료가 있다면 억지로 설득해서 데리고 갈 필요 없다고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의 발언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알려졌다’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그래서 언론 보도에서 금기시하는 표현이다. 소문을 확인해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대통령실 취재원에게 사실을 확인해 ‘말했다’고 해야한다. 없어져야 할 관행이지만 우리 언론계에서는 이 같은 표현을 사실인 것으로 간주한다. 대통령과 관련된 사안일 경우 더욱 그렇다.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돌아본 해설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기사 일색이었다. 미흡한 부분은 거대 야당 때문이었다는 대통령의 생각만을 그대로 전달했다. 사설도 외교는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 당해서는 절대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4·19혁명 기념식에서 한 발언이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역대 대통령 연설기록 8980건 중 ‘사기꾼’이 언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 세계는 허위 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 이런 것들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가짜뉴스에 얼마나 예민해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 발언 하루 만에 문화체육관광부는 가짜뉴스 신고·상담 센터를 설치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연설한 그날, 세계 언론사에 기록될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미국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폭스뉴스가 투·개표기 제조업체 도미니언사에 우리 돈 약 1조 40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도미니언사는 미국 50개주 가운데 28개주에 투·개표기를 공급했다. 이 배상금은 언론사의 명예훼손 소송금액 중 역대 세계 최고다. 기존 최고액은 2017년 ABC뉴스가 육류 가공업체 비프 프로덕트에 지급한 약 2700억 원이었다. 폭스뉴스는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개표 조작이 있었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 주장을 일방적
요즘 일본만큼 행복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한국 대통령이 화끈하게 무릎을 꿇었다. 두 나라 외교전을 콜드게임으로 장식했다. 그들을 더 기쁘게 한 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전승 우승이다. 멕시코와 준결승에서 4:5로 뒤지던 경기를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6:5역전했다. 영웅은 일본의 이승엽, 무라카미였다. 그는 역전 2루타를 치기 전 4번 타석에 나와 모두 삼진만 당했다. 그래도 감독은 그를 믿었다. 결승도 미국을 상대로 3:2로 승리했다. 9회 1점차 리드를 지키기 위해 오타니가 마운드에 올랐다, 미국의 마지막 타자는 LA에인절스서 오타니와 같이 뛰는 연봉 490억 타자 트라웃. 메이저리그 다섯 번째 고연봉자다. 2020년에는 최고연봉 선수였다. 그를 삼진으로 잡고 경기를 끝냈다. 14년만의 우승이었다. 말 그대로 만화야구였다. 한국야구는 호주와 일본에 져 예선 탈락했다. 대표팀을 향한 언론의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1월 안우진이 WBC 대표팀에 탈락하자 이를 비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추신수 발언까지 옹호하는 듯한 보도가 나왔다. 추신수는 미국의 한 한인 라디오 방송에 출연, “이해하기 힘들다”며 “일찍 태어났다고 선배인가”라고 했다. 김현수
꼭 다루고 싶었다. 그러나 시의성을 잃으면 의미가 반감되는 주제들 때문에 불가피하게 뒤로 미뤘다. 두 달이 다 된 시점에서 이 이슈를 끄집어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갈수록 악화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조선일보가 눈길을 끈 신년기획을 했다.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하나의 나라, 두쪽 난 국민’이란 이름으로 6일간 연속보도를 했다. 1월 3일자 《국민 40% “정치성향 다르면 밥도 먹기 싫다”》는 제목의 1면 머릿기사를 포함, 매일 2∼3면을 할애했다. 기사 내용에는 ‘정치성향이 다르면 본인이나 자녀의 결혼이 불편하다는 답도 42%에 달했다’는 조사내용도 담았다. ‘정치적 양극화가 우리 일상까지 지배하며 국가적 리스크로 떠올랐다’며 우려도 했다. 이 신문은 신년호인 1월 2일자에 윤석열 대통령의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신년호에 실릴 예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2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오마이뉴스와 단독 인터뷰했던 것처럼 특정 언론사와 인터뷰는 상징성을 띤다. 언론의 사회통합 기능은 고전적 가치 중의 하나다. 그런 측면에서 조선일보의 문제 제기는 적절했다. 그러나 원인 진단과 해결책은 공감을 자아내기엔 크게 부족했다. 이 여론조사를
국민의힘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3월 8일 열린다. 하루가 멀다고 기괴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다. 대통령이 지원하는 김기현 당 대표 후보가 ‘미디어를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좋은 교육사례를 제공했다. 김 의원은 ‘배구 여제 김연경과 가수 남진이 자신에게 응원의 꽃다발을 전했다’며 이들과 함께 찍은 연출 사진 한 장을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27일 오전, 중앙일보는 《김기현 양 옆에 김연경·남진 ‘엄지척’···꽃다발 들고 응원갔다》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저를 응원하겠다며 귀한 시간을 내주고 꽃다발까지 준비해준 김연경 선수와 남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린다”는 김 의원의 발언까지 기사에 친절하게 담았다. 뉴스1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김기현 의원은 두 사람과 오래전부터 계속 알고 지내던 사이로 과거에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라는 김 의원측 관계자 말까지 인용했다. 비슷한 기사가 이날 오전에만 수십 건 이어졌다. 다음날인 28일. 이번에는 김연경과 남진을 비판하는 댓글을 나무라며 네티즌을 훈계하는 듯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디지털타임스의 《“식방 언니 소름, 2찍이었나” 김기현 응원한 김연경·남진···사진 한 장에 ‘
언론은 민심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는 당위가 흔들리고 있다. 민심을 반영하려는 언론의 노력이 느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심을 억지스럽게 끌고 가려는 시도까지 서슴지 않는다. 시민들은 언론이 민심을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따랐다. 언론이란 거울에 성에가 두텁게 끼더니, 이젠 거울이 깨질 조짐마저 보인다. 그래서인지 뉴스를 회피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우리 언론은 여론을 반영해야 하는 1차 의무를 등한시한 채, 여론형성(프레임)이라는 힘을 과시하는데 과도하게 집착한다. 그러니 무리수가 따르고 신뢰는 추락한다. 기초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건물 높이만 올리는 꼴이다. 그 사례들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을 기사만 점검해도 확연하다. 이번 설 민심을 전하는 기사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지난 24일 오후 1시 40분. 《“윤석열 정부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실망”···광주 전남 민심, 단단히 뿔난 이유》라는 제목의 디지털타임스 기사가 포털사이트 다음의 뉴스화면에 올랐다. 광주 4명, 전남 2명 등 6명의 국회의원이 전하는 내용만으로 기사화했다. 이 기사는 하루 동안 댓글 4466개가 달렸다. 클릭수 대박 조짐이 보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