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없는 중소도시에 사는 한 구순 할머니는 자식에게 신세 지기 싫다며 텃밭에서 수확해 창고에 보관해둔 농산물을 손수레에 끌고 저잣거리에 내다 판다. 하루 3만 원 남짓 번다. 교통비는 왕복 버스요금 2900원(편도 1450원)이 든다. 짚 옆에 지하철이 있는 수도권의 팔순 할아버지 한 분은 아침 식사가 끝나면 집을 나선다. 거미줄처럼 펼쳐진 지하철을 이용해 춘천, 인천, 동두천, 여주, 아산까지 주요 지역을 찾아 다닌다. 물론 교통비 무료다. 1만 원 들고나가면 하루를 알차게 보낸다고 귀띔했다. 복지 차별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지하철이 적자에 시달려도 무임승차 연령 조정 등 해결책을 말하는 후보는 없다. 오로지 유권자가 많은 수도권 개발 청사진만 난무한다. 충청의 후예고, 경상도의 자식이며, 호남이 사위를 들먹이지만 지역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은 없어 보인다. 정의의 화신처럼 처신하지만 지지율이 4위에도 못들자 후보사퇴라도 할 것처럼 칩거에 들어갔던 후보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공정과 균형은 다 구두선이다. 유권자가 가식을 폭로하고 공약을 제대로 검증하는 언론에 환호하는 이유다. ‘“GTX 속지마세요”···B·C노선 삽도 못 떴는데 E·F까지 남발’
이번 대선에서 눈에 띄게 좋아진 점이 있다. 색깔론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캠페인도 확연히 퇴색되고 있다. 이 자리를 ‘젠더 이슈’나 ‘세대 갈등 문제’가 끼어들 기미는 있다. 선거 때만큼은 국민이 왕임을 실감한다. 응축됐던 민의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선거 진영은 이를 수렴해 어떤 형태로든 해결책을 내놓는다. 국가적 난제도 여론의 힘으로 해결되는 계기가 된다. 대통령 선거 후 6개월은 언론도 승리한 후보의 정책에 비판의 칼날을 유보한다. 이른바 허니문 기간이다. 특정 집단은 표의 응집력을 발휘할 때 그 힘은 배가 된다. 투표율까지 높으면 그 힘은 태풍이 된다. 이번 대선에서 2030 유권자가 그 지위를 확보했다. 지난해 4월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보여준 이 세대의 위력적인 표심 때문이다. 이념이나 지역정서에 매몰되지 않은 이들의 선택은 초미의 관심사다. 이 세대만을 대상으로하는 여론조사까지 나오고 있다.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대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세대 갈등’이 아닌 ‘세대 여론’이 옳다. 안도하던 선거판에 난데없는 ‘멸공’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것도 정치적 언사를 극도로 조심하는 국내 기업풍토에서 정용
삼프로(3PRO) TV를 꼬박 세 시간 동안 시청했다. ‘삼프로가 묻고 정책이 답하다’라는 대선특집이었다. ‘어떤 유튜브 TV길래 여야의 대선 주자 이재명, 윤석열을 불러냈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 들어갔다가 세 시간을 감금당했다. 감금을 자청한 꼴이었다. 정확하게 듣기 위해 재생 속도도 높이지 않고 1.0을 유지했다. 전통 매체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했던 꼰대 수용자였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고백하면 삼프로를 3%로 알았다. 두 후보는 각각 90분 동안 주식과 부동산을 중심으로 집권 후의 경제 정책 비전을 설명했다. 전통 매체들은 설명한 내용 가운데 특정 단어나 일부 내용을 중심으로 인용해 보도했다. 이들의 발언 내용을 심도 있게 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는 “작전주에 투자해 큰돈 벌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윤석열 후보 기사는 “토론 무용론을 펼쳤다”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기자가 두 후보의 90분에 걸친 설명 내용을 다 듣고 기사화했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이 후보는 방송 서두에 주식투자를 해봤느냐는 질문에 “1992년 처음 주식 투자를 하면서 증권회사에 다니는 대학 친구의 권유로 주식을 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작전
월요일 아침 7시부터 8시. 출근 시간대로 포털을 통한 뉴스 소비가 많고 주목도도 높은 시간대다. 지난 3일(월), 이 시간대에 포털 ‘다음’의 뉴스 랭킹 1위는 중앙일보의 ‘“존경하는 박근혜” 우호 발언 이재명…TK지지율 9→28% 급등’이었다. 7시 전까지 1위를 기록하던 한국일보의 생활밀착형 기획기사인 ‘“차 빼지도 넣지도 못하고…” 주차가 괴로운 한국인’을 2위로 밀어냈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로 그날 뉴스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사라져야 할 그릇된 관행,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 제목은 이재명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발언을 한 결과, 지지율이 급등한 것처럼 착각케 한다. 그러나 이 신문이 제목으로 뽑은 TK지역에서의 30%에 근접하는 지지율 급등 데이터는 한국갤럽이 11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조사한 결과였다. 이 후보가 ‘존경하는 박근혜’ 발언을 한 날은 3일, 전주에서 청년들과 소맥회동 때였다. 시기적으로 상관관계가 없었다. 낚시성 제목이었다. 다음은 단장취의(斷章取義) 저널리즘 문제다. 전후 맥락이 무시돼 ‘이재명이 박근혜를 존경하고 있다’는 것처럼 독자들을 오인케 한다. 당시 영상을 확인하면, 이 행사에서 한 청
지난 22일 이재명 39.5%, 윤석열 40%라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윤석열 후보 캠프서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김영환 전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런 엉터리 여론조사를 받아 쓰는 언론도 있다”며 “혹세무민의 여론조사를 규제할 방법은 없는가”라고 했다. 많은 언론이 이 내용을 그대로 기사화했다. 같은 날 개그맨 강성범 씨의 유튜브 채널도 뉴스원으로 등장했다. “정권을 재창출해서 다음 정부가 이 정부를 계승한다면 부동산 폭등에 대한 ‘원죄의식’이 상당할 것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부동산을 잡으려고 머리카락을 세울 것이다. 근데 정권이 넘어가면 ‘우리가 한 거 아닌데’라며 집값을 잡으려는 의지가 낮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이 이 내용을 보도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23일 김종인 씨의 윤석열 선대위 합류 문제가 난항을 보이자 이를 두고 “여당을 견제하는 야당이라고 화력지원을 해주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요지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스스로 정파적 발언을 했음을 자인했다. 이 사례가 아니더라도 그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들은 속보성으로 기사화된
서민(단국대 의대) 교수가 대형사고를 쳤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돕겠다는 의도로 한 발언이 평지풍파다. 지난달 31일 자신의 유브 채널 ‘기생충티브’에서 ‘서민 교수 윤석열 후보의 몸보신을 위해 홍어와 맥주를 대접하다’라는 라이브 방송을 했다. 영상을 소개하는 머리화면(섬네일·thumbnail)에 ‘윤석열을 위해 홍어준표를 씹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윤석열 후보와 서 교수가 맥주잔을 부딪치며 화사한 미소를 짓는 모습도 연출했다. 윤 후보는 ‘민(서민)이 덕분에 산다’고 하고, 서 교수는 ‘대동단결 윤석열’이라고 화답한다. 홍어는 극우 진영에서 호남을 비하하는 차별적 언어다. 치열한 당내 각축을 벌이고 있는 홍준표와 유승민 후보 측은 즉각 반발했다. 윤 후보에겐 전두환 옹호발언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쓰나미까지 덮친 꼴이 됐다. 윤 후보에겐 치명상을,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겐 울분을 토하게 했다. 말그대로 과유불급이다. 서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를 접는다. 죽을죄를 지었다”고 수습에 나섰다. 전공인 기생충학 연구보다 탁월한 정치 감각이다. 1967년 광주 출생인 그가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서민의 일탈에 언론의 책임은 없을까
이재명과 윤석열. 최근 언론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두 정치인이다. 한 분은 여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다른 한 분은 제1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현재까지는 상당히 높은 분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두 대선 후보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재명 후보는 경기도지사 자격으로 19일(월)에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21일(수)에는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야당의원들이 제기하는 대장동 의혹을 해명했다. 주요 종합일간지들은 1면 머리기사를 포함해 많게는 4개면을 할애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중립적 입장을 표방하는 한국일보가 21일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도돌이표로 끝난 ‘이재명 국감’”이 이번 대장동 국정감사를 압축적으로 대변했다. 윤석열 예비후보는 19일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이 많다”며 전두환씨를 두둔한 발언, 이어진 ‘개 사과’와 해명논란이 여당은 물론 야당 내에서도 강한 비판을 받았다. 자초한 위기였다. 전두환 옹호발언에 묻혔지만 언론이 크게 관심을 가졌어야 했던 사안이 있었다. 고발사주 의혹이었다. 19일 MBC를 통해 ‘고발사주’ 의혹 관련, 김웅 국민의힘(송파갑)의원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제가 가면 ‘윤석열이 시켜
정치와 언론은 불가분이다. 정치인은 언론보도 한 줄에 웃고 운다. 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2일 조선일보에 대한 생각을 가감없이 쏟아 냈다. "얼마 전에는 제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일한다는 가짜뉴스를 내보내더니, 이제는 우리 국민과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BTS까지 정쟁 도구로 끌어들였다"며 "선을 넘어도 한 참 넘었다“고 했다. 또 ”조선일보가 언론인지 정파조직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라며 "조선일보는 '조선일보가 언론이면 우리 집 두루마리 휴지는 팔만대장경'이라는 조롱이 왜 나오는지 심각하게 되새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는 듯하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7월 말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지사의 ‘백제 관련 발언 질문’에 답하면서 김 앵커를 향해 “중앙일보 기자가 바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못 알아들으세요?”라며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 전 대표가 중앙일보 편향을 문제 삼기도 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달 ‘고발사주’의혹과 관련해 메이저 언론과 마이너 언론을 구분했다. 인터넷 언론사인 뉴스버스가 고발사주 의혹을 보도하자 “정치공작을 하려면 메이저 언
추석 연휴에 2박 3일 일정으로 고향 여수 어머니 집을 다녀왔다. 고향을 떠나고 42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추석 귀성길이었지만, 이번만큼 대화 소재가 많은 해도 없었다. 그중에서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이는 여야 간 경쟁과 당내 후보 경선이 불을 뿜고 있어, 선거가 지대한 관심사였다. 종이신문 열독자이면서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생이 나에게 물었다. 언론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느냐고. 선거여론조사와 이를 보도하는 언론이 미덥지 않다고 한마디 했다. 호남지역의 최대 관심사는 연휴 직후에 있을 민주당 호남 경선이었다. 무등일보는 연휴 직전인 17일(금),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전남 지지율을 보도해 큰 관심을 받았다. ‘리얼미터’에 의뢰해 12일부터 14일까지 ARS 방식으로 시행한 조사에서 이낙연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오차범위를 넘어 역전했다는 기사였다. 이낙연 후보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지만 이재명 후보를 앞서는 조사 결과는 민주당 경선이 시작된 이후 처음이었다. 2002년 노무현 후보 경선과정을 기억하는 유권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당연했다. 연휴 첫 2일간 포털 정치뉴스를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무등일보가 일주일 전까지 뒤지던 이낙연
지난 4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전·충남을 시작으로 대선후보를 뽑는 순회경선의 신호탄을 울렸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54.8%를 득표해, 27.4%를 얻은 이낙연 전 경기지사를 눌렀다. 정확히 더블스코어 차였다. 다음날 세종·충북(이재명 54.5%, 이낙연 29.7%)도 비슷한 득표 결과가 나왔다. 10월 10일 서울까지 매주말 지역별 경선 결과가 발표되는 정치이벤트가 펼쳐진다. 경선룰 때문에 내홍을 겪고 있지만 야당인 국민의힘도 곧 경선에 착수할 것이다. 바야흐로 선거축제가 시작됐다. 불청객인 그릇된 보도가 어김없이 기승이다. 축제 관전자인 국민은 눈살을 찌푸린다. 무엇보다 특정 후보나 캠프 관계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전령(傳令) 불청객이 활보한다. 기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편파보도가 된다. 첫 순회경선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 3일, 동아닷컴을 비롯한 다수의 언론이 이낙연 캠프의 기자회견 내용을 전했다. "밑바닥 민심을 확인했다. 충청에서 반전의 드라마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선대위원장인 설훈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도 같이 담았다. "충청 도민은 혜안을 갖고 대한민국의 리더를 선택해왔다"라며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충청의 밑바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