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도둑맞은 가난'의 작가 박완서 선생이 살아 있다면 김남국 사태를 보고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자신의 시대에 있었던 특권층의 가난 코스프레는 코스프레로 명명하기조차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1975년에 발표된 소설은 부자들이 많은 걸 갖췄는데도 그것으로 부족해 가난까지 치장 품으로 두려는 세태를 비판한다. 미싱사인 화자는 도금 공장에 다니는 상훈과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동거에 들어간다. 그런데 상훈은 쥐꼬리만큼 월급을 받는 공장 노동자 답지 않다. 씀씀이가 헤픈 것이다. 미싱사는 상훈을 심하게 나무란다. 그러던 상훈은 한동안 잠적했다 나타나 자신을 대학생이자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소개한다. 가난을 경험해보라는 부모의 명에 따라 잠시 공장에 다녔다고 고백한다. 미싱사는 상훈의 말을 듣고 자신의 부모가 가난해지면서 부자에게 휘둘려 가족 네 명이 자살했던 절망보다 더한 절망을 느낀다. 그녀는 소설에서 백미로 꼽히는 혼잣말을 한다.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해 본 일이 없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이런 7
그림을 보며 음악을 떠올릴 때가 있다. 미치도록 좋아하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의 그림을 보면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Gymnopedies)가 흐른다.(느껴진다) 옛 그리스어로 ‘벌거벗은 사람들’이라는 의미인 짐노페디는 슬픈가락이나 어둡지 않고 단음 선율인데 불협화음이 느껴진다. ‘고독’만으로 말해질 수 없는 호퍼의 그림을 부연해준다. 그런데 그의 그림에서 ‘브람스 4개의 소품 op.119 중 1번 인터메조 b단조’를 듣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브람스와 호퍼의 저주받은 사랑. 스승의 아내를 평생 짝사랑한 브람스의 사랑 이야기는 모르는 이가 드물지만, 호퍼의 사랑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살았을 때도 슬펐던 사랑이 후세에 더 슬프다. 호퍼가 살던 시대의 미국은 어떤 곳이었나. 19세기 후반의 미국은 거대한 땅덩이, 천혜의 넘쳐나는 자원, 그리고 프론티어 정신으로 거세게 용틀임했다. 유럽이 20세기 들어서면서 세계 1,2차 대전으로 망가지고 있을 때 대서양 건너편에 있던 미국은 공업국, 산업국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호퍼는 1920년대의 대공황 혼란기에서 급
1760년, 충청도 예산의 양반집에서 태어났다. 서녀였다. 여자아이가 공부하는 것을 금기시하던 시대에, 완숙은 그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남자형제들 공부할 때 옆에서 성실하게 귀동냥했다. 훗날 학자들도 놀라게 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그 총명한 딸을 특별히 사랑했다.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가 사나운 팔자이니 재취로 들어가는 게 좋겠다, 하여 부모는 결국 그 점괘를 받아들였다. 이내 향리에서 알아주는 양반집 홍씨네 며느리가 된다. 남편은 어린 아들 하나를 둔 사별한 홀아비였다. 독한 시집살이를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에, 양반집 며느리로서, 또 전처소생에게는 계모로서, 완숙의 덕행은 완벽했다. 자신의 딸을 포함하여, 남편을 제외한 4인 가족은 완숙의 헌신과 지혜 덕에 참으로 좋았다. 그는 고품격이었다. 부부 사이는 좋지 않았다. 행복은 짧았다. 모든 것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비극이 들이닥쳤다. 망국적인 파당정치였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 임금도 얼마든지 손을 볼 수 있었다. 노론 벽파가 자파세력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현군(賢君)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죽인 것이 그 한 사례다. 그와 같이, 당파싸움에 몰두한 패거리들은 정적이나 위협세력은 필요한 경우에 얼마든지 개돼
미래는 알 수 없다. 천억 원을 넘게 들여 만든 슈퍼컴퓨터로 몇 시간 뒤의 날씨 예측하는 것을 자주 틀리고,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몇 분 뒤에 영영 이별하는 일이 생기는 걸 알지 못한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 만들어가기 나름이다. 앞날이 정해져 있다면 지금보다 삶의 재미가 덜 할 거다. 몇 초 뒤 일어날 일조차 모르지만, 미래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릴 수 있는 분야가 존재한다. 바로 ‘인구’다. 작년에 아이가 몇 명 태어났는지는 10년, 20년 뒤 한국의 모습을 정확하게 말해준다. 최근 출생률이 1 아래였으니 당연한 수순으로 미래에는 인구가 줄어든다. 청년 비중이 적고 노인이 인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초고령화 사회 돌입은 필연적이다. 지구상에 이렇게 아이를 적게 낳는 나라는 한국뿐이라 미래 모습을 참고할 나라도 없다. 대치동에서 사교육 시장을 개척했던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은 학령인구 감소로 사교육 시장의 붕괴를 예측했다. 시기는 머지않아 10여 년 뒤쯤이다. 아이가 점차 사라져서 36년 즈음부터는 서울권 대학도 미달이 난다고 말했다. 손주은 회장이 대치동에서 이름을 날렸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전략적 대입 지원이었다. 당시 서울
지난 주말 손주들과 함께 ‘제3땅굴’과 ‘도라산통일전망대’를 다녀왔다. 꽉 막힌 남북관계. 숨 막히는 현실가운데에서도 손주들과의 보람 있는 대화 속에 모처럼 소망을 꿈꾸는 아름답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북한이 파 놓은 땅굴을 보기위해 600M에 달하는 경사 길을 걸어 들어가면서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손자 ‘준희’는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분단의 의미가 잘 와 닫지 않는 어린 나이이다 보니 당연히 질문이 많을 수밖에... 도라산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한 땅, 개성공단에 대한 설명엔 시큰둥하다, 뒤편의 송악산을 가리키며, 여자가 누워있는 모습 같지 않느냐는 내 말엔 몹시 수긍하며, “맞아! 맞아!”를 연발한다. 분단과 DMZ에 대한 설명을 ‘네 동생과의 다툼’ 현실을 비유하며 설명을 하니 조금은 이해가 된듯하다. ‘함께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 결론적 언급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망대 교육관에서 DMZ 홍보영상에 나오는 지난 시절 남북의 정상들 만남의 모습들을 보면서, 윤대통령도 이 영상물을 꼭 한번 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퇴임 후 나도 저 영상물에 나와야지’ 하는 도전을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3의 남북연결도로가 한반도 중앙의 DMZ를 가
어떤 사람이 지혜 높은 스님을 찾아가 털어놓았대요. “스님. 제가 한동안 마약에 손을 댔다가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껄껄 웃으며 “그걸 왜 들키고 그래요?” 하는 바람에 찾아간 사람이 어안이 벙벙해졌대요. 스님은 “석가모니도 비틀즈도 다 마약하면서 새로운 경지를 연 사람들이에요. 다만 국가가 언제부터인가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게 죄가 되었던 것뿐이죠”라고 말하더래요. 스님의 마지막 말이 걸작이었다네요.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어요. 다만 두 부류가 있지요. 자신의 죄를 ‘들킨 죄인’, 자신의 죄를 ‘들키지 않은 죄인’이 있을 따름이지요.” …언젠가 신문에서 이 글을 읽다가 무릎을 친 적이 있어요. 엉뚱하게도, “누구든 죄 없는 자 있다면 나서서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외쳐서 위기에 처한 간음 여인을 구했다는 예수님 생애 일화가 생각났죠. 요즘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서 문득 ‘들킨 죄(罪)’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우리 사회에는 이미 만연돼 있는데, 아닌 척 살아가는 비리들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그중에 ‘뇌물’보다 더 끈질기고 고약한 풍습은 없는 것 같아요. 거액의 경제 문란 사건을 필두로, 모든 사건 뒤에
정치를 욕하는 사람들이 흔하게 하는 푸념이다.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이 제 욕심만 차리는 놈들이니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라는 자포자기의 표현이고 요즘에는 여당도 싫지만, 야당은 더 싫다고까지 한다. 이렇게 정치를 불신하고 멀리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 정치가 국민의 희망과 꿈을 주기보다는 허구한 날 비리와 부정만 일삼는 부패집단으로 인식된 지는 오래되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정치가 불신의 대상이 되었는가. 그러나 시대를 막론하고 정치와 정치인이 국민에게 욕 안 먹은 적이 있었던가. 정치는 늘 국민의 기대에 부응치 못하는 원망의 대상이 되는 직종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치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원인은 정치인의 자질, 상황 등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언론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아니 어쩌면 정치불신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언론이다. 언론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라는 제4부의 권한을 위임받았다. 그런데 과연 우리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자사의 이익에 치우치거나 당파성에 매몰되어 침소봉대하는 보도로 모두가 똑같은 놈들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기능 기관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보 오발탄으로 수도권 시민들을 공포에…
못된 정치 쩨쩨한 속셈이 ‘과학’을 주물럭거리는 꼴, 요즘 국제정치학이다. 핵발전소가 폭발했다. ‘과학적으로’ 매만지니 오염수 1리터쯤은 마셔도 별 탈 없단다. 그 과학은 서양문명의 ‘정치’인가? 싹수없는 과학, 그대 드시게. 과학이 무엇에 입맛을 다시나? 말(언어)도 ‘과학적으로’ 마사지했다. ‘처리수’라니 애무(愛撫) 수준일세. ‘안전하다.’는 장본인들의 창작이다. ‘안전하면 자네들이 마시게나.’는 취지 중국 당국의 언급, 간명하고 적절하다. 섬이어도 그들 강산과 들판, 유유(悠悠)하더라. 부사산(富士山) 꼭대기나 상근(箱根) 온천지 호젓한 호수에 담아 오래 마시면 그 ‘안전함’과 책임감에 지구촌이 갈채 보낼 터. 복합오염이란 말은 그런 과학 판치는 서양문명에서 더 오래된 상식이다. ‘안전하다’ 강변하기 위한 의도의 실험이나 검사(檢査)의 실속, 세상이 안다. ‘과학적’ 간판 걸고 ‘눈 가리고 아웅’이면 만사 오케이? 벋서면 수사? 법치주의? 그 과학 말고 ‘진짜 과학’으로 보자. ‘먹는 것 갖고 장난치는 놈’으로 시작하는 말의 다음은 입을 열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하다. 패륜(悖倫)이다. 지들도 속으론 그리 생각할 것이다. 중국의 언급 또한 그런 생각에서
‘달나라에 갈 수 없다면!’ 북유럽의 외딴 섬나라 아이슬란드의 관광 홍보 문구다. 아이슬란드는 거리만큼이나 상식에서 먼 일이 일어나는 나라다. 귀신 이야기부터. 아이슬란드에 건물을 세우거나 도로를 놓으려면, 예정 부지에 ‘정령이 살고 있지 않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경치 좋은 곳에 ‘땅의 신이나 땅 사람, 혹은 숨어있는 사람’이라 부르는 정령이 산다고 믿는다. (우리 식으로 바꾸면 도깨비, 터줏대감 정도가 될 듯) 2013년, 도로를 내려던 시공업체와 정령이 깃든 바위 훼손을 막는 주민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 법정까지 간 일이 있는데, 판사는 주민 편을 들어 ‘바위를 파손하지 말고 이전’하도록 했다나. 다음 이야기도 귀신 이야기급이다. 맥도널드 햄버거가 아이슬란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일이 있었다. 15년 전, 금융위기로 아이슬란드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맥도널드가 발 빠르게 철수했다. 폐업 하루 전, 조르투르 스마라슨이라는 남자가 햄버거 세트를 구입한다. 그는 먹다 남은 것을 집에 둔 뒤, 3년 정도 지나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조금도 썩지 않은 상태였다. 이 신기한 버거세트는 국립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가 1년 뒤인가, ‘버스 호스텔 레이캬비스
마음 정갈스럽게 하고 생각 가다듬어 글 쓸 구상을 하고자 가까운 산길로 나가다 어린이 놀이터에서 본 풍경이다. 어린 딸과 아들은 둘이 나란히 그네를 타고 있는데 앞 의자에서는 엄마 아빠가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 나도 아이들 키우며 저런 시절이 있었지. 머릿속에서는 시골에서 부모님 모시고 살며 인간답게 살았던 고향 풍경이 실타래 실 풀리듯 한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아름다운 시절은 꽃잎처럼 흩어져…’ 이용복 가수의 ‘어린 시절’ 노래가 가슴속에서 리듬을 탔다. 자기 아이들 그네 타는 모습을 보며 젊은 부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애들이 커서 검사, 의사, AI 기술자, 재벌총수-. 일류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성적 올린다며 약을 먹이는 부모, 정신병동에서 문제집을 푸는 아이, 마약 밀매 조직의 손길이 뻗는 교육열과 그 현장-. 나는 어려서부터 가난에 친숙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어렵게 살았던 때라 시기심 없이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으며 살아서 다행이지 싶다. 아이들도 착하게 성장해 남 속임수로 억울하게 당했을지언정 그릇된 행동 하지 않고 독립해 잘 지내고 있다. 최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