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방류 임박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방류를 위한 터널 공사가 완료되었다는 보도이다. 이대로라면 방류가 임박한 상황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가 원전 오염수와 관련된 최종보고서에 심각한 문제 제기가 없으면 일본 정부는 방류를 시작할 것이라는 보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은 단식 농성을 통해 방류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있고, 어민들은 어업에 미칠 영향이 심각할 것이라며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여권은 오염수 방류에 대한 반대 의견과 국민적 우려에 대해 ‘광우병 사태’에 빗대어 괴담으로 치부하고 있다. 과학은 무엇인가 많은 어린이들이 장래 희망으로 과학자를 꿈꾼다. 아인슈타인 같은 물리학자, 휴머노이드 로봇을 연구하는 로봇과학자, 누리호 발사 성공을 보면서 우주과학자가 되고 싶어한다. 대체로 물리학의 자연과학과 컴퓨터공학 등 응용과학 분야이다. 그런데 과학은 이러한 분야나 영역으로만 구분되지 않는다. 특정한 분야로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이 얼마나 과학적이냐는 것으로 과학을 정의할 수 있다. 그래서 자연 환경에 대한 탐구 학문을 자연과학, 운동과 스포
짜장면 배달비보다 500원 적은 KBS수신료가 몇달간 몰매 맞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사장과 보도태도가 맘에 안들어 여론을 몰아가는것으로 보인다. 지금 중요한건 수신료 징수방식이 아니라 OTT로 말미암아 빅뱅이 일어난 방송생태계 속에서 방송이 어떠한 역할을 할건지 방송산업의 균형적 발전방안을 만드는건데. 공영방송을 운영하는 나라는 예외 없이 수신료를 징수한다. 이 재원조달 방식이 정권,광고주의 압력으로부터 공정한 방송을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이기 때문이다. 2021년 KBS의 수신료 수입은 약 6863억원이다. 공영방송이 있는 영국은 5.9조, 독일은 10.8조, 일본은 7조의 수신료를 국민이 부담했다. 전기요금에 수신료를 합산시킨 국가도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등 많다. 징수에 따른 비용절감과 효율성을 위해서다. 현행의 수신료 합산징수제도는 국민의힘의 전신이자 여당인 민자당 정권이 1994년 최초로 시행한거다. 과거 KBS 수신료 논쟁을 정권별로 보자. DJ정부 때 헌법재판소는 “수신료의 법적 성격은 공영방송 사업이라는 특정 공익사업의 경비조달을 위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이라 규정했다. 노무현 정부 때 야당인 한나라당은 과거 자신의 전신인…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 라일리의 머릿속의 감정 컨트롤 본부에는 불철주야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의 다섯 가지 감정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자연 속의 좋은 집과 좋은 부모님, 절친과 하키팀 동료들에 둘러싸여 부족한 것 없는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라일리는 아버지의 직장 문제로 도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오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지며 뜻대로 안 되게 된다.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라일리를 위해서 어느 때보다 바쁘게 감정들이 신호를 보내지만 우연한 실수로 기쁨과 슬픔이 본부를 이탈하게 되고 되돌아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본부로 돌아오고 라일리는 회복되는데 다섯 가지 감정들은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각자의 위치에서 라일리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라일리처럼 감정은 인생의 순간들과 함께한다. 슬픔과 절망감을 견디며 한 노력이 쌓여 기쁨과 환희의 순간으로 변한다.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의 기쁨은 시간이 지나 실망과 권태 혹은 날카로운 증오로 바뀌기도 한다. 감정은 환경에 반응하여 발생하는 느낌과 기분을 말한다. 감정을 통해서 인간은 태어난 후 외부환경에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나는 어
내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태백의 금대산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태백산맥의 작은 물줄기가 합류되면서 잔잔하게 흐르기 시작하는 충청도의 소도시이다. 남한강은 강원도의 높은 산지를 흐를때는 급류 형태로 흐르지만 충청북도 제천과 단양을 지나면서 물길의 흐름이 느려지고 경기도 여주를 지나 양평에 이르면 흐르지 않는 듯 크게 흐른다. 강원도의 남한강은 날카로우며 급하고 경기도의 남한강은 깊고 느리다. 반면에 충청도의 남한강은 적당한 깊이와 무시해도 될 만큼의 유속[流速]을 가진다. 그러다보니 지역 주민들은 물줄기의 낮은 곳에서 다슬기를 잡아 식탁에 올렸고 지금은 어엿한 향토음식이 되었다. 표준어는 다슬기라고 하지만 지역마다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경상도에서는 고디, 전라도에서는 대사리, 충청도에서는 올갱이라고 부른다. 충청도 방언인 올갱이를 어릴 적 우리들은 ‘올뱅이’라고 불렀다. 올뱅이국은 된장을 풀고 얼갈이배추나 아욱을 넣은 후 몇 가지 양념을 첨가하여 끓여 먹는 게 일반적인 요리법이다. 올뱅이는 오장육부 중에서 특히 간에 좋다고 하여 해장국으로도 인기가 많다. 이를 요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감을 해서 모래나 불순물을 제거한 후, 삶아서 하나하나 손으로 알맹이를 빼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판매량이 증가한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공급자들이 매일같이 겪는 사정이다. 이 제품과 서비스에 소비자들의 98%가 만족해하면, 꽤 우수한 생산물이다. 불만을 표출하는 2%의 소비자. 2% 중 1%는 막무가내, 1%는 그래도 이유 있는 불평을 제기한다면, 공급자들은 이 2% 부족분을 채워나간다. 그럼으로써 조직은 발전해 나간다. 자본주의 이치다. 경제생활만이 아니다. 정치 분과에서도 소비자인 국민의 상당수가 통치와 행정행위에 만족해하면, 그 정권은 괜찮은 정부다. 그런데 1%나 2%가 아닌 20%, 30%, 혹은 6~70%의 국민이 정부정책에 만족해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무능한 정부, 혹은 소통이 안 되는 정부인 것이다. 그렇다면… 위험하다. 기업의 영역에선 1%, 2%의 소비자 불만족을 만족 향상으로 전환하기 위해 시스템을 점검한다. 초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관점서 보면 공급자로서의 정부는 자본주의 체제에선 용납이 안 되는 조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다양한 국민 개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국가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요즘 정부의 행동을 보면, 참 불편하고 낯설다.
눈을 감습니다. 보다가 맙니다. 말았어도 본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본 것은 눈 바깥의 일이지만, 못 본 척 하는 것은 눈 안쪽의 일입니다. 눈 바깥이 세상이라면 눈 안쪽은 사람의 영역입니다. 사람의 영역에서는 생각이 으뜸입니다. 으뜸은 사람마다 서로 달라서, 보는 것에 대한 반응 또한 서로 다릅니다. 보이는 것은 하나인데, 보고 싶다거나 보기 싫다거나 못 본 척 시치미를 떼기도 합니다. 늙음 때문일까요. 아니면 낡음 때문일까요. 나는 자꾸 고개를 돌리고 맙니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귀를 닫습니다. 겁먹은 하루가 안으로 돌아앉습니다. 안으로 돌아앉는다고 바깥의 일부가 아닐 순 없습니다. 시간은 안팎 어디서도 고르게 흐릅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시간 말입니다. 시간은 그 무엇보다 공평합니다. 사람이든 사람 아닌 것이든 시간 앞에 영원할 수 없습니다. 영원은,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수 없이 많은 신화(神話)가 만들어진 것도 그래서입니다. 상상으로 빚어낸 신화의 뿌리에는 사람의 욕망이 있습니다. 신화를 먹고 자라난 온갖 신(神)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있을 수 없는 영원처럼, 신화 속의 신(神)들 역시 우리가
아이가 어릴 적에 어른이 묻는 공통의 질문이 있는데, 이런 것도 있다. 너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할래?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다. 첫째, 실제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대통령부터 과학자, 선생님, 축구선수 그리고 유튜버가 되겠다는 답변처럼 미래의 모습을 설계해 보고 함께 상상해 보자는 취지다. 첫 번째 답변은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해야 하는 불가피성에 초점을 맞춘다. 두 번째 답변은 일할 의지를 강조한다. 일을 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어른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이기 때문에 노력을 해야 한다는 당위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더 많이 공부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커서 원하는 수익을 벌 만한 직업을 못 가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게 한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는 것은 미리 준비하지 않았거나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효과가 있다. 두 가지 답변 모두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일해야 먹고산다는 명제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일은 삶의 여러 활동 중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야 하는 것이 일이요, 노동이다. 그런데 일에 대한,
잊지 못할 여행의 순간을 떠올려보자. 끝없이 펼쳐진 화려한 꽃밭에서 원피스를 팔랑이며 뛰어가는 모습. 감성적인 숙소 풀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장면. 시원한 폭포 앞에서 함께한 이들과 잡은 포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 장면은 1인칭일까, 3인칭일까? 이 시대의 기억은 빠르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스마트폰에게, 사진에게, 영상에게, 그리고 sns에게. 기억은 짧지만 기록은 영원히 남고, 기억은 혼자 돌아볼 수밖에 없지만 공유한 기록은 타인의 반응을 이끌어 낸다. 기록이 기억의 대체를 넘어 세상을 장악하는 동안 사람들은 순식간에 시선을 잡아챌 수 있는 기록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되었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혹은 누구와 함께였는지보다 중요한 건 여행에서 남긴 한 장의, 혹은 몇 분의 기록이다. 이왕이면 눈부시고 찬란하게, 순식간에 타인의 부러움과 감탄을 끌어낼 수 있게. 그러나 일부러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가슴 깊이 남아 불쑥불쑥 떠오르는 여행의 순간은 기록과 다른 방식으로 저장된다. 그 순간은 꽃밭을 걸을 때 귀 옆을 스치던 바람 한 자락일 수도, 비를 피해 들어간 처마 밑에서 맞잡은 손의 따스함일 수도 있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수능의 변별력을 구실로 전문가도 풀기 어려운 초고난도의 소위 ‘킬러 문항’이란 ‘약자인 우리 아이들 갖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하며 사교육 문제를 거론한 것은 타당했다. 수능의 변별력을 명분으로 공교육만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능 문제가 존재하는 한, 그것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 고질병인 사교육 번성의 기반임은 분명하다. 낮은 임금에 아이를 키우며 주택 마련에 더해 사교육비에 허덕이는 맞벌이 부부를 생각해 보자. 킬러 문항을 못푸는 아이의 성적은 별도로, 친구 모두 학원에 가 버려 같이 놀 친구가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왕따로 전락하게 된다. 부모의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은 노후 빈곤과 이어지고, 이는 저출산이나 강남 부동산 가격 등 다양한 사회 문제 속에 반영된다. 공교육 현장의 교사들 역시 학생들과의 관계 형성이나 역할에 있어서 무기력에 빠지며, 아이는 아이대로 성적 경쟁 속에 건강한 인성 형성보다는 모든 것을 성적 서열로 판단하게 된다.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어린 학생들의 비극이 이미 낯설지 않게 된 우리 사회다. 과도한 사교육 현실 속의 일반 가정에서는 학생에게 부가 아니라 가난을 세습시키는 현실이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발언
인간의 존엄성은 때로는 이성으로, 때로는 양심으로 불리는 우리의 영적 본원에 존재한다. 이 본원은 시공을 초월하여 의심할 나위 없는 진리와 영원 불변의 진실을 가진다. 그것은 불완전한 것 속에서 완전한 것을 본다. 그것은 보편적이고 공평하며 언제나 인성 속의 편파적이고 이기적인 것과 대립하고 있다. 이 본원은 우리들 각 개인에게 엄연히 우리의 이웃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귀중한 존재라는 것, 그들의 권리 또한 우리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신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또 우리에게 진리가 아무리 우리의 자존심에 거스르는 것일지라도 끝까지 진리를 받아들이라고 명령한다. 우리에게 공정하다는 것이 아무리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일지라도 언제나 공정하라고 명령한다. 이 영적 본원은 우리에게 그것이 어떤 사람 속에서 발견되더라도 아름답고 거룩하고 행복한 모든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라고 호소한다. 이 본원은 바로 인간 내부에 있는 신의 빛이다. (채닝) 사람들은 육체적인 생활 속에서 하늘의 기쁨을 얻고 법열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오직 선한 삶을 살고 싶은 바람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청정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지혜와 감정이 청정할 때 그들에게 신성이 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