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퇴근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사전을 한 권 구입했다. 롱맨 사전(Longman Dictionary). 다음 날 평양에 가서 만날 북한의 보장성원 K 선생에게 선물할 물건이었다. 석 달 전 5월에 북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아들이 평양의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고 자랑하던 일이 생각나 그의 아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순안공항 입국 검색대를 빠져나오자 K 선생을 비롯한 북한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기다리고 있던 차에 일행과 함께 올랐다. K 선생이 내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아드님 대학 잘 다녀요?”나의 물음에,“아, 예, 잘 다닙네다.” 얼굴을 활짝 펴며 대답한다. 자식 자랑은 남북이 따로 없는가 보다. 지난번 만났을 때 서로 질세라 열심히 자식 자랑을 늘어놓던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가 그 애한테 입학 기념으로 줄 선물을 하나 준비했지요.” 영영사전이고 아주 역사가 깊은 유명한 사전이라고, 내가 그 사전 덕분에 미국 유학할 기회를 얻었다고 설명을 하니, K 선생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음 날, 사업 현장을 방문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K 선생이 기사에게 뭐라 귀엣말을 하고는 내 곁에 다가앉았다. “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2030년까지 언론사 자체부터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화석 연료를 채굴하는 기업의 광고를 싣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때 기후위기가 거짓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 기후위기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거나 답이 없는 문제라고 외면하는 사람이 많을 뿐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고민하는 토론회가 한국언론정보학회 가을철 학술대회에서 열렸다. 기상 전문 기자는 기자들이 ‘보도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자연재해를 우선으로 하고 중요하게 다루는 것에 비해 기후변화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편집국 분위기를 당장 바꾸기가 쉽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재생 에너지 연구자는 대중이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보를 습득하는 주요 경로가 언론인데, 언론은 기후위기를 많이 다루지 않는 데다 제대로 다루고 있지도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얼마나 상황이 나쁜지 이야기하는 데 익숙해 있고, 해법을 위한 토론이 필요한데 이미 누구 편을 들어 입장을 정해두고 보도해서 논의조차 어렵게 만든다고…
이성이 대답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질문에 대해 답을 주는 것은 오직 믿음밖에 없다. 앞으로의 일이야 어찌되었든, 예수그리스도는 지금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얘기되는 것과 정반대의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만일 그가 그 가르침을 세상 사람들에 대해 얘기되는 것과 일치시켰다면, 즉 단순한 피와 살의 가르침과 일치시킨다면, 그는 그저 한 가난한 유대인에 지나지 않게 되고, 세계는 종교적인 삶을 고수한 가장 값진 보물을, 유일하고 보편적이고 진정한 종교에 대한 복음을 잃었을 것이다. (파커) 죽음, 침묵, 지옥 그것은 불멸과 행복과 완성을 원하는 존재에게 얼마나 무서운 비밀인가? 내일 아니 몇 시간 뒤라도 내가 숨을 쉬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영원한 수수께끼가 언제나 우리의 눈앞에 엄연한 모습으로 가로막고 서 있다. 마치 사방이 비밀로 싸인 어둠처럼. 신앙만이 이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유일한 별빛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 세계가 선으로 태어났고, 의무의 의식이 우리를 기만하지만 않는다면…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1552~1617). 의령 출신. 현풍이 본관이다. 3대가 높은 벼슬을 했다. 임진왜란(1592~1598)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바다의 이순신과 함께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다. 구국의 영웅이지만, 곽재우의 전공(戰功)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최근 선생을 읽으며 나는 십대 소년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대가 부산항에 쳐들어온 날은 1592년 4월 14일이다. 곽재우가 가족을 깊은 산속에 피신시키고, 선영의 봉분을 깎아서 평평하게 해놓은 다음, 거병한 날은 열흘 뒤인 4월 22일이었다.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은 곽씨 집안 머슴들 열 명이 전부였다. 짧은 기간 안에 2000명의 전투병력으로 증원된다. 천석꾼이었던 곽재우는 우선 곡식창고를 연다. 군량미와 의병 가족들의 쌀독을 채워준 거다. 그리고, 계급차별 없이 가족, 형제, 친구, 사제 사이처럼 인격적으로 대하는 장군의 높은 인품과 구국충정의 진정성, 왜장들조차 감탄하면서 두려워하는 천재적 병법, 헌신적 태도 등이 그 놀라운 리더십의 요소들이었다. 부대가 커지고 싸움이 장기화될 경우, 당연히 군량미의 문제가 1순위 과제다. 식량이 떨어지면 관군이건 의
치즈광인 친구에게 특식을 사겠다고 퐁듀 전문집에 데려갔다. '다소 비싸지만,아주 맛있다 '는 소개를 듣고 찾아갔는데 전언과 달리 다소 맛있는 정도였고 아주 비쌌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괜히 퐁듀의 기원을 입에 올리며 감정을 푼다. '퐁듀가 사실 옛날 스위스 사람들, 한 겨울에 굶어죽지 않으려고 먹었던 음식인 거 알아? 겨울되면 광 속에 딱딱한 빵, 굳은 치즈만 굴러다녔는데 그걸 먹겠다고 포도주에 치즈 녹이고 빵 찍어 먹은 게 퐁듀의 유래야' 친구는 퐁듀 얘기보다 스위스 사람들의 가난했던 과거사에 관심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스위스의 국가 이미지는 거의 유토피아다. 만년설을 인 알프스와 서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인 레만호를 가진 자연 청정국, 세계 최고 명품 시계, 초콜릿, 치즈로 유명하지만, 실상 관광업, 금융업, 의약품, 제조업 등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 9만달러가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자 나라, 영세중립국으로서 500년간 전쟁 없이 무장평화를 유지해온 나라. 전 세계의 부러움을 받는 스위스도 18세기까지 유럽의 빈국, 약소국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험준한 알프스산이 국토의 70%, 호수까지 치면 75%가 농사지을…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유럽-아시아 대륙의 끝에 달린 반도지역이라 예부터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외침을 숱하게 받은 곳이지만 상대적으로 대륙과 해양의 문화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위치다. 역사적으로도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국가들의 진출 무대이자 각축장이었고 또 두 세력의 완충 역할과 중재 화합의 장이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한반도는 때로는 위험하고 때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지켜왔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은 남쪽의 영토를 섬 아닌 섬나라로 만들어 놓아 버렸다. 우리가 중국대륙이나 러시아대륙을 가려면 일본과 똑같이 비행기나 배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세가 분단의 결과였다. 남북은 80여 년 가까운 세월을 대립과 반목으로 보내다 보니 때로는 우리가 대륙국가이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북쪽의 자원, 인력이 남쪽의 자본, 기술력과 결합된다면 엄청난 시너지가 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우리의 철도가 연결되는 꿈을 꾸고 있다. 이 구상은 당대의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세대의 희망과 의지 그리고 대륙진출의 열정을 몇 배로 올려줄 것이기에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대륙국가의 꿈이다
선은, 받는 자에게 필요한 정도나 베푸는 자의 희생의 정도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성립되는 신과의 합일의 정도에 의해서만 헤아릴 수 있다. 삶은 반드시 선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좋은 삶만이 선하고 행복하다. (세네카)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선보다 자신이 입을 피해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선은 금방 잊혀지지만, 모욕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세네카) 우리가 대가를 기대하면서 의무를 행할 때, 그것은 선이 아니라 기만에 찬 선의 모형, 선의 유사품이다. (키케로) 비난과 불명예가 거꾸로 너를 덮치지 않도록 남을 비방하지 말라. 악령은 앞에서 덤벼들지만 비방은 언제나 뒤에서 몰래 덮친다. 분노에 몸을 맡기지 말라 분노에 몸을 맡긴 사람은 자신이 할 일을 잊고 자신의 선행을 놓치기 마련이다. 근면하고 과묵하며, 자신의 노동으로 살고, 자기가 생산한 것 중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저축하라. 그러한 습관은 네 행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어리석은 자와는 시비를 따지지 말라. 악인한테는 돈을 빌리지 말라. 비방하기 좋아하는 자와는 함께 일하지 말라. (동양 금언) 하나의 선행을…
우리 부모님은 툭하면 싸우셨다. 다정한 대화는 지리멸렬한 싸움으로 끝났다. 시시비비는 폭언이 되고 폭언은 폭력이 되었다. 그 광경을 일상처럼 지켜보던 어린 날들, 너는 내게 유일한 친구이자 놀이였다.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나는 언성이 높아지면 너의 세계로 숨바꼭질하듯 숨곤 했다. 거기서는 뭐든 할 수 있었다. 네 뒤에 숨어 현실의 고통을 이리저리 피했다. 수 년 후 부모님은 갈라서기로 했다. 그러자 이제는 누가 아이들을 키울 지로 다투기 시작했다. 양육권을 서로 가지려는 아름다운 싸움 따윈 없었다. 이혼 소송 기간 아빠와 엄마의 고향을 짐짝처럼 오갔다. 도시에서 어촌, 농촌으로 또래들과 친해질 새 없이 전학을 다녔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버스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가야 하는 단조롭고 지루한 세상을 네게 기대어 버텼다. 장난감도 딱히 없던 시절 나는 사물에 너를 입혀 놀았다. 쓰임새 없는 막대기도 너는 왕자와 공주로 변신시켜 로맨스 가득한 세계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시외버스로 장거리 이동을 할 때면 차 창 밖 굽이굽이 끝없는 산들을 너는 거대한 무덤이라 했다. 그러면 정말 거인이 긴 잠에서 벌떡 깨어나 저벅 저벅 걸어오는 것 같아 긴장감에 숨죽였다.…
요사이 우리나라를 보면, 감정이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는 것 같다. 그것도 “완전히” 지배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성직자가 입에 담지도 못할 언어를 퍼붓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직자마저 증오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균열이 얼마나 깊고 심각한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신과 다른 견해, 다른 이념적 지향을 가진 이들을 증오하는 것이 정의의 구현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정치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과정은 아니다. 정치는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수단도 아니다. 정치는 권력적 현상일 뿐이다. 정치인들이 정의를 말하고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는 것은, 권력을 잡기 위함이다. 권력을 잡으려면 선거에서 이겨야 하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잡고 난 이후에는 이념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념은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일 뿐, 이념을 위해 권력을 잡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권력은 국민 모두의 견제 대상이고, 비판의 대상이어야 한다. 견제 없는 권력은, 문자 그대로 고삐 풀린 괴물이 될 것이다. 권력이란 타
내가 강의하는 곳에서 10 년 넘게 공부하며 지내온 분이 농장에서 수확했다며 감과 사과를 한 상자 주었다. 상자 안 사과는 아직 더 자라도 될 것처럼 풋풋하고 싱그러웠다. 강의실 인연으로 더욱 친밀해지고 내 입장을 잘 이해하는 동창은 자기 집 뜰에 있는 감나무에서 따왔다며 권투 선수 주먹 같은 먹감 홍시를 선물로 주고 갔다. 과실수와 곡식을 거두는 논과 밭은 밑거름이 필수이다. 거름은 흙의 영양제요 보약이다. 농부는 땅을 논과 밭이나 토지라고 불렀다. ‘땅’이라는 명칭은 부동산투기자들 입에서 나왔다. 내 부모는 삶의 대부분을 논밭에서 땀 흘리며 보냈다. 덕분에 나는 곡식은 밑거름인 퇴비(거름)의 열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퇴비는 자연에서 얻은 풀이나 짚 등을 두엄자리에서 썩도록 하여 논과 밭으로 가져가 고랑을 파고 묻어준 것이다. ‘인문학’은 우리들 삶과 문화의 밑거름이다. 지식사회에서는 중세에는 신학이요 근대에는 인문학이 그들의 사회를 주도했다고 하였다.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어도 우리가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가치와 희망의 조짐을 깨우쳐주는 게 인문학이다. 따라서 소양교육의 뼈대 위에 개인의 인격이 자리하게 된다. ‘수필과 시와 자연이 주었던 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