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생활에 있어서의 일의 중요성은 그 물질적 의미나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에 의해 판단되어서는 안 되며, 그 선의에 의한 노력의 정도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자 할 때, 지극히 평범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에 만족하는 대신, 뭔가 매우 어렵고 놀라운 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전자가 훨씬 더 중요하다. (페늘롱) 자신이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 일을 사소한 일이라 하며 하지 않는 사람은 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알고 보면 그것이 그에게 너무 작은 일이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큰일이기 때문이다. (표치) 너는 일을 완성시킬 의무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회피해서도 안 된다. 너에게 일을 맡긴 신은 너의 일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 자신은 하늘이 맡긴 일을, 즉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사람이다. (중국 지혜) 사람은 사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천에 의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실천하는 노력 속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괴테) 자신의 ‘자아’를 육체적인 영역에서 정신적인 영역으로 옮긴다는 것은, 의식
시종일관 막장극으로 일관한 새 정부 첫 국정감사 끝에 윤석열 대통령이 과반 야당이 불참한 썰렁한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날 검찰이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내 민주연구원을 기습적으로 압수수색하고, 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빚어진 파행이다. 국감 기간 중 굳이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상임위가 막말 정쟁에다가 소란을 거듭했다. 도대체 처참히 무너지고 있는 민생은 어쩔 참인가, 국회에 묻고 또 묻는다. 국감 첫날 법사위는 문 전 대통령 서면 조사가 쟁점으로 떠올라 개의가 미뤄졌고, 외통위는 박진 외교부 장관 퇴장 여부로 30분 만에 중단됐다. 국방위에서는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다음날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는 윤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의 만화를 두고 여야의 고성이 오갔다. 감사원의 전임 정부 감사는 국감 내내 논란의 주제였다. 11일 법사위의 감사원 국감에서 여야는 정면충돌하며 한 치의 양보 없는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에다가 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2018년 인도 방문 논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이전 문제까지 전선이 확대됐다. 12일
미사일이 마구 날아다니고, 총알이 우박처럼 쏟아지네요. 청백 군사들이 호시탐탐 상대방의 심장을 노려 일격필살의 승기를 잡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날뛰는 모습이 험악하군요. 이러다가 정말 큰 변고를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가 수시로 엄습해요. 러시아 침공으로 참혹한 전장이 돼버린 우크라이나 풍경이냐고요? 아니에요. 최근 여야 정쟁이 깊어지고 있는 우리 정치권 이야기에요. ‘적폐 청산’은 사전적으로 ‘과거의 쌓아온 폐단을 없앤다’는 용어예요. 그런데 우리 국민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살짝 다른 의미로 느껴왔지요. 문재인 정권이 내세운 ‘적폐 청산’ 구호는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국면과 맞아떨어지면서 반론의 여지가 좁았어요. 그 시절 속절없이 당해야 했던 보수 야당은 사뭇 ‘정치보복’이라며 부글부글 끓었지만요. 지난 3월 대선으로 정권교체가 된 이후 공수(攻守)가 뒤바뀐 정치권은 처음부터 시커먼 전운(戰雲)을 피워올렸지요. 대선 전부터 각종 논란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야당 대표를 겨냥한 사법기관의 수사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네요. 후보 경선 때 불거진 의혹을 중심으로 공세가 이뤄지고 있으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겠군요. 이번에는 민주당에서 ‘정치보복’,
지인들과 파스○○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다가 장소를 급하게 변경했다. SPC그룹 계열사 브랜드 목록을 공유하면서 당분간은 다른 커피숍을 이용하면 좋겠다고 말한 이가 있어서였다. SNS에 ‘#SPC불매’, ‘#멈춰라SPC’ 해시태그가 늘었다. 불매운동 지지가 쉽사리 끝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PC계열사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이 지난 15일이다. 동료들이 사고를 목격하고 직접 수습했다. 사고가 난 기계는 가림막을 해 두고 동료 노동자들이 일했다. 노동부가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의 트라우마 등을 이유로 작업 중지를 권하자 그제야 일단 중단했다. 사망한 노동자 빈소에 회사가 놓고 간 파리바게뜨 빵 상자 사진이 알려지고 비판 여론이 조금씩 확산했다. 노동과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일자 관행이고 회사방침에 따랐다는 대답이 사태를 키웠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사고 발생 엿새 만인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에 나섰다. 하지만 대체로 ‘늦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룹 회장이 내는 사과문 낭독은 소리가 작았다 하고, 기자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공지한 기자회견이었으니 ‘보여주기식 사과’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문(門)은 약속이다. 허락과도 다름없다. 열고 닫음은 허락과 거절의 몸짓인 셈이다. 내가 묵고 있는 바다남쪽(海南) 기와집의 솟을대문도 그렇다. 대문은 안으로 열리는 안여닫이 방식인데, 높이와 넓이가 넉넉해서 팔을 벌리거나 들어도 끝에 닿지 않는다. 양쪽 기둥에 매단 두 짝의 문은 각각 여덟 칸의 널빤지를 세로로 켜고 다듬어서 만들었다. 세로로 세운 여덟 칸의 널빤지는 네 개의 각목을 가로로 덧대 고정시켰는데, 간격이 고르고 반듯해서 세로로 세운 널빤지의 평생 동무로 적격이다. 잘 짜진 문은 하루에 한 번 열린다. 열림이 한 번이니 닫힘 역시 그렇다. 열렸다 닫히는 하루를 흉내 내듯 문은 안으로부터 딱 한 번 열렸다 닫힌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열림과 닫힘도 한 번이다. 엄마를 열고 나왔다가 세상을 닫고 사라진다. 시간을 열고 생겼다가 기억을 닫고 흩어지는 것은 어김없이 한 번이다. 한 번을 뛰어넘는 열고 닫음은 사람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하다. 껍질을 벗어버리거나 고치를 뚫고 나와 다시 사는 사람은 없다. 플라톤도 피카소도 제임스 딘도 그렇게 닫혔다. 진시황도 이르지 못했던 다시 열림의 길을 보란 듯이 걷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열렸으면 당연히 닫힌다.…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 자체를 통해 자신의 인간적인 가치도 인식한다. 그런데 자신의 사명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종교적인 사람들뿐이다. 황제가 성자에게 물었다. “너는 나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느냐?” 성자가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신을 잊고 있을 때.” 이웃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과 똑같이 느낄 때, 우리는 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주세페 마치니) 정신지체자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아미엘) 어떤 사람을 악인이라거나 바보라거나 부정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한번 경멸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타인에 대한 경멸의 감정에 제동을 걸 수 없게 된다. 인간이여, 자신의 가치를 알라. 지금은 그럴 때이다. 우리는 전혀 잘못 태어난 존재가 아닌데, 달아나 겁을 먹고 주위를 두리번거릴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다. 의연하게 고개를 들어라. 나의 생명은 장식물이 아니면, 그것을 살리라고 주어진 것이다. 나는 어디서든 진실을, 완전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나의 진정한 사명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에머슨) 개인의 자유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잘 쓰는 일이다. 큰 자산을 모은 사람은 많아도 잘 쓴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잘 쓰는 것을 넘어 의를 위해 잘 쓰는 일은 더욱 어렵다. 자신이 가진 재산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위험을 불러들이는 일에 나서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그래도 자신이 누리던 것을 포기하고 의를 위해 가진 것과 누리던 것을 내놓은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던 식민지 시대에도 그런 드문 의인들이 있었다. 이제 사람들에게 제법 알려진 이회영 형제가 대표적이다. 삼한갑족으로 불리던 이회영의 6형제는 막대한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회영의 형제와 함께 신흥무관학교 설립해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고 이끌었던 안동 권문세가의 종손 이상룡도 아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회영 형제와 이상룡 가문은 알아도 최진동 형제를 아는 사람은 아직도 드물다. 최진동은 전통적인 명문가의 자손이었던 이회영이나 이상룡과는 달리 자수성가한 인물이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총명하고 의기가 높았던 그는 주변의 신뢰를 얻었고, 중국의 공직에도 진출했다. 그의 사람됨을 알아본 아버지의 친구였던 중국인 부자는 그를 양아들
‘아~베`마리~~아(Ave Maria)!~’ 한국어로 번역하면 ‘안녕하세요 마리아님!’이다. 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를 찾아와 예수를 수태한 사실을 알리며 건넨 인사라고 한다. 이를 모태로 슈베르트가 ‘아베마리아’를 작곡했고, 카치니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아름답고 손색이 없지만, 아베마리아는 역시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으뜸이다. 이 곡은 천재 작곡가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가 1853년 바흐의 서곡에 가사를 넣어 만든 것이다.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진정되고 영혼이 맑아진다. 프랑스 그랑 오페라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 구노. 그는 1818년 파리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다섯 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을 해 생계를 유지했다. 어린 구노는 어머니께 레슨을 받는 학생들 사이에 끼어 피아노를 배웠다. 그 후 파리음악원에 들어 가 앙뚜안 레이체의 지도를 받으며 화성을 공부했고, 스무 살 때 이미 로마 대상을 받았다. 구노는 초년기 종교음악에 몰두했다. 하지만 세속적 영감으로 눈을 돌렸고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가 첫 오페라 사포(Sapho)를 작곡한 건 1851년. 그로부터 5년 후 걸작 ‘파우스트’를 발표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