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예술의 소재로 삼았던 예술가들이 있다. 많은 화가들은 자기 자신이야 말로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훌륭한 모델이기에 자화상을 즐겨 그린다.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화상을 그리기도 한다.)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키르히너, 에곤 실레의 자화상들은 다른 작품들 못지않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의 작품에 자기 자신을 계속 등장시키는 작가들이 있다. 그중 프리다 칼로와 신디 셔먼을 소개하고자 한다. 둘 다 여성 작가이며, 자기 자신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삼았고, ‘여성’으로서의 성정체성을 작품에 적극 활용했으며, 무엇보다 적절히 쇼맨십도 지니고 있었다. 프리다 칼로는 강렬한 에너지를 전하는 자화상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예술가이며, 인생에서 갑자기 찾아온 불운과 고통을 집요하게 그린 작가이기도 하다. 모델로서의 그녀는 확실한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예술가, 남편을 사랑하지만 남편의 배신으로부터 고통 받는 여자, 멕시코 대지의 여신과 같이 아우라가 넘치고 조국을 애틋해하는 여인. 캔버스 안에서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의상을 늘 입고 있었는데 사실 당시 멕시코인들은
국민의 비상벨인 112신고 방식은 과거 112를 누르고 통화하는 방식에서 이제는 문자신고와 버튼만 눌러도 신고가 접수되는 원티치 SOS, 112신고 앱 등 최근 112신고 방식을 다양화해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112신고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경찰청에서 여성과 청소년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 112긴급신고 앱을 제작하여 운영 중에 있다. 본 어플리키에션은 말을 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 사람들이 밀집되어 112신고를 할 수 없을 때! 그럴 때 사용하기 유용한 어플리케이션으로, 사용방법은 간단하다. 별도의 신청 절차 없이 112긴급신고 앱을 핸드폰에 다운로드 받아 설치, 주소와 자주가는 곳을 정확히 입력한다. 본 정보는 112신고 접수시 자동으로 112통합시스템에 현출되어 입력된 장소로 경찰관이 출동하게 된다. 설치 및 가입을 완료하면 이제 긴급할 때, 말을 할 수 없을 때 본 어플의 긴급문자신고 버튼을 3초 이상 누르면 가입자의 기본정보와 현재의 위치정보가 자동으로 112통합신고시스템에 현출되어 신고자의 위치를 보다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 경찰관의 도움을 신속하게 받을 수 있다. 또한 본 어플을 통한 문자신고도 가능하며, 우리 주변에 경찰관서가 어디에 위치
정조시기 부용지의 명칭은 태액지였다. 이 지역에 최근 복원된 취병(생울타리)이 있는데 취병에 대해 전편에 이어 살펴보자. 태액지와 규장각의 영역구분은 취병으로 돼있지만 규장각이 높은 위치에 있기에 시선마저 차단되지 않고 조경의 요소로만 인지되고 있다. 그리고 취병의 길이를 태액지 중심을 맞추고자 태액지보다 긴 동서측편이 취병은 뒤쪽으로 후퇴시켰다. 규장각도를 보면 태액지가 규장각의 진입공간 역할로 보인다. 규장각의 주 진입로는 창덕궁의 국왕 공간에서 영화당을 거쳐 태액지 영역을 들어와 어수문을 통해 규장각으로 가는 것이 정례로 보인다. 규장각을 설치하고 만든 규장각도(奎章閣圖)를 통해 정조의 즉위 초기 태액지 조경에 대해 살펴보자. 태액지의 4방향 영역구분에 있어 담장은 동북쪽만 있고 남서쪽에는 급경사지를 이용하여 담장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동쪽 담장은 영화당에 붙어 있으며 여기에 대문과 영화당 기단에 붙은 작은 협문이 있고, 북쪽은 규장각과 사이에 취병과 어수문이 있다. 태액지의 영역구분 방식에 있어 동쪽에만 정식 담장을 하고, 북쪽은 생울타리담을 설치하고 나머지 두 곳은 자연 지세를 그대로 이용해 경제적이면서도 친환경적 계획을 하였다. 태액지는 방형이고
“우리들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민족 공동 번영과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남북 간 합의사항들을 착실하게 이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기원하면서 그동안 우리 자유의 소리 방송을 들어준 인민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무궁한 행운을 빕니다.” 2004년 6월14일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확성기를 통해 울리던 대북방송 ‘자유의 소리’는 이 같은 클로징 멘트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상호 비방방송을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42년간 계속해온 방송이 막을 내린 것이다. 당시 북한은 군사회담에서 대북방송을 중단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군과 주민의 사상적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방송과 삐라라는 것도 알려졌다. 남북한이 방송 및 확성기와 삐라를 통해 서로의 체제를 비난하는 심리전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6·25를 치르면서다. 전쟁 때에는 삐라가, 휴전 직후부터는 확성기 방송이 주류를 이뤘다. 삐라가 상대편의 귀순이나 항복을 권유하는 내용이 많았다면, 확성기는 귀순 종용과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정
버블버블 /서안나 나는 졸린 눈으로 천년을 흐른다 나는 고독에 가깝다 나는 물보다 느리고 당신보다 진지하다 단순해진다는 것은 잊는다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나와 연대한다 실존은 늘 비열하거나 저열했다 나는 물의 바깥에 핀다 바깥이란 말은 얼마나 자본적인가 시작은 창대하고 끝은 미약하다 부유하는 나는 부글거리는 공기의 오래된 말이다 - 시집 ‘립스틱 발달사’ 천년의 시작 2013년 버블매직이라는 공간은 얼마나 황홀한가. 거품을 갖고 노는 아이의 표정은 얼마나 맑은가. 그 아이와 함께 공기방울을 만드는 행복을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거품이 빠진 아파트, 거품 같이 부유하는 공약들 앞에서 실존은 비열하거나 저열할 뿐이다. 고독한 나는 나와 연대할 수밖에 없다. 자본은 새롭게 높게 빨리 날아라. 단순하게 뒤돌아보지 않고 당신보다 천천히 천년을 흘러갈 것이다. 나는 당신이 만든 버블, 버블이니까. /김명은 시인
협업은 익숙한 단어임에도 의외로 협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협업과 협조는 다른 개념이다. 협업은 부서나 기관의 도움이 없으면 실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실화가 어렵다. 반면 협조는 부서나 기관이 주관부서의 실행불가 여부에 관계없이 일이나 과업, 프로젝트 등을 쉽게 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협업은 권한과 책임이 있는 반면 협조는 보조적인 책임만 있다. 협업은 조직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시간, 비용, 자원, 인력 등을 낭비할 수 있다. 조직에서 협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첫째, 협업을 해야 할 때와 협업을 피해야 할 때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협업을 해야 할 때는 조직의 목적과 일치하는 예산, 인력, 시간, 자원 등을 계산해 협업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최적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 때 한다. 협업을 피해야 할 때는 조직의 목적과 불일치하는 예산, 시간 등을 계산해 최적의 성과보다 협업비용이 더 들어갈 때다. 둘째, 조직간, 부서간 할거주의(割據主義) 협업장벽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협업장벽의 대표적인 사례는 9·11테러를 들 수 있다. 미국의 CIA, FBI, NSA 등은 알카에다의 움직임
굳이 가로등이 있을 필요는 없다. 쏟아지는 별들과 그윽하게 밝은 달의 낯빛만으로도 충분한 조명. 음악이 따로 있을 필요가 있을까. 두런두런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섞여 간혹 고주파로 날리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만으로도 충분한 안정감. 짧게, 짧게 스치는 풀잎소리가 있다면 더더욱 환상적인 분위기. 그건 내가 기억하는 낭만의 배경이 된다. 모깃불 풀풀 날리는 평상마루에서 칼국수 한 그릇으로 저녁끼니를 해결하고 보금자리마다의 식솔들 우르르 마을 어귀로 쏠려 나오는 순간의 평안함이란, 나에게 추억 속 배부른 자의 색깔 다른 낭만으로 남아 있다. 그 무채색의 낭만이야말로 21세기 스테이크로 배를 채운 도시인의 포만감과는 다른, 자연을 배경으로 한, 때 묻지 않은 청아하고도 벅찬 한여름 밤의 꿈과도 같은 낭만이 되는 것이다. 한바탕 술래잡기로 범벅이 된 땀을 개천 목욕탕에서 더듬더듬 어둠과 버무려 말끔히 씻어 내리고 와글와글 떠들며 돌아오던 그 여름 밤. 읍내소식 몇 자락 풀어놓고 목청을 오르내리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그곳 어디쯤. 시멘트 다리위에 언니, 동생과 나란히 누워보았다. 낮 동안 따끈따끈하게 데워진 시멘트 바닥의 아득한 유혹과 살랑살랑 겉도는…
무예는 개인이 익히는 것이다. 보통 개인의 전투능력이 높아지면 당연히 조직의 전투능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 있다. 바로 지휘관의 자질과 능력이다. 조선시대 병서를 살펴보면 이러한 부분이 좀 더 선명해진다. 보통 병법서라고 하면 실제 전투에서 싸우는 방법들이 주를 이룰 것 같지만, 실제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장수의 마음가짐’이 핵심이다. 아무리 날랜 범과 같은 군사들이 있어도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한다면 그 전쟁은 오직 패배뿐이며 그와 함께한 군사들은 죽음만이 남을 뿐이다. 이를 구분해 보면 세 가지로 장수의 마음가짐을 다듬고 있다. 먼저 전투가 있기 전의 장수의 마음가짐으로 군사들을 전투에 내보내기 위해 충심을 기르는 방법, 둘째 전투 시 장수가 어떻게 군사를 지휘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 마지막으로 전투의 승패가 결정된 후 군사들에게 상벌을 어떠한 방식으로 내려야 군의 지휘체계가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 등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시대의 경우는 전투와 관련한 군사들의 움직임을 선진후기(先陣後技)라고 부르기도 한다. 먼저 조직적인 진법을 정확하게…
판문점의 옛 이름은 널문리다. 근처에 일명 널빤지다리가 있어서 붙여졌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개성부 판문평(板門平) 판문리(板門里)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널문리의 한자어 표기다. 판문리는 6.25 직전까지 지리적으로 경기도 서북쪽의 장단군 진서면 선적리와 개풍군 봉동면 침송리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작은 농촌 마을이었다. 그러나 전쟁 중인 1951년 10월부터 1953년 7월까지 유엔군과 북한군 간에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갑자기 유명해 졌다. 그리고 이름도 판문점으로 바뀌고 지금까지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세계 유일의 특수지역으로 남아있다. 판문점의 또 다른 이름은 공동경비구역(JSA)이다. 이 구역은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사령부측과 공산측(북한, 중국)이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운영하면서 휴전을 관리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그러다 1971년 9월 20일 열린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장소 뿐 아니라 남·북한 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 및 남북을 왕래하는 통과지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이 설치 직후 쌍방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들은 구역 내에서 자유로이 왕래했다. 그러나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의 도끼만행사건 이후부터 양측 간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