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이 위기에 처했으며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현행 학교교육은 지식전수 위주의 국영수 중심 교육 성격이 강하고 경쟁심과 우열의식을 부추기며 개별맞춤형 교육은커녕 지역특색교육도 구현하기 어렵다. 뚜렷한 고교서열화와 대학서열화로 고입경쟁과 대입경쟁이 치열한 우리현실에서 학교교육은 부모 운을 극복하기보다는 부모 운을 증폭시키는 역기능까지 수행한다. 부모의 유전인자와 경제자본, 학술문화역량에 따라 아이의 발달과 성장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교육기회와 교육환경이 달라지고 관심사와 가치관, 사회관계가 달라진다. 공교육의 분명한 목표 중 하나는 부모 운이 상대적으로 안 좋은 아이들이 교사효과와 학교효과로 교육기회를 풍부하게 누리며 높은 교육성취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지능과 예체능은 부모의 유전인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부모 운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교육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요인 가운데서도 그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예술 역량도 부모의 계급계층에 따라 교육기회가 크게 차이난다는 점에서 부모 운과 관련성이 높다. 이들 역량은 교육적으로 중요하게…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망명한 작가 칼레드 호세이니의 첫 번째 장편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이 소설 안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소설과 신화가 나온다. 소설 안의 소설과 신화 모두 아이러니를 그 자체다.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소년 아미르가 처음으로 쓴 소설은 마법의 잔을 발견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 마법의 잔에 눈물을 흘리면 눈물이 진주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울려고 노력했다. 비록 가난해도 늘 즐겁게 살아온 남자였기에 눈물을 흘리기 쉽지 않았다. 그는 매일 슬퍼질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찾았다. 나날이 진주가 늘어갔지만 사내는 만족하지 못했다. 마침내 사내는 산더미처럼 쌓인 진주 옆에서 자신의 아내를 죽인 칼을 손에 든 채, 아내의 시체를 안고 하염없이 진주 눈물을 흘린다. 진주를 만드는 행운의 잔이 그의 삶에서 웃음을 완전히 빼앗아가고 끝내는 아내마저 살해하는 괴물을 만들고 말았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마법의 잔을 손에 넣은 남자의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이유는 요즘 우리 사회가 자꾸 겹쳐지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면 진주가 되는 마법의 잔처럼 남을 끔찍하게 욕하고 증오하면…
『이방인』의 살인사건 그리고 재판 “Aujourd’hui, maman est morte”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L’Étranger)』 그 첫 문장이다. 프랑스어 원문을 번역하면 “오늘 우리 엄마가 죽었다.”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되고 중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펼쳐지나 결국 한 살인사건을 다룬 셈이 된다. 주인공 뫼르소(Meursault)는 어느 날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태양이 눈부시다는 이유로 기분이 나빠지면서 우연히 마주친 한 아랍인에게 총을 겨눠 격발한다. 4발을 더 쏘아댔다. 재판이 벌어지자 변호사는 뫼르소의 모친이 죽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고자 한다. 형량이라도 줄여보려고 마음이 슬프고 괴로운 처지였다는 걸 부각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뫼르소는 이 모든 것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재판장은 뉘우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분노, 사형을 언도하게 된다. 모든 게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지도 않고 납득시키려 들지도 않는 까뮈의 뫼르소는 이른바 삶의 부조리를 상징하는 인물로 읽혀왔다. ‘maman’은 프랑스어로 어머니를 다정하게 부르는 애칭인데 그렇게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존재가 햇살이 강렬해서 불쾌한 기분이 되었다고 다른 누군가
지난 식목일에는 서울에 있는 손자 손녀에게 편지를 썼다. 개인적인 일로 편지를 쓸 때 나는 마음 가볍고 흥미롭다. 내가 촬영한 사진 아래 간단한 문장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개성 있게 제작한 우편엽서를 2000년부터 꾸준히 써오고 있다. 우편엽서나 편지나 쓰는 순간부터 받는 사람의 마음과 인연을 생각하며 정성껏 써서 우체국으로 가서 보내고 나면 나만의 삶에 충실했다는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서울에 살고 있는 손자 손녀의 생일은 이 달에 다 들어 있다. 손녀가 먼저이고 맏손자는 오빠인데 중하순이다. 찾아가서 녀석들 나이에 걸맞게 신나게 해주고도 싶다. 하지만 시시한 할아버지는 치킨 값에라도 보태서 제 아버지가 내 몫까지 즐겁게 해 줄 것을 부탁하며 몇 푼 안 되는 지폐와 축하의 원고지 글을 아들에게로 보낸다. 호수가 있는 동산에 올라 진달래를 본다. 다른 나무는 많은 꽃들이 피어 있다. 그런데 내 발길 앞 진달래나무는 가지 하나에 작은 꽃 한 송이만 피어 있다. 그 꽃잎이 보이지 않는 바람에 떨고 있다. 문득 아내 생각이 떠오른다. 그는 세상 온갖 작은 바람에 떨면서도 목소리 한번 돋우지 않았다. 가족들의 미세한 감정을 살펴 위로만 하며 살다 간 사람이다. 정채봉
우리의 행위 자체는 우리에게 속해 있지만 그 행위의 결과는 이미 하늘에 속한 것이다. (프란체스코) 우리는 날품팔이꾼이다.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서 그날의 품삯을 받도록 하라. (탈무드) 우리의 행위에 대한 결과는 다른 사람이 평가한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네 마음을 깨끗하고 바르게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존 러스킨)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또 우리가 노력한 결과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적으면 적을수록, 성공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 (존 러스킨) 인간의 행위 가운데, 결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것일수록 더 훌륭하고 더 가치가 높으며 더 위대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이 행한 결과를 속히 보기를 원하고 그 대가를 바라고 있으니 얼마나 속 좁은 사람들인가?》(존 러스킨, 《》는 필자 첨가) 만일 네가 자신이 일한 결과를 직접 볼 수 있다면, 네가 한 것은 결국 하찮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라. 사람의 얼이란 것은 온갖 힘의 물둥지다. 모든 냇물이 흘러서는 물둥지에 고이고 또 고였다가는 흘러나서 여러 갈래의 냇물이 되듯이,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마지막에 한 번은 반드시 정신으로 바뀌어져 생명의 물둥지를 이루게 되고, 거기서야 또 모든 것이 나
격렬했던 대선이 끝나고 윤석열 정부가 닻을 올리고 출항을 준비하고 있다. 향후 윤석열호를 끌고 갈 국무총리도 발표되었고, 정부부처 장관들도 속속 지명되고 있다. 덧붙여 모 신문이 “차기 국정원장으로 원출신이 유력”하며 구체적인 이름까지 보도한 이후 향후 국정원의 위상과 활동방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의 국정원은 한마디로 ‘빈사상태’였다. 최대의 업적이자 성과로 자부할 남북정상회담도 상당수의 북한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대로 ‘일회성 쇼’였음이 최근 북한의 ICBM 발사나 남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 시사’ 등의 발언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본질이 바뀌지 않는 평화타령은 헛된 구호이자 판타지임이 드러내 주었다. 이 같은 냉랭한 현실은 윤 정부의 국정원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주고 있다. 국정원이 그간 ‘동네 국정원’이란 비아냥을 들어왔어도 국민들이나 여론선도층의 기대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만큼 국가 안위와 국익을 위해 떠받치는 막중한 기관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정보환경은 갈수록 복잡다단해지고, 국제현실은 짙은 농무처럼 한 치 앞도 내다보기가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안보를 등한시하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실증하고 있는데도
‘문해력’이 또 하나의 과외 과목으로 올라서는 분위기다. 특히 학령기 아동의 엄마(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코딩도 벅찬데 문해력 까지 해야 한단다, 어쩌자는 것이냐. 자녀의 ‘경쟁력’에 모든 걸 걸다시피 하는 우리 엄마들의 열정이 교육현장의 새 국면을 열고 있는 것인가. 문해력, 노인 할머니 등 형편 어려워 한글 못 깨우친 분들 교육하는 (정부)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최근 문득 ‘문해력이 학교교육 전반의 문제라서 하루라도 먼저 깨우쳐(줘)야 한다.’고 교육방송이 연예인들 앞세워 방송 시작하는 바람에 이 걱정이 시작됐다. 아이들이 선생님 말씀, 교과서의 설명, 문제의 예문이나 지시문 등을 상당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생한 현장을 TV는 보여주었다. 설문조사나 관련 통계도 절실하게 제시됐다. 낱말 뜻 모르고, 말귀 못 알아듣고, 글눈 어두워 교육이 아이들과,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모습, 충격적이었다. 몰라도 그냥 지나가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을 새삼 걱정하게 된 것이다. 학교가 무엇인가. 그걸 당연하다 여기는 분위기를 우리 교육이 이제야 실감한 것일까. 가나다 깨치고 영어도 배웠는데, 문해력이 부족하다니(엉망이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도 작지
부유한 지배계급과 가난한 피지배계급으로 나눠져 있는 세상이란 애초부터 잘못된 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황금만능주의의 결과 공정한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전쟁과 다름없는 생존경쟁의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부유한 기업인은 말한다. “노동자가 굶어죽는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이냐? 난 약속한 대로 임금을 다 지불했다. 그 이상 나더러 어떡하라는 말이냐?” 카인도 아우 아벨을 죽이고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야훼께서 물었을 때, “제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하고 답했다. 공장주도 그렇게 말한다. “내가 형제인 노동자에게 약속한 임금을 다 치르지 않았다는 말이냐?” (칼라일) 인간은 땅 위에서 땅에 의해서만 살 수 있는 존재이므로, 어떤 사람이 사는 땅을 다른 사람이 빼앗는 것은, 그 사람의 피와 살을 빼앗는 것과 같다. 땅의 약탈에서 생기는 사회제도는 덜 직접적이고 덜 노골적인 뿐, 과거의 노예제도보다 더욱 잔인하고 더욱 사람을 타락시키고 만다. (헨리 조지) 지금 우리는 앞서간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온갖 편리한 물건 속에 파묻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한가? 설령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치더라
“경기가 너무 안 좋아” “직장 구하기 힘들어”라는 푸념들. 선진국이면 으레 겪는 통과의례다. 귀에 딱지가 붙었다. 2차 산업 비중이 줄어드는 산업 구조에서 국민의 다수는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당연히 ‘성장엔진’이 꺼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 경제의 전형적인 생태다. 지식을 자본으로 하는 4차 산업이 ‘경제 도약 산업’으로 주목을 받지만, 대한민국의 ‘수출형 경제’를 감당하기엔 무리로 보인다. 고도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금융 산업은 자본 규모나 전문지식 측면에서 ‘K-한류’ 위상에 턱없이 못 미친다. 국제 경쟁력은 고작 30위권이다. 플랫폼 대표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또 어떤가. ‘국내용(國內用)’이라는 ‘딱지’를 아직도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한편, 많은 수의 제조업체들은 이 땅을 떠났다. 온실가스 제약은 없으면서 저렴한 노동력 조달이 용이한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 결과는 ‘실업 증가’로 나타났다. 생산 기반을 상실한 투자 환경에서 뭉칫돈은 ‘투기’로 쏠렸다. 규제가 주된 원인이란다. 하지만 투자처가 마뜩잖은 시장 환경도 부동산 가격 폭등
1. 『쇼크독트린(The Shock Doctrine : The Rise of Disaster Capitalism)』은 캐나다 출신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이 쓴 책이다. 자연발생적 혹은 계획에 따른 구조적 충격을 발생시켜 특정국가에서 극단의 이익을 탈취하는 다국적 자본의 활약상을 다루고 있다. 발간된 지 10여 년이 훌쩍 넘은 책이지만 함의가 늘 새롭다. 그래서 수시로 서가에서 꺼내 펼친다. 이 책은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무기로 하는 글로벌 독점자본들이 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 저지르는 폭력적 욕망을 영화처럼 펼쳐 보인다. 1973년 CIA와 합작으로 민주주의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피노체트의 쿠데타. 덩샤오핑 집권기에 일어난 1989년의 천안문 사건. 1991년 몰아닥친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그리고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대내외적 쇼크(충격요법)와 위기 조성을 통해 압도적 부를 긁어모으는 그들만의 은밀한 작동방식이 폭로되어 있다. 다국적 자본의 금고로 전 세계 민중의 고혈이 꿀로 바뀌어 흘러드는 마술 말이다. 2. 『쇼크독트린』에는 1997년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IMF 구제금융 사태 이야기도 나온다. ‘아시아의 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