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함께하는 행복한 삶’이라는 슬로건으로 남양주 시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에 부응하고 애향심을 고취하는데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24일 제12대 남양주문화원장 취임식에서 밝힌 김경돈 원장의 취임 포부이다. 남양주문화원은 지난 1982년에 개원해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반도 역사의 중심지로 수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장 남양주를 상징하는 대표 문화사업인 다산문화제를 열고 있고, 다산목민대상과 다산사상강연회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 공연과 행사를 열고 있다. 김 원장은 "우리고장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계승 보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를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미래 세대와 소통하고 공감을 끌 수 있는 문화 콘텐츠 개발에도 힘쓰겠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전임 원장들과 선배 문화인들의 키워온 문화 자산과 수많은 업적들을 이어나가야하는 것도 큰 사명이다. 공무사업을 통해 10억 원의 사업비를 수주한 것과 16개 읍·면·동의 마을지 만들기, 인물지 기록화사업을 통해 지역학 연구의 토대를 구축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김 원장은 남양주를 위한 마지막 봉사임을 강조하면서 " '문화와 함께 하는 행복한 삶’ 이라는 슬로건
제2차 대전 직후 국가 발전을 위한 선택은 정권이 대기업을 육성하거나 중소기업을 선택하거나에 달려 있었다. 식민지를 갓 벗어난 동아시아 국가의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중소상공인을 키우거나 대기업을 육성하거나. 박정희 군사정권은 대기업 육성의 길을 택했다. 소위 정치자금을 위한 고속도로였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역사는 가정이 없으니 중소상공인의 중요한 역할을 외면한 우리 경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직 허덕이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수도권 중소, 아니 소상공인은 힘든걸까. 용인특례시 소상공인이라고 예외일까.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다. 지난 17일 기흥소상공인엽합회가 어렵게 사무실을 열었다. 그 중심에 있는 박서아 회장을 만나본다. [편집자 주] 소상공인연합회는 소상공인이란? 제조업, 건설업, 운수업의 경우 10인 미만의 상시 근로자를 둔 사업자를 뜻하고, 서비스업은 5인 미만의 상시 근로자를 둔 사업자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지난 17일 열린 개소식 의미는 전국적으로는 700만 소상공인이 있고 용인특례시 기흥구에는 2만 3000여 명의 소상공인이 있습니다. 소상공인 분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경기 침체와 디지털…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 줄 알았던 부잣집 종손 정해권 인천시의원(59, 국힘, 연수구 옥련2‧연수1‧청학동)은 외환위기 2년만인 1999년 운영하던 사업체 부도를 맞는다. 부모님 도움으로 시작한 사업이었고 씀씀이가 헤프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옥외광고물 사업이다 보니 기업들이 광고비용을 줄인 탓이 컸다. 이후 1년 반을 허송세월하다 2001년 도망치듯 가족과 함께 삶의 터전을 태국으로 옮겼다. 빈손이었던 그에게 현지 한인들이 관광가이드를 권유했지만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이런 그를 일깨운 건 아내였다. 태국말도 못하는 아내가 가족들을 먹여 살리겠다고 미용실에 나가 일을 시작했다. 정 의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며 “결국 관광가이드를 시작하고 여행사를 차려 5년만에 방콕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로 키워냈다”고 말했다. 여행사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 가이드를 맡게 된 고객이 60대 부부였는데, 남편이 호텔에서 수영하다 사망했다. 그의 잘못은 없었지만 업체 신뢰도 하락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시신을 수습하러 온 사망자 아들과 친구들이 그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충북 청주의 한국청년회의소(J
1975년생인 조현영 인천시의원(국힘, 연수구 송도1‧3동)은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대학생 시절 IMF 외환위기를 겪었으나 4학년 때 영국계 휴대전화 제조 회사에 취직했고, 이후로도 줄곧 외국계 IT 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한양대 전자컴퓨터전기제어공학부를 졸업했는데, 입학 당시엔 컴퓨터공학과였다. 여러 과와 학부가 통폐합되면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것 역시 외환위기의 영향이었다. 외국 생활도 오래 했다. 중국은 상하이와 베이징 등지에서, 미국 뉴욕, 대만과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생활했다. 시작은 개발자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 운영 총괄을 맡았다. 사교적이고 깊게 친해지는 성격 덕분에 교민과 현지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회사 운영에도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조 의원은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사회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나도 지금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인천 토박이인 조 의원은 인천학익동초(현 인천연학초)와 인하부중, 인항고를 졸업했다. 줄곧 미추홀구에 살다가 2008년 결혼한 뒤 연수구 옥련동으로 이사했다가, 2012년부터 송도3동에 살기 시작
“경기도의 대표 관광 브랜드는 DMZ라고 생각합니다. DMZ는 세계가 주목하는 지역이고, 민간의 발이 닿지 않아 많은 동·식물이 자라는 생태의 보고입니다. 이곳에 산티아고를 뛰어 넘는 ‘평화순례길’을 조성하고 싶습니다.” 조원용 경기관광공사 사장은 지난 달 31일 진행된 경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청사진을 밝혔다. 지난 해 12월, 2년간 공석이던 경기관광공사의 수장으로 임명된 조 사장은 도의회 인사청문회 때부터 DMZ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며, 관광 활성화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취임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그는 네 차례나 DMZ를 찾기도 했다. 조 사장은 기존에 둘레길이 만들어진 지역 외에 철책 안쪽으로 길을 조성하고 싶다고 전하며, 또한 DMZ 내에 남북정상회담 등을 유치할 수 있는 호텔을 건립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잠깐 왔다가는 것과 머물머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단층 또는 저층으로 건물을 지어 활용할 수 있는 방법 등도 고민 중”이라며 “숙박시설과 먹거리 등이 생겨나면 접경지역 및 경기북부 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더불어 머물지 않고 지나쳐가는 경유형 관광 중심인 경기도 관광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경기도의회 첫 개방형 사무처장으로 임명된 김종석 사무처장은 “시스템과 제도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모두 허구”라며 도의회의 제도 구축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처장은 31일 경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의회가 집행부로부터 인사권 독립이 됐는데, 원론적으로 독립이 됐다는 것은 자체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먼저 도의회 사무처를 집행부가 감사하는 것에 대해 “의회 사무처가 일을 하는데 집행부가 감사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감사를 위한 독립적인 팀을 만드는 것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도의회의 인사권이 독립됐음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이나 제도가 부족해 의회가 자체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하는 제도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만 이를 독단으로 할 수는 없다”며 “우선 문제제기하고, 의원들과 공직자를 설득하는 등 논의하고 제안하는 것을 고민해보는 차원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사무처장은 또 정책지원관의 업무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것에 대해 개인의 역량보다는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80명가량의 정책지원관이 얼마만큼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문제는 내 뜻
경남 밀양 출신인 박창호(국힘·비례) 인천시의원은 2남 3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학창시절 아버지 밑에서 농삿일과 축산일을 돕고, 동생들도 잘 챙기는 든든한 자식이었다. 중학교를 졸업 후 17살이 됐을 때 그는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을 맞는다. 고등학교 진학 대신 부산에 있는 조선업 관련 직업훈련소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직업훈련소였다. 이곳에서 1년간 배운 배관·용접 기술로 조선회사에 들어갔다. 옛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부터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라중공업 등 안 다녀본 조선회사가 없다. 우리나라의 산업 역군이 돼 국내 조선산업의 활황기를 몸으로 직접 겪었다. 27살에는 국내 최연소 용접 반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1984년 건조된 국내 최초 시추선 ‘두성호’도 그의 손을 거쳤다. 박 의원은 “당시에도 조선업계는 호황기와 불황기의 사이클(주기)이 있었다. 불황기에는 노동자들을 등한시하고 필요할 때만 고용하다보니 최근까지 기술자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며 “다시 조선업계에 호황이 왔는데,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노동자들이 전부 육상으로 나갔다. 조선업이 일은 힘들고 돈은 육상보다 적어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용접을
임진모 이천시의회 의원(자치행정부위원장)은 지난 6·1 지방선거 이천시 다선거구에서 당선된 초선의원이다. 그는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LG산전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학부 시절에는 학생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후 이천에서 가업을 이어 '영동흥산'이라는 부산물비료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장호원읍 방추1리 이장을 맡아 행정업무와 주민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임 의원을 만나 초선의원으로써의 마음가짐 등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다. ▲정치에 입문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학부모회장님으로부터 상장을 받았는데, 학교 선생님이 아닌 지역주민에게 상을 받으면서 나도 커서 저런 역할을 해 보고 싶다는 선한 영향력을 받게 됐다. 이러한 영향력이 지역을 위해서 일하고 싶은 생각을 키웠고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며 지역주민을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이 정치인이 돼 제도권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 생각돼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초선의원으로써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계십니까 지역주민을 대표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초선의원으로써 아직 의정활동에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출마 때 다짐했던 초심을 되새기며 사회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아왔다. 제9대의왕시의회가 시작된지 반년이 지난 지금 전반기 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김학기 의장으로부터 새해를 맞는 각오를 들어본다. 9대 의왕시의회 반년이 지났는데 소감은 작년 7월 1일 제9대 의회가 개회되고 정말 쏜살같이 반년이 지나갔다. 중요한 일도 많았다. 국가적으로는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와 철도 사고, 이태원참사와 같은 안전사고 등 어려움이 많았고 우리 시의회도 행정사무감사를 비롯해 도시공사사장 임용후보자 인사청문회, 2023년도 예산편성 등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참 많았다. 이런 어려운 일들을 잘 헤쳐나간 동료 의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2023년을 맞이하는 각오는 코로나19가 식어들지 않고 올라가는 물가 등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 가운데 속에 기묘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우리 의왕시민에게 무언가 희망을 주는 의회가 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시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의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지역의 정책, 입법 기능을 충실히 하고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통해 의회 본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계양구민들이 계양의 주인으로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자랑스러운 계양구를 만들겠다.” 윤환 계양구청장은 민선 8기 구정 운영 방향을 ‘꿈을 향한 변화의 도시, 비상하는 계양’으로 잡았다. 이를 위해 5대 분야 57개 공약사업을 확정하고 구민의 참여와 전문가의 자문을 바탕으로 최상의 기획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정책자문위원회’도 발족했다. 윤 구청장은 지난 6개월 동안 현장 중심의 소통행정을 펼쳐 소중한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자부했다. 지역의 주요 현안 사업 현장을 찾아 추진 과정을 살폈고 그 결과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보도블록 전면 교체 공사 등 구민 호응이 낮은 사업은 과감하게 없애 약 40억 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올해는 계양구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 사업을 역점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먼저 지역경제의 성장 동력이 될 계양테크노밸리와 계양산업단지 조성이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한다. 계양산업단지는 올해 초 산업단지계획 승인이 완료되면 하반기 토지 보상과 착공이 이뤄질 전망이다.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첨단산업과 중소기업을 위한 연구개발시설을 적극 유치해 나갈 계획이다. 계양테크노밸리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해결해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