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기도는 민선 8기 도정의 기반을 다지면서 민생·경제·소통 분야에서 성과를 이뤘다. 새해에는 이런 기반을 바탕으로 한 단계 도약을 이뤄 ‘기회수도 경기’로 성큼 나아가겠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28일 진행한 신년 인터뷰에서 “도민의 힘을 모아 위기를 이겨내면서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등 선제적인 변화를 통해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취임 초부터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 더 나은 기회’를 도정 운영 핵심 가치로 강조해온 김 지사는 이 같은 도정 미래 방향을 담은 민선 8기 첫 조직개편안을 마련했다. ‘미래성장산업국’ 산하에 반도체·바이오·AI·빅데이터와 첨단모빌리티 등 개별 산업별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청년·베이비부머 등 세대별 맞춤형 지원을 담당할 ‘사회적경제국’도 신설했다. 기존 환경국은 기후변화와 미래 먹거리인 신재생에너지산업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환경에너지국’으로, 축산산림국은 국민 의식과 생활상 변화를 반영해 ‘축산동물복지국’으로 개편했다. 김 지사는 “이번 조직개편은 도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나아갈 방향과 시대정신을 담았다”며 “미래를 바라봤다는 점에
“경기도교육청이 아이들 교육을 제대로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경기교육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2일 경기신문과 신년 인터뷰에서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최대한 줄이고, 교육과정 운영과 예산 집행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해 7월 임 교육감이 취임하면서부터 경기교육은 진보 교육에서 보수 교육으로 새 전환점을 맞았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그에게 무의미했다. 오히려 새로운 경기교육으로 도약하기 위한 청사진 마련이 더욱 중요했다. 임 교육감은 취임 후 6개월 동안 교육 현장을 다니며 학생·학부모·교직원·교육 관계자들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는 도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학생들의 기초학력 저하를 꼽았다. 임 교육감은 “학교 교육을 중심 엔진으로 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보조엔진과 역량 있는 지역사회 자원을 양대 보조엔진으로 삼아 경기교육을 추진하겠다”며 “특히 AI 기초학력 진단과 개별 맞춤형 학습지원을 통해 학생들의 학력 격차를 해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임 교육감의 취임 6개월 소회와 구체적인 정책 방향에 대한 일문일답. ▲ 취임 후 6개월 소회는. 취임 후 교육공동체를 만나보며 학교 현장
문세종 인천시의원(민주·계양4)의 어린 시절 꿈은 개그맨이었다.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게 좋았다. 외향적이고 주변을 잘 챙기는 문 의원은 학창 시절 친구들이 끊이지 않는 ‘인싸’였다. 덕분에 반장도 했었고 대학생 때는 학생회장에 출마하라는 권유도 꾸준히 받았다. 광주광역시가 고향인 그가 인천에 첫발을 디딘 것은 2012년 말이다. 중국어를 전공한 문 의원은 전공을 살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청년 서포터즈 사무국 업무를 총괄했다. 청년 서포터즈는 한국으로 경기를 보러 오기 힘든 국가가 경기를 펼칠 때 인천 청년들로 구성된 응원단을 배치하고 이를 통해 아시아 국가와 교류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던 중 송영길 당시 인천시장을 만나 2015년부터 보좌관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그에게 정치는 낯설지 않은 일이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광주에서 기초의원과 광역의원이었고 선거를 돕기 위해 명함을 돌리는 일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했다. 문 의원은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정치를 하시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봐 정치에 반감이 생겼을 때도 있다. 동시에 이 문제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조
시민단체 ‘손잡고’. 2014년 초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현대차비정규직 노조 등에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 판결이 떨어지자 해고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2014년 2월 공식 출범한 단체다. 단체명의 의미는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이다. 현재 인권운동가 박래군 씨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해 국회 앞에서 단식투쟁에 나선 첫째 날인 지난해 12월 19일 박래군 상임대표를 만났다. 박 대표는 “대한민국이 해결해야 할 노동민주주의, 일터민주주의를 몇십 년 동안 이루지 않고 미뤄왔다”며 “국회가 절박함을 잘 모르고 있다. 입법기구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는 “권력과 경영계쪽에서 노조 파업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계속 선전해서 현재 노동과 시민이 분리된 상태”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러한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손잡고’는 ▲손배가압류 당사자 토론회 ▲연극 ‘노란봉투’ 및 ‘작전명: C가왔다’ 공연 ▲노동법 모의법정 경연대회 등을 꾸준히 개최하며 시민들에게 문화적으로 노조법 개정의 중요성을 알려내려고 노력했다. 박 대표는 2009년 쌍용자동차나 올해 대우해양조선 파업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시민들
“연임의 기쁨이 크지만 경기도 체육의 수장이라는 중책을 연이어 맡겨주신 만큼 어깨가 무겁습니다. 재출마 하며 여러분께 약속드렸던 공약들을 하나하나 실현해 가면서 경기도 체육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재선에 성공한 이원성 경기도체육회장은 지난 달 28일 경기도체육회관 7층 회장실에서 진행된 신년인터뷰에서 기자들과 만나 “구체화된 주요 공약사항들을 실현하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사무처 담당 부서와 체육회 중장기 비전을 공유해 실천 가능한 과제들을 도출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민선 1기 도체육회의 여러 사업들이 경기도로 이관되는 일이 있었다”고 입을 뗀 이 회장은 “경기도 체육의 큰 아픔이고 체육인을 무시한 처사”라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체육인들이 단합할 수 있었고, 체육인들의 지지를 다시한번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민선 2기 출발에 가장 중요한 것이 타 기관에 이관된 사업을 전부 가져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에서 체육회 예산을 증액시켜줘 위안이 됐다는 이 회장은 “도의회 여야 의원들에게 추경 그 이상으로 예산을 확보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며 “도체육회가 지난 3년 동
구리시의회 권봉수(權奉洙) 의장은 지난 4대와 5대의원을 지내고 8년여 공백을 갖다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다시 출마해 당선되고 3선의원으로서 의장에 선임됐다. 민주당 5명, 국민의힘 3명의 여소야대 분포 속에 원구성시에 여당의 반발 속에 원구성을 마쳤으나 이후 사태를 수습하고 정치 경륜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의회를 원만하게 시의회를 이끌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대한민국 지방자치 정책대상 지방의회 시·군·구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오랜 공백을 뚫고 지역정가에 컴백해 9대 의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권 의장을 만나본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시민 여러분의 뜨거운 지지와 성원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제9대 의회 출범 후 지난 6개월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시민과 함께하는 구리시의회를 위해 정말 쉼없이 달려왔습니다. 가장 큰 성과로는 구리시의회가 지난 10월 12일 제1차 정례회 제4차 본회의에서 구리시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해제 촉구 결의문을 시의원 모두 만장일치로 채택함에 따라 지난 11월10일 정부가 규제지역 추가해제 지역 대상으로 구리시를 지정하였고, 구
이용창 인천시의원(국힘, 서구2)은 인천 서구에 4대째 뿌리를 내린 인천 토박이다. 서구에 있는 석남초·제물포중을 나왔고, 고등학교를 중구 도원동에 있는 광성고로 진학했다. 당시 체육특기생으로 진학할 수 있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편도로 50분이 걸린는 거리였다.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없어 동구 송림동에서 내려 한참 걸어가야 했다. 단순히 취미로 초등생 때 운동을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자 본격적으로 체육특기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운동이 재미없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 의원은 “운동으로 캠퍼스의 낭만을 저 멀리에 있었다”며 “현재 태권도·합기도 등 단수를 모두 합하면 15단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정치에 꿈이 있던 건 아니었다.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정치인의 경호 업무를 제안받았고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운동으로 쌓은 기초체력은 정치 활동에도 도움이 됐다. 선거 운동에도 몇 배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었다. 2014년 드디어 제7대 서구의회에서 최연소 구의원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자신의 고향인 서구 가좌1~4동이 지역구였다. 4대째 서구에 살아가는 만큼 지역주민들과 친구의 부모님, 아버지의 친구, 선배, 후배로 연결돼 누구
임관만 인천시의원(국힘·중구1)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생업에 뛰어들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경기도 양평군에서 자란 그는 4형제 중 3째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가 공장에서 일을 했다. 어느정도 여윳돈이 생긴 그는 태권도장을 차리며 새로운 인생은 맞이한다. 태권도장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다. 임 의원은 보육교사였던 아내에게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중구 율목동으로 넘어와 터를 잡았다. 한식 식당을 차려 돈을 벌다 아내가 운영할 학원을 차렸다. 이때 임 의원은 통장을 시작했다. 이후로 통장 6년, 조기축구회 6년, 자율방법대 2년을 한 그는 어느새 보니 본인이 ‘동네 인싸’가 되어있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출마를 권유하기도 해서 당시 정당공천이 없는 내천제 4대 때 당선이 됐다. 이후 그는 끊임없이 정치 길을 걸었다. 고향이 강원도 보수세가 강했던 그가 한나라당을 선택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5대 땐 200여 표 차이로 낙선했고, 6대 땐 ‘나번’을 받고 당선, 7대엔 ‘다번’을 받고도 당선됐다. 8대 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에도 그는 굴하지
“선택과 집중으로 그동안의 공백을 메꿔야죠. 장점은 극대화, 허점은 빠르게 보완할 것입니다.” 8개월의 공백을 깨고 경기도일자리재단(재단)의 수장이 채워졌다. 증명된 성과를 ‘선택’해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집중’한다는 채이배 대표이사다. 지난 2일 취임한 채 대표이사는 13일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자리였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있다”며 “어떻게 하면 도민들을 만족시켜 드릴 수 있는지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도의회 인사청문회에서 ‘적합’ 판정을 받고 무난하게 인사청문을 통과한 채 대표이사는 의원들의 지적과 응원에 제대로 된 ‘성과’로 보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 대표이사는 “일자리 정책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충분하다고 자부한다. 청문회 당시 정책이나 재단의 향후 방향에 대해서 충분히 말씀을 드렸다”며 “실력과 성과로 직접 보여드리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단의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꿈꾼다. 여성, 중장년, 청년 등 대상 맞춤형 일자리 서비스에서 칸막이를 없애고 개개인에게 맞는 ‘수요 맞춤형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이다. 채 대표이사는 “취업 알선, 직업 훈련 등 개개인들이 원하는 서비스는 다
나상길 인천시의원(민주, 부평4)은 같은 회사에서 7개 부서에 근무했을 만큼 능력 좋은 직장인이었다. 전라북도 김제 출신인 그는 학창 시절을 김제에서 보내고 전주에 있는 BYC에서 일했다. 영업관리·생산·기획·인사·총무·자재·감사 7개 부서에 있었는데, 당시 사기업에 입사하면 한 부서에서 정년까지 있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는 실력과 운 모두 좋았다고 자평한다. 인천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직장 덕분이었다. 1987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있는 본사로 발령 나면서 부평구 산곡동으로 이사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2003년 말 퇴사한 그는 제2의 고향인 부평을 위해 봉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민자치위원회장과 주민참여예산위원장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운영위원회, 산악회, 호남향우회 등에서 활동했다. 부평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자 주변 사람들이 구의원 출마를 권유했다.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애로사항을 구의회에 가 직접 이야기하길 바랐다. 2010년 지방선거에 도전했지만 ‘나’번을 받았다. 기초의원은 한 선거구에 당마다 여러 명이 출마할 수 있어 가나다순으로 기호를 받게 되는데, 앞 순번의 기호를 받는 사람이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