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제사회는 물론 우리 사회에도 많은 우려와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여러가지 영향중에서 과거 핵 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미국 러시아 영국이 참여한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안보와 경제 지원을 보장받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당면과제로 삼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기에 충분하다. 북한 핵문제는 지난 90년대부터 우리와 국제사회가 나서 해결한다고 했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해결이 어려운 주된 요인은 핵무기는 자위적 수단이고 군축차원에서 북한 핵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북한의 무리한 요구에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북한 요구의 강도가 약해지거나 변화할 것 같지 않아 보여 매우 우려스럽다. 북한 핵문제가 방치되면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안보 불안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북한이 우리를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데 과도하게 문제삼아 북한의 반발을 초래하고 한반도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하기도 한다. 이는 북한의 호전성을 외면하면서 북한 지도부의 합리적 판단과 선택에 대한 기대가 큰데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하지만 북한이 잘못된 판단으로 이판사판식으로 핵무기를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어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의 준말인데요, 직역하면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해야 한다’쯤이 될 거예요. 살이 연해서 부서지기 쉬운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와 같이, 정사(政事)를 다루는 데도 차분하게 기다리며 세심하게 살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대요. 바야흐로 20대 대통령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네요. 워낙 ‘비호감 대선’이니, ‘막장 드라마’니 하는 악평이 지배한 선거전이어서 난생처음 보는 험궂은 장면들이 넘쳐나고 있지요. 국민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비전도 딱히 없고, 시대정신을 표상하는 구호도 없어요. 시종일관 네거티브로 점철된 선거전이 유권자들의 시름만 깊어지게 만든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예요. 그래도, 사뭇 전개되는 팽팽한 진영 대결 구도만큼은 예나 마찬가지인 듯해요. 상대방의 약점만 골라 침소봉대하는 흠집 내기 일변도, 나라 살림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우선 환심을 사고 보자는 식의 포퓰리즘 난무, 정치 수준을 높일 개혁 프로그램 경쟁의 실종 등을 특징으로 정리해도 될 것 같네요. 최선도 차선도 아닌 차악(次惡)을 골라야 하는
神은 세상 모든 만물을 주관할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 그리고 창조한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꽃을 주었다. 꽃이라 이름 불러주기 전에는 몸짓에 불과했으나 알맞게 불러 줌으로써 무엇이 된다. 흔들리며 피는 꽃도 있고 이름을 불러줌으로 꽃이 되기도 한다. 이것을 생물학적 성(性)과 사회학적 성(性)으로 구분하면 젠더(gender), 섹스(sex)가 된다.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불러내고 응답함으로써 완전한 무엇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균형이 깨지면 갈등이 생기고 권력과 힘에 의한 폭력이 생기는 것이다. 여성은 꽃 인가?라고 물으면 남북한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말할 것이다. 남쪽사람은 ‘빵과 장미’ 아니면 다른 무엇일 것이다. 북쪽출신인 나는 노랫말 가사를 생각한다. 여자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때 남쪽남자는 ‘너 나와 친구할래, 아니면 남자할래’고 물음으로써 자신이 남자임을 확인시킨다. 북쪽남자는 무엇이라고 할까. ‘너 나와 동무할래 아니면 오빠할래’고 하여 자신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근접시킨다. 연애하는 과정에도 오빠가 아니라 동무라고 하기도 한다. 동지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고 동무는 친구이다. 동지라는 말보다 동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동무에서 연인
‘비호감선거’라는 말 자주 듣는다. 영웅부재시대라는 말 떠올린다. 아버지 집을 누가 비싸게 사줬다네. 법카로 초밥 수십 인분을 한 번에 사먹었다네. 살아있는 소 가죽 벗기는 푸닥거리로 뭘 노렸지? 대장동 직접 사인한 서류가 왕창 나왔대. 검사 사위 덕 듬뿍 봤다네. 아들 퇴원에 관용차 썼다더군. 주식시세 조작해 돈 벌었다네... 이런 일들, 전에는 구렁이 담 넘듯, 흘러갔다. 모르는 척해야 현명하다 했다. 심지어 ‘순리(順理)’라고도 했다. 권력과 언론의 유착은 매우 정교해서 아직도 ‘파워 만땅’이라고들 한다. 민초(民草)들은 뭐지, 세금만 내는 루저? 개돼지? 지금도? 전에 영웅 또는 천사를 뽑았다면, 착각이다. 박정희 전두환 등을 뽑았던 과거 선거는 ‘호감선거’였나? 백성 입 닫아걸고 언론에는 아무 얘기도 못하게 하면, 그는 영웅이었다. 어릴 적, 내게 대통령 박정희는 천사였고, 잘생겼고, 정의 그 자체였다. 좀 지나 ‘사나이’ 전두환 일대기는 주먹 불끈 쥐게 하는 영웅담이었다. 이순신 장군보다 위대했다. 착각을 강요했다. 심지어 충무공과 지들을 겹쳐보이게 하는 시도도 벌였다. 장난도 심했지. 비밀 없는 세상, 영웅이 되거나 만드는 ‘작전’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평등의 큰 뜻을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기대어 이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을 합하여 이를 널리 밝히며, 민족의 오래도록 변함없을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이 드러남에 따른 세계 개조의 기회에 따라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제기함이니 이것이 하늘의 뜻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가 함께 생존하고 같이 살아 나갈 권리의 정당한 움직임이니 하늘 아래 어떠한 것이든 이를 막거나 억누르지 못할 것이니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비롯하여 역사가 시작된 이래 몇 천 년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겪은 지 지금까지 10년이 지났으니 우리 생존권을 빼앗긴 것이 무릇 몇이며, 정신적 발전에 장애가 됨이 무릇 몇이며, 민족적 존엄이 훼손된 것이 무릇 몇이며, 새로움과 독창으로써 세계 문화의 큰 흐름에 기여하고 도움을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무릇 몇인가. 아아 슬프도다. 오랜 억울을 드러내려 하면, 지금의 고통에서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1805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황제로 즉위한다. 유럽정복 전쟁의 연속적인 승리는 그를 위대한 영웅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 전쟁에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확산을 위한 전쟁의 명분 또한 작동했다. 일종의 “해방전쟁”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독일의 전신인 프러시아는 나폴레옹의 영향으로 시민들의 정치기본권인 권리조항과 함께 봉건적 의무의 해체, 그리고 국가공직이 능력있는 시민들에게 개방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유럽의 구질서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은 위협받게 되었고 이들은 결속했으나 패배의 연속이었다. 프랑스에 의한 독일의 패배는 따라서 지배계급의 패배였지 독일 민중의 패배는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 군대는 프랑스 혁명 이후 그 위세가 달라진 민중으로 구성된 군대였으니 전쟁은 영토 전쟁을 넘어 사상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 군대는 시민 혁명군의 국제화를 이뤄내고 있었던 셈이다. 루카치가 그의 『역사소설』에서 이 시기를 “대중이 역사를 집단적으로 체험한 시기”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옳다. 역사소설의 대중적 수용이 가능해진 조건이 만들어진 것
설마설마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푸틴이 전쟁을 결정하자말자 우크라이나 전역이 미사일공격으로 불타올랐고 러시아의 기갑부대는 국경을 돌파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전쟁마저 게임이나 영화처럼 접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뉴스는 폭발하는 화염과 번쩍이는 섬광을 반복해서 보여주기 바쁘다. 전황은 그래픽까지 동원해 스포츠방송처럼 중계된다. 그러나 현실의 전쟁은 지하철에 피신한채 두려움에 떨고있는 시민들과 거리를 가득메운 피난차량 행렬에서 보이듯이 참혹한 실사판 지옥이다. 나는 이런 우크라이나전쟁 뉴스를 보면서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젤렌스키, 또 다른 사람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윤석열이었다. 내가 전쟁을 일으킨 푸틴보다 젤렌스키를 떠올린 이유는 분명하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또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침공을 결정한 푸틴과 러시아가 비난받음은 지당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러시아가 한사코 반대하던 나토의 동진에 우크라이나가 디딤돌을 놓아주려할 때, 자국의 안보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전쟁을 선택한 푸틴에 반해 코메디언 출신 젤렌스키의 정치는 실패한 것이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
인류가 진보하는 것은 바로 종교적 신앙이 진보하기 때문이다. 신앙이 진보한다는 것은 새로운 종교적 진리를 발견하거나, 인간의 세계와 신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탐구하는(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이해와 결부된 모든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는 일이다. 새로운 종교적 진리라는 것은 없다. 유사 이래 모든 현자의 세계 및 신에 대한 관계는, 오늘날의 것과 완전히 같다. 종교가 진보하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미 발견되고 표현된 것을 정화하는 데 있다. 신앙이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서 가장 뛰어난 선각자들에 의해 도달된, 인생에 대한 가장 높은 이해의 지표이며, 그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도 언젠가 틀림없이 불가항력으로 그것에 접근해가게 된다. 진정한 진보, 즉 종교적 진보와 기술적, 과학적, 예술적 진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기술적, 과학적, 예술적 업적은 현대에서 볼 수 있듯 종교적 퇴보 속에서도 매우 위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을 탐구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온갖 미신과의 싸움과 종교적 의식의 해명, 정화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적 진보의 투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 권력의…
‘맹지’란 지적도상 도로와 접하고 있지 않은 땅을 말한다. 개발 가치가 작아서 매우 저렴하다. 지도를 보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육로가 막힌 맹지이다. 다행히 3면이 바다인 덕분에 해상교통로는 뚫려 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는 이 해상교통로를 활용하여 외부 세계와 교류함으로써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오늘날 이 땅의 가치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 안에 들어갈 정도로 커졌다. 언젠가부터 한반도가 중심이 된 지도를 거꾸로 걸어놓고 새로운 시각을 강조하는 것이 유행이다. 넓은 대양으로 뻗어나가는 시각적 이미지는 북쪽으로 막혀있는 지리적 답답함에서 벗어나 웅비의 나래를 펴는 즐거움을 준다. 요즈음 거꾸로 지도를 다시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불안하다. 오른편은 중국에 막혀있다. 위와 왼편은 일본 열도에 막혀있다. 시원하게 뚫린 넓은 바다는 어디로 가고 갑자기 꽉 막힌 ‘맹해’만 보이는가. 중국은 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을 풀지 않고 있고, 일본과는 과거사 재판 문제로 외교적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에 대한 현 정부의 외교가 너무 저자세라고 비판한다. 일본과의 문제는 보수·진보를 불문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는…
겨울의 끝자락이다. 마지막 추위가 매섭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페티카, 그는 함경도에서 태어난 노비의 아들이었다. 아홉 살 나던 해 가족을 따라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령 연해주로 이주한 그는 러시아 초등학교에 입학한 최초의 고려인이었다. 온 가족이 나무를 캐내고 돌을 주워내며 밭을 일구었지만, 세끼 밥을 먹기도 힘들었다. 그가 가출한 것은 열한 살 때였다. 선원이 되어 배를 타고 세계를 구경하고 싶었던 그는 무작정 연해주 최남단의 항구도시 포시에트로 갔다. 하지만 어린 그를 받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굶주린 채 지쳐 쓰러진 그를 구해준 사람은 러시아인 선장 표트르 세묘뇨비치였다. 페티카는 표트르 세묘뇨비치 선장을 따라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상의 흐름과 물정을 익혔다. 표트르 세묘뇨비치의 부인은 배에서 내린 그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고, 학교에 보내주었다. 러시아 정교회에 입교한 그는 표트르 세묘뇨비치 부부의 양자가 되어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러시아에 귀화한 그의 정식 이름은 초이 표트르 세묘뇨비치였다. 19세기 말 연해주에 이주한 조선인 중에 최초로, 유일하게 러시아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그는 사업가로 대성공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