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상해 일한 대가, 50억!’.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 아들의 이 발언은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버렸지만 한편으로는 기가 막힌 일이기도 하다. 어떻게 일해야 퇴직금을 50억이나 받을 수 있는지, 몸이 얼마나 상해야 50억이라는 위로금을 받는지, 우리는 매우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곽 의원은 문준용 씨에 대해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근거로 대통령에 대해 저격을 일삼았다. 이제 와서 보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결국에 문준용 씨에 대한 문제 제기는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검사출신 국회의원으로서의 경험과 지위를 이용한 곽 의원의 행동은 다른 곳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필자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도 곽 의원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다. 곽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요구하는 무지막지한 자료 요청에 직원들은 퇴근을 하지 못했고 이어지는 고소로 인해 업무 담당자는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업무담당자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경찰 조사로 인해 두려움을 호소하였고 심한 두통과 두근거리는 심장 등 심신 이상도 발병하였다. 당연히 경찰 조사 결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무혐의가 결정되었지만 곽 의원의 집요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27일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외벽을 청소하던 29세의 일용직 노동자가 추락했다. 49층 꼭대기에서 내려가며 청소를 시작해 15층 높이에서 줄이 끊어졌다고 한다. 그에게 외벽청소는 그날이 첫 출근일이었다. 처음 외벽을 타는 노동자가 외줄에 의지한 채 49층 꼭대기에서 허공으로 몸을 밀어낼 때 어떤 마음일까?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지배했을 것이다. 두려움을 밀쳐내고 첫발을 내딛기까지 그의 어깨 위에는 여러 이유가 켜켜이 쌓여져 있었을 것이다. 매달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삶의 절박한 요구들이.. 신산한 일용직노동자의 삶에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보통사람은 내려다보기조차 살 떨리는 높이에서 그는 그렇게 매달렸고 짧았던 젊음을 마감했다. 우리는 한해 산재로 882명이 죽는 나라, 그중에 37%인 332명이 이처럼 작업 중 떨어져 세상을 떠나는 나라다(2020년 기준). 비슷한 또래의 90년생 청년 한 사람도 산재(?)를 당했다고 한다. 업무상 과부하로 어지럼증을 앓았다는데 회사는 6년 근무한 그에게 퇴직금(위로금?)으로 50억을 지불했다. 모두가 다 아는 곽상도 의원의 아들 곽병채 씨의 이야기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그 대가를 받았을…
진정한 행복은 결코 단번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나날이 새롭게 완성으로 가는 길을 걷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을 배우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벗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지 쓰지 말아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음악은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켜는 것을 가르쳐주지만, 언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켜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오직 이성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르쳐줄 수 있다. 우리에게 이성을 부여함으로써 신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우리 스스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준 것이다. 지금과 같은 나를 창조한 신은 어쩌면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을지도 모른다. “에픽테토스야! 나는 네 보잘것 없는 육체와 초라한 운명에 훨씬 더 많은 것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해서 나를 원망하지는 마라. 나는 너에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주는 대신, 네 속에 나 자신의 신성의 일부분을 불어넣었다. 나는 너에게 선을 향해 나아가고 악을 피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나는 네 속에 자유로운 이성을 주
어린이놀이터 옆 정자나무 쉼터에 걸터앉아 어린이들 노는 모습을 본다. 손자 또래 아이들 대여섯 명이 콘크리트 의자에 가방을 얹어놓고 신나게 놀고 있다. 무슨 놀이인지 한 아이는 호루라기를 불고 다른 아이들은 도망을 치고 뒤를 쫓아가기도 한다. 검은색 반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었는데 한 사람 같이 토실토실 건강해 보인다. 사랑스러운 생명의 풋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조금 놀다 어디에서 다시 모이자고 했는지 썰물같이 사라져 갔다. 다른 어린이가 아빠 손을 잡고 등장한다. 아이는 그네를 타고 싶은데 잘 나가지 않는다. 앞으로 걸어갔다 뒤로 밀려오는 반동을 이용해 재밌게 타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빠가 다가간다. 아들을 그네에 앉히고 그넷줄을 꽉 잡게 하고서 밀어 높이 띄워준다. 아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한다.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사진을 아들에게 보여주며 함께 웃는다. 아빠의 환한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한동안 신나게 놀다가 아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돌아갔다. 얼마 후 동생인 듯싶은 서현이가 엄마와 함께 나타났다. 엄마는 딸 서현이가 어린지라 눈 안에서 놀도록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넷줄을 손으로 잡는 법도 알려주고 서현이를 발판에 잘 앉히고 조
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나오는 맹인모상(盲人摸象)이란 우화가 있어요. 바로 ‘장님(시각장애자) 코끼리 만지기’ 이야기죠.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장님들을 불러서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어떤지 말하라고 시켰답니다. 그러자 코끼리의 상아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무같이 생겼다”고 말하고, 귀를 만진 이는 “곡식을 까불 때 쓰는 키같이 생겼다”고 했어요. 다리를 만진 사람이 나서서 “다 틀렸다. 코끼리는 커다란 절굿공이같이 생겼다”고 우겼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굵은 밧줄처럼 생겼다”고 주장했죠. 정치권이 내년 3월로 예정된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끈 달아오르고 있네요. 주기적으로 인물을 놓고 견줘볼 수도 있고, 정책을 두고 따따부따도 할 수 있다는 건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 국민의 특권이죠. 선거철만 되면 이런저런 부정적인 평가나 불만이 쏟아지고, 지역과 혈연, 지연을 중심으로 갈등도 심화하므로 부아가 치밀 때도 없진 않아요. 그러나 어쨌든 권력을 잡겠다는 사람들을 무대에 올려놓고 생각과 말과 살아온 날들을 뜯어보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여야의 당내 경선이 치열한 작금의 정치권을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짜증이 납니다. 후보들은 자기의 면모를 정직
1960년대 말 나의 고등학교 시절, 지금은 100세가 넘으셨음에도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계신 김형석 교수님께서 10권으로 된 전집을 내셨다. 가난했던 시절, 아들이 그 전집을 사 달라는 간청을 거절할 수 없어 큰 결단을 내리시던 내 아버님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잠을 잊은 채 밑줄을 그어가며 연거푸 두 번을 읽었던 기억. 아마도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은 김 교수님이라고 나는 지금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근래 그분의 현 정부에 대해 비판 기고문, 인터뷰 내용이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같은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주위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아는 김 교수님은 그런 생각을 하실 분이 아닌데 혹시나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심이 사실이라면, 그분의 우리 사회에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그냥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남북문제, 나아가 민족의 통일문제는 이념의 잣대를 버리고 희망적 사고가 아닌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바른 길이 보인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김 교수님께서 현 대북정책에 비판적이라는 전제하에 그분의 의식세계를 합리적으로 한번 추론해 보자. 수구초심(首丘初心
한 남자가 거울 앞에 앉아 있다. 손에는 가위를 들고 있다. 그 남자는 그만 자기의 귓불을 싹둑 자르고 만다. 이 잔인한 남자는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였다. 1888년 크리스마스이브. 일요일, 온종일 비가 내렸다. 마을은 인적이 끊겼다. 창녀촌과 우체국만은 예외였다. 이 시절 우체부는 일요일도 근무했다.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고흐는 환청과 환각으로 몸부림쳤다. 그때 우체부가 동생 테오의 편지를 들고 왔다. 프랑스 남부 아를(Arles)에 있는 고흐의 노란집이었다. 비극! 하지만 아를은 고흐에게 영혼의 문이었다. 고흐가 아를에 정착한 것은 순전한 우연. 2년간의 파리생활을 접고 고흐는 남쪽으로 햇빛을 찾아 떠났다. 번잡한 도시생활과 북쪽지방의 살벌한 날씨에 짓눌려 따뜻한 태양이 그리웠다. 무엇보다 새로운 화법을 완성하기 위해 프로방스의 빛과 색깔들이 필요했다. 따라서 마르세유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데 사고 아닌 사고가 났다. 아를에 반하고 말았다. 결국 마르세유를 배신해야 했다. 아를의 농촌은 고흐에게 필요한 것을 다 줄 것만 같았다. 고흐가 도착한 건 2월. 엄동설한이었다. 그러나 곧 포근한 봄이 왔다. 고흐는 온통 헤집고…
어린이들에게는 크고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나를 받아들이듯이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수)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느님,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이것이 당신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예수) 왜 어린이는 대부분의 어른들보다 도덕적으로 높은가? 그들의 이성은 미신에 의해서 유혹에 의해서도 죄악에 의해서도 비뚤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완성으로 가는 길 위에 그들을 가로막는 장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어른들에게는 죄와 유혹과 미신이 가로막고 있다. 어린이들은 그저 살기만 하면 되지만, 어른들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완성의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청정무구한 어린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 곳이 되었을까! (존 러스킨) 아기들은 종종 그 고사리 같
동지(同志). 뜻을 같이 하는 자로서, 말이 통하는 동무 또는 어떤 비밀도 맘 놓고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친구를 일컫는다. 이 혈맹의 칭호를 3류정치가 가져가서 매우 위선적으로 쓰고 있다. 동지라 부르면서도 원팀정신을 산산조각 내는 민주당 대선 경선의 특정 후보를 비판한다. 당시(唐詩) 한편이 떠오른다. 이백 두보와 동시대인으로, 그 명성은 천년이 넘도록 조금도 줄지 않는 시인 왕유(699~761)가 있다. 이 삼거두(三巨頭)를 중국은 국보로 여기며 각각 시선(詩仙), 시성(詩聖), 시불(詩佛)로 존숭한다. 선생의 시편들 가운데 《酌酒與裵迪(작주여배적)》의 일부다. "白首相知猶按劍(백수상지유안검) 朱門先達笑彈冠(주문선달소탄관)" "평생을 서로 알고 지낸 친구도 자리나 이권을 다투게 되면 주머니 속 칼집을 만지작거린다네. 뿐만 아니라, 관직에 먼저 나간 권문세가의 자식들은 자네 같은 후배들이 뒤따라 진출하면 이끌어주기는 커녕 잘되나 보자며 비웃지. 세상인심이란." 작금 이 나라 대통령 선거 경선은 여야 공히 목불인견이다. 참혹하다. 우리 정치판은 거대한 쓰레기 더미다. 놀라운 것은 그 위에 두 송이의 장미꽃이 피었다는 점이다. 기적이다. 추미애의 포효, "검
수업시간에 가끔 아이들에게 공부가 재밌는지를 묻곤 한다. 그러면 우리 반 스물 한 명의 아이 중 세네 명 남짓한 정도는 공부가 재밌다고 말한다. 퍼센티지로 따지면 20%가 조금 안 되는 수치다. 공부에 재미가 없는 다른 아이들은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하는 거라서 하거나, 괴로워도 부모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다. 이런 상황이니 수업 시간에 교실 분위기가 절간처럼 삭막해지는 게 약간은 이해가 간다. 언젠가 반 친구들에게 모두가 공부를 꼭 잘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라서 예전에 알던 정답이 미래에도 맞을 거란 보장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과 어른들이 알고 있는 기존의 성공 방정식, 예를 들면 공부를 잘해야 좋은 직업을 얻고 성공한 삶을 살게 되는 게 완전히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공부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끝나자 아이들이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집이나 학교에서 대놓고 혹은 은연중에 공부를 잘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 배워왔는데 다른 소리를 하니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며칠이 지나고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엄마에게 공부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