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구동인’ 이라는 것이 있다. 그 청동으로(또는 청동처럼 색을 입혀) 만든 인체 모형은 혹자는 한의원에 진료를 받을 때 한 번씩 보았을 수도 있고 TV 드라마에서 한의원의 배경으로 봤을 법도 한 풍경이지만 실제는 침구경락학의 요약지도라고 할 수 있다. 예전의(긴 시간 전의) 침구학의 연구자들이 인체의 경락과 경혈을 청동으로 만든 인체모형에 새겨 표시해 놓았던 것인데 세월이 흘러 현대에는 보급형 플라스틱 인체모형에 WHO에서 정한 국제표준경혈명의 영문이 새겨져 있기도 하고 최근은 경혈경락 어플 속의 3D 모형으로 컴퓨터나 모바일 속의 이미지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내용은 긴 세월 동안 변함이 거의 없다. 나의 진료실 한켠에도 꽤 큰 ‘침구동인’이 그렇게 시간을 건너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그 동인을 한의원에 ‘침 한번 맞으러’ 치료를 받으러 왔지만 한 번도 침 치료를 받은 적 없는 이들에게 동인의 몸에 새겨진 오랜 지혜의 흔적과 함께 소개한다. 환자들 중에서도 한의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 오랜시간 공부를 한 분들도 만나기도 하고 모 대학의 피부미용학 수업시간에 안면의 해부학과 함께 경락과 경혈을 가르치는 분의 경락학에 관한 지식을 뽐내는 것을 접하기
최근 북한 동향중에 우리가 궁금해하는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우선 김정은 총비서가 코로나19로 인한 국가비상방역태세하에서 당 간부들의 태만과 무능으로 발생했다고 하는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 사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극심한 식량위기를 토로하면서 인민들의 어려움 해소를 위해 직접 서명해서 시행했다는 ‘특별 명령서’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척 수척해 졌다고 북한 매체에서 보도되고 있는 김정은 총비서의 건강상태는 어떤지가 대표적인 궁금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대화가 활성화되고 북한이 개방사회라면 이러한 우리의 궁금증은 많은 부분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과 북한의 폐쇄성으로 인해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의 내부 동향을 파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이 직접 탐색하는 휴민트 정보에 근거하거나 통신 감청 등 최첨단 장비를 통한 시진트 정보를 통한 방법이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소원한 상황에서는 휴민트 정보는 기대하기 어렵고 시진트 정보도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어 매우 제한적이다. 남북관계가 소원할 때 북한 동향을 파악하는 방법은 북한의 방송 보도나 대북소식통이라고 하는 북
이제 갓 마흔이다. 스물아홉에 고향 함경도 청진을 떠났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처럼 그도 몇 개국을 경유하여 목적지 서울에 도착했다. 태영호나 지성호처럼 황송한 신분(국회의원)이 된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어렵게 산다.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그는 이화여대 국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일본에서 공직자로 일하던 남편을 만나 가족을 이루었다. 그리고 2년간 일본에 살면서 남편과 함께 통일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신촌에서 네 살 된 딸 하나와 다복하게 살고 있다. 객관적으로, 탈북민들 가운데 이 정도로 안착한 경우는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빛나는 명함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좀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는 정치 경제 분야에서 세속적으로 크게 성공한 소수의 탈북자들과 질이 다른 성취를 해왔다. 이는 점점 더 탄탄해지고 규모도 더 확장되고 있다. 그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눈 뒤에, 그에게 도움될 천사들을 모으는 중이다. 지금 남쪽에는, 목숨 걸고 가족과 삶의 터전을 떠난 뒤, 과장 없이 지옥을 건너서 마침내 서울에 들어온 북쪽 이주민들은 3만 5000명(2020년 기준)이다. 그 중 2/3는 여성이다. 그 가운데 대학생은 2천 명이 넘는다.
“그렇게 많은 (유대인) 동포들이 고통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내면의 준비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에티는 (집단 학살의) 두려움을 직시하고 마음을 가누고 깊고 고요한 중심을 찾는 법을 배웠다. 환상에 빠지려는 유혹에 맞서 투쟁했다. 그리고 상황이 악화되자 피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심리적 연습(mental rehersal)을 했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예상함으로써 그 힘을 빼앗을 수 있었다. 오늘 진정으로 경험한 것은 티데의 방 한 구석에 있는 목련이었다. 그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놀란 나는 그 자리에 뻣뻣이 굳어버렸다. 거의 5분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바닥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 거기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차마 그 꽃들 곁을 떠날 수 없어서 손가락 끝으로 꽃잎을 아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티데에게 “매일 네 방에 와서 이 목련을 보면 안 될까?”라고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젯밤 비를 맞으면서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먼 길을 걸어 집에 왔다. 그리고 꽃가게를 찾아 길을 조금 돌아가서 큰 장미꽃 다발을 사 왔다. 그리고 그 꽃들이 지금…
33년 전 오늘,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이라는 제목의 7.7선언을 발표했다. 7·7선언은 적대적인 냉전체제에 기반해 있던 통일외교정책의 근간을 북한 및 사회주의권을 대상으로 상호교류와 협력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6개 항의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이 선언이 나올 당시 대한민국은 혼돈스러웠다. 87년 6월 항쟁을 거치고도 대통령선거가 군부의 집권연장으로 귀결되자 길거리는 ‘더 많은 자유와 더 넓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투쟁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났다. 청년학생들은 '6·10남북청년학생회담'을 강행하며 경찰과 충돌했다. 88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대한민국은 중무장한 백골단과 전투경찰에 시민들이 쫓기는 군화발과 지랄탄의 나라였다. 이런 상황에서 선언은 자뭇 생뚱맞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역사적 전환의 작은 디딤돌이 되었다. 그때 길거리를 뒤덮었던 ‘자유’와 ‘민주’, ‘통일’을 열망하는 외침들은 33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7·7선언의 요체가 된 남북교류는 여전히 어려움에 처해있기는 하지만 정치적 자유와 형식적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80년대의 열망은 진작에 완성되었다. 누구도 정부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모
조국 전 장관 부녀의 삽화를 성매매 기사에다 쓴 조선일보 사태를 보고 실로 오랫동안 품었던 궁금증이 터져 나왔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일까? 보통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일까? 이 궁금증은 언제부터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선일보 기자들을 투명 인간 취급을 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그들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가 닿을 수 없는 머나먼 나라의 차갑기 그지없는 사람들이었다. 감히 다가설 수 없는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그들에 대한 궁금증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툭 터지고 마는 봉숭아 씨처럼 터졌다. 엉뚱하게도 그들은 그들 자신을 사랑할까, 하는 의문. 곧바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답이 메아리쳤다. 왜일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십중팔구 자신을 객체화한다. 준열하게 자신을 꾸짖는다. 나는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나와의 끊임없는 부딪힘 속에서 날마다 새롭게 탄생하기 때문에 자신과의 대화는 필수요소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다른 나와 아름다운 투쟁을 할까?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랬다면 조선일보가 한 면을 통틀어 사과하는 일이 있었을까? 조 전 장관에게 10억 원의 손해배상소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섹스 심벌이자 금발의 백치 미녀로 불리지만 정작 자신은 이러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연기를 배우고 프로덕션을 차려 스스로 바라는 모습을 구축하기 위해 애썼다. 노마 진 모터슨(Norma Jeane Mortenso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녀는 친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일곱 살 때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보육원과 양부모 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고 결혼을 하고서도 남편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의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 불행으로 점철된 과거를 딛고 모델과 배우 일을 하며 마침내 할리우드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지만, 약물 중독으로 36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사후의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이미지에 갇힌 채 커다란 동상으로 남아 수모를 당하고 있다. 2011년 조각가 수어드 존슨은 영화 ‘7년 만의 외출’에 나오는 먼로를 재현한 동상 ‘포에버 마릴린’을 제작했다. 높이 8미터, 무게 약 15톤의 이 거대한 동상은 2년이라는 제작 기간이 걸렸고 바람에 날리는 치마를 부여잡는 먼로의 속옷을…
우리는 영혼으로 숨 쉬며 살아야 한다. ... 생각만으로 산다면 불쌍한 존재에 불과하다. 내면의 세계는 외부 세계만큼 실제이다.... 내면의 세계에도 풍경, 형태, 가능성, 한없이 넓은 지역들이 있다. 나는 일종의 너그러움으로 충만하며,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너그럽다... 그리고 모든 존재와 하나라고 인식한다. 더 이상 이것 아니면 저것을 원하지 않으면, ‘삶’은 위대하고 선하고 매혹적이고 영원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지나치게 자신에게 연연하고 허둥대고 실수하면 거대하고 영원한 흐름인 삶을 놓친다. 개인적 야망이 모두 사라지고, 지식과 이해에 대한 갈증이 가라앉고, 영원의 작은 조각이 휘몰아치듯 날갯짓하며 내게로 내려오는 것은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나는 그 순간들이 매우 감사하다. 요즘은 한 잔의 커피도 경외감을 지니고 마셔야 한다. 매일매일이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이여, 요즘은 걱정이 많은 시기입니다. 오늘 밤 눈앞에 인간이 고통받는 장면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진 채 어둠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신이여, 미리 보장할 수는 없지만, 당신을 도와 내 기력이 점점 빠져나가는 걸 멈추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명확해지고 있습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시사주관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기회’, ‘김정은 위원장은 솔직하고 열정적이며 강한 결단력이 있는 사람’ 등의 표현을 써가며 남은 기간 남북대화 재개 및 관계복원에 대한 의지를 내 보이면서 간접적으로 북한에 대한 호소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북한은 자강력, 자력갱생을 내세우며 대화도 도발도 하지 않는 북한식 ‘전략적 인내’를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북한의 문을 열 수 있을지를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북한은 2008년 6월 싱가포르 회담의 추억과 2009년 3월 하노이 회담의 노딜 교훈을 곱씹으며 남한의 중재자로서의 한계와 미국에 대한 불신, 좀 거칠게 표현하면 ‘믿을 놈 하나 없다’는 것이 북한의 현재의 심정일 것이다. 집권초기 꿈 많던 문재인 정부, 제6차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로 인한 곤혹스러움, 북한선수단 평창올림픽 참가로의 대반전, 그리고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특히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의 평양시민 15만 명 앞에서의 연설과 남북정상의 백두산 동반 등정에서는 남북공동체 실현이 눈앞에 와 있는 듯했다.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무엇이 어디서부터…
여야 정치권이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종착점으로 놓고 굉음을 내며 달리기 시작했군요. 야속하게도, 품격 있는 선거는커녕 대선주자들과 각 정당은 기습적으로 상대방 쓰레기통 걷어찰 궁리에만 몰두하고 있는 한심한 양상입니다. 어째 이번에도 퇴행적 진흙탕 드잡이 구태가 반복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네요. ‘X파일’ 논쟁과 ‘색깔론’이 영락없이 정치무대에 맨 먼저 등장했습니다. 한 정치평론가가 흔들어댄, 이른바 ‘윤석열 X파일’이라는 문건을 두고 정치꾼들끼리 한바탕 험구 난타전을 주고받았군요. 언제나 그렇듯이, 허접한 마타도어는 ‘검증’이라는 거창한 명분의 외피를 쓰고 등장합니다. 후안무치한 이중잣대가 횡행하기 시작했네요. 나의 언행은 ‘검증’과 ‘해명’이라고 우기고, 상대의 주장은 ‘모함’과 ‘변명’이라고 몰아칩니다. ‘증거조작’마저 불사하는 더러운 게임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닙니다.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왕의 눈을 가로막거나 은밀히 짜고서 벌인 만행의 역사는 드물지 않지요. 때아닌 ‘점령군’-‘해방군’ 논쟁이 불거졌군요. 여권 선두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날 경북 안동 이육사문학관을 찾아 해방 이후 이 남한에 온 미군을 ‘점령군’이라며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