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랐다. 운전사 뒷좌석에 앉았다. 버스가 모래내 시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마지막 손님으로 30대 중반 나이의 여인이 올라왔다. 그녀가 신용카드를 체크하는 기계에 대니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다시 다른 카드를 꺼내 기계에 댔다. 기계는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카드’라고 나무라듯 말했다. 당황한 여인의 얼굴에는 놀라움의 그늘이 짙게 깔렸다. 그녀는 기사에게 조금 있다 계산하겠다고 말하고 나의 뒷좌석으로 가 앉았다. 그냥 보기엔 여유 있는 가정의 부인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적당히 생활하며 지내는 모습도 아니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다시 기계 곁으로 가서 카드를 댔다. 또 실패였다. ‘내 카드를 줄까. 안 받는다면!’ 잠시 망설이다 선뜻 카드를 내밀었다. 눈으로는 꼭 받으라는 사인을 보내면서. 그녀는 내 카드를 받아 기계에 댔다. 기계는 또 ‘조금 전 사용한 카드입니다.’라고 딴소리를 했다. 기사가 재빨리 어딘가를 손대니 그때서야 받아들였다. 여인은 한숨을 쉬더니 내게 카드를 돌려주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뒷좌석으로 가서 앉았다. 약속한 사람을 만나 추어탕을 먹기로 했다. 식대는
자신의 허물을 알고 있는 자만이 남의 허물에 너그럽다. 아들딸들아! 만약 누군가가 너희를 모욕하는 말을 하거든, 아랑곳도 하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마라. 그러나 만약 너희가 남을 모욕하는 말을 하였다면 “우리가 못할 말이라도 했단 말이냐? 아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양심을 속여서는 안 된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며, 너희들 자신의 기도나 친구의 중재에 의해 너희가 모욕한 자와 완전한 화해를 이룰 때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탈무드) 깊은 강은 돌을 던져도 조용하다. 모욕을 당했을 때 몹시 흥분하는 사람의 마음은 강이 아닌 웅덩이다. 우리는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며 겸허하게 살자. 살이 타서 재가 되기 전에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참회하자. (사디) 어리석은 사람의 말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은 침묵이다. 우리가 대답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반드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모욕으로 모욕을 갚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장작을 던지는 것과 같다. 자신을 모욕한 자에게 평온한 얼굴로 대하는 자는, 그것으로 이미 상대방을 극복한 것이다. 마호메트와 알리는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났는
며칠 전 지인을 따라 서울 중심가의 음식점을 다녀왔다. 빌딩 숲이 아닌 제법 한적한 장소에 있었고, 그 규모 또한 제법 컸다. 천장이 유리로 뚫려있어 자연 채광이 아주 좋았고, 층고도 꽤 높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가게를 둘러보던 중, 한편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봤을 법한 흰 벽과 조명 스탠드가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이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원래 사진가로 스튜디오로 사용하던 장소였는데 업종을 변경했다고 한다. 수많은 유명 연예인들과 광고 사진을 만들어내던 장소는 이제 음식점으로 바뀐 것이다. 사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포토키나(Photokina)에 대하여 들어봤을 것이다. 포토키나는 1950년의 첫 개최를 시작으로, 독일 쾰른메세(Koelnmesse)에서 진행되는 세계 최대의 사진과 영상기기 전시회이다. 수십 년간 각 관련 업체들은 이곳에서 그들의 최신 제품을 선보이며,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알렸다. 2018년까지는 2년 주기로 9월에 열렸는데, 2019년부터는 매년 5월에 개최를 예정했다. 이는 디지털 이미지 산업의 발전속도가 워낙 빠르고, 그 변화의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올해 초 포토키나 공식 홈페이지에서
새치네는 이북의 함경도 방언으로 아주 작은 민물고기이다. 까나리처럼 작고 반짝이는 몸통을 가지고 있다. 다른 민물고기와 같이 그물에 잡혀도 유별나게 팔딱여서 새치네이다. 어떤 사람들은 새치네를 ‘쫑개’ 또는 ‘미꾸라지’라고도 한다. 제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이것을 일컬어 보양식 ‘새치네 탕’이라 한다. 삼복이 시작되면 농촌에서는 작은 수로나 논밭의 물꼬에 된장을 밑밥으로 통발을 놓는다. 반나절이면 작은 것들이 오글오글 통발에 들어선다. 그물로 늪지나 강변에서 잡기도 한다. 7월에 잡는 새치네는 아주 작다. 가을이면 몸집도 커져서 내장을 갈라야 하지만 적기에 잡은 새치네는 이물질을 토하게 하고 그대로 요리한다. 생명력이 강한 이것이 소금을 치고 그릇의 뚜껑을 덮으면 세차게 뛰어올라 팔딱이는데 그 소리가 흡사 굵은 빗방울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만큼 요란하다. 튀어 나는 힘이 강해 뚜껑을 열고 마당으로 도주하는 것들도 있다. 새치네 탕의 묘미는 재료에 있다. 노란 금테가 있는 새치네가 맛있다. 논을 헤집고 다니는 붕어나 버들치도 잡히는데 작고 팔딱이는 것들이 많아야 국물 맛이 제대로 난다. 7월이면 햇감자도 있고 호박도 먹기 좋게 자란 때이다. 고추도 쑥
지난 1일 국회는 교육부의 권한 중 교육의 중장기 비전 및 국가교육과정 수립권한을 국가교육위로 이관한 국가교육위법을 통과시켰다. 국가교육위는 준비기간 1년을 거쳐 내년 7월 공식 출범한다. 국가교육위의 으뜸 역할은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 협의를 활성화해서 중장기 교육비전과 정책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을 높이는 데 있다. 신설될 국가교육위가 과연 약속만큼 독립성과 전문성, 실효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인가? 입법 내용을 살펴보면 몇 가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국가교육위 구성에서 정부여당 몫이 과반수다. 위원 임기가 대통령 임기보다 짧은 3년에 지나지 않고 연임까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국가교육위가 과연 초정권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위원장 외에 상임위원은 2인에 지나지 않는다. 무려 18명의 비상임위원을 포함해서 총 21명으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가 과연 내실 있게 운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1인당 5분씩만 발언해도 2시간이 후딱 지나기 때문이다. 셋째, 통상적인 방식에 따라 사무처가 구성될 경우 업무수행에 필요한 고도의 전문성과 책무성이 제공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승진을 노리는 일반직 공무원이 전국
조선일보가 큰 잘못을 했다. 이 신문이 자체조사를 통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사회부 대구취재본부 이승규 기자는 지난 6월 20일 오후 3시 54분쯤 《“먼저 씻으세요” 성매매 유인해 지갑 턴 3인조》 제하의 기사를 작성했다. 이 기사는 다음날인 21일자 조선일보 A12면에 실렸다. 또 조선닷컴 홈페이지엔 같은 날 오전 5시에 올라갔다. 온라인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일러스트(의미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삽화)를 덧붙였다. 그림 속 인물은 조국 전 법무장관과 딸 조민씨를 의미했다. 부녀가 성매매와 관련자인 것처럼 묘사했다. 파장은 컸다. 이 문제가 불거진 후 조선닷컴은 이 기자가 과거에 쓴 기사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지난해 2건의 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연상시킬 수 있는 일러스트를 사용한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조국 전 장관과 딸 조민씨는 조선일보와 해당기사를 작성한 기자, 편집책임자를 상대로 각각 5억원씩, 합계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LA조선일보 건은 미국법원에 제소하기 위해 법리검토에 들어갔다. 조선일보의 해명과는 별개로 이번 사건은 조국 전 장관에게 보여온 적대적인 보도가 빚은 대형 참사로 보는 독자들
밥 말리 하니 카오산 로드가 떠오른다. 90년대 초반, 배낭여행하던 중에 경유지였던 태국 방콕 공항에서 일부러 빠져나가 찾았던 거리. 300미터 남짓 되는, 길 양쪽에 음식점과 숙소, 기념품점, 술집 등이 어지러운 간판과 함께 즐비한데 그 사이를 오가는 이들은 모두가 여행자다. 생경한 풍경이었다. 공기도 달랐다. 술 없이도 달뜨고 취하게 했다. 뜬금없이 노래가 주술을 걸었나 생각했다. 생각하니 지금도 귀가 뜨겁다. 상점 곳곳에서 나오던 노래. 밥 말리의 노래를, 그것도 같은 노래를, 그것도 하루 종일 틀어대는 곳이 많았다. 노 우먼 노 크라이(No Woman, No Cry). 사랑 노래라고 생각했다. 여름이었고 청춘이었고 여행자였으니까. 한참 후에 알게 됐다. ‘노 우먼 노 크라이’는 밥 말리가 인생의 겨울을 사는 이들을 위로하는 노래였다. 서른여섯에 요절한 밥 말리는 짧은 생애, 노래하는 전사로 살았다. 인권과 자유, 평등을 위해 싸웠다. 그가 살았던 시대, 그를 낳은 환경이 그를 투사로 만들었다. 밥 말리의 고국 자메이카. 북미 카리브해 쿠바 밑에 위치한 이 섬나라는 1494년 콜럼버스의 발길이 닿은 후 쑥대밭이 되었다. 스페인 통치에서 영국 통치로 넘어
예술이란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고, 어렴풋했던 것이 선명해지며, 복잡했던 것이 단순해지고, 우연이었던 것이 필연이 되는 것과 같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작용을 말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언제나 모든 것을 단순화한다. (아미엘) 보통 사람은 생각을 사물에 맞추지만, 예술가는 사물을 자신의 생각에 맞춘다. 보통 사람은 자연을 불변하는 것, 고정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예술가는 자연을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 위에 자신의 존재를 새긴다. 예술가에 대해서는, 불복종의 세계도 지극히 순종적이 되어 그의 뜻에 따른다. 그는 흙덩이나 돌멩이에 인간성의 옷을 입히고 그것을 이성의 표현으로 탈바꿈시킨다. (에머슨) 경쟁심으로는 어떤 아름다운 것도 만들 수 없고 오만한 마음으로는 어떤 고귀한 것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존 러스킨) 진정한 학문과 진정한 예술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내면적인 것으로, 학문과 예술의 봉사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희생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수행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외면적인 것으로, 그의 학문과 예술이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학문과 예술은 폐와 심장처럼 서로…
이번 주는 대선과 관련한 슈퍼위크임은 분명하다. 월요일에는 최재형 감사원장이 직(職)에서 사퇴하겠다고 선언하더니, 화요일에는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목요일에는 이재명 경기 지사가 출마 선언을 했다. 이런 행사들이 단기간에 줄을 잇고 있어서, 비교적 손쉽게 대선 주자들 간의 특성과 전략을 비교할 수 있다. 윤 전 총장의 출마 선언문과 이재명 지사의 출마 선언문을 비교하자면 이렇다. 먼저 이재명 지사의 출마 선언문에는 경제가 강조됐다. 이 지사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국가 재정력을 확충해 보편복지국가의 토대를 만들겠다”고 강조하면서, 규제 합리화와 미래형 첨단 육성시스템으로 기초·첨단 과학기술 육성을 주장했다. 그런데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단 1번만 언급됐을 뿐이다. 외교 부분에서도 이 지사는 “국익 중심 균형 외교를 통해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의 새 길을 열겠다”고 말했는데, 이런 발언들을 보면, 2017년 이 지사의 대선 출마 선언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대선 때 등장했던 사드 배치 철회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같은 주장을 이번 출마 선언문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기본
- 1898년, 미국 제국의 길로 들어서다 1898년은 우리에게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 3년 뒤인데 이때 태평양 가로질러 미국은 매우 중요한 전환기를 겪는다. “제국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가 되는 것이다. 이 당시 쿠바와 필리핀은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였다. 1898년은 미국과 스페인 사이의 전쟁이 일어났고 이로써 쿠바와 필리핀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독립? 그런데 그건 말뿐이었고 종주국(宗主國)이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1898년 2월 15일, 미국의 전함(戰艦) 메인(Maine)호가 쿠바의 하바나 항구에서 의문의 폭발사고를 겪는다. 이는 스페인의 공격이라고 즉각 선언되고 미국의 침공으로 스페인과의 전쟁이 벌어진다. 필리핀 마닐라 항구에서도 미국의 함포사격이 시작되고 스페인은 쿠바, 필리핀 이 두 전선에서 모두 패한다. 이로써 스페인은 몰락하는 제국이 되었다. 메인호 사건은 세월이 한참 흘러 1964년 북 베트남 해안에서 미국의 매독스(Maddox)호가 공격받았다며 베트남 전쟁 개입을 공식화하는 것의 원형이 된다. 허위로 만들어진 사건이 선전포고의 근거가 된 사례였다. 메인호 폭파 조작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