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를 자신의 특허품인 양 떠드는 진보 꼰대나 상식조차 지키지 않는 수구 꼰대나 거기서 거기 같아요." 한동안 20대들하고 책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계급장'을 떼고 매번 수평적으로 토론을 벌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속내가 드러났다. 여론조사나 경제통계 수치 등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20대들의 감성을 들여다본 것이다. "우리는 알바족이잖아요. 술집이나 음식점, 편의점, 백화점 등에서 생활비를 벌기위해 감정 노동을 하죠. 기성세대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들과 부딪혀서 생긴 감정의 결과물이죠." 재일 동포 철학자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의 말을 빌릴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사계절)에서 인간의 이성은 변화가 가능하지만 감성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보통 관념과 정반대 사유다. 감성을 인간 이해의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일테면 20대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진보든 수구든 하나의 달걀 꾸러미에 넣어 계열화해서 자신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분류한다. 이처럼 감성의 성은 생각보다 크고 견고하다. 이제 여론조사 분석이 가능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벌이는 정치…
'계산 도와 드릴께요' 내가 계산하는데 뭘 도와주나? 팔이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간호사 하는 말. 진료실 앞에 잠시 앉아 계실께요. 뭔말 인지 모를 존대 받다 보면 참 뜨악하다. '주문한 상품 나오셨습니다' 내가 아니라 상품이 존대를 받는다. 자본주의가 맞구나. 이게 아니다 싶어 한마디 하면 집사람이 꼰대 같이 굴지 말랜다. 아, 국어 잘하면 꼰대가 되는구나. 글로 먹고사는 신문을 봐도 맞춤법 틀리고 문맥 어색한 기사가 자주 보인다. 그래도 신문기사는 양호하다. 방송프로그램을 보면 CJENM 과 종편은그렇다쳐도지상파방송에도 맞춤법이 틀리고 듣도보도 못한 해괴한 표현이 자주 보인다. 유튜브는 말할 나위도 없다. 심하게 표현해서유튜브영상은 자막이 안틀리고 종료되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유는 극명하다. 만드는 사람의 국어사용 능력 미흡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 결여다. 영상과 아이템에 집중하다보니 보조적 전달수단인 자막의 중요성이 무시되는 것이다. 방송언어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한 뉴스를 빼고 나면 크게 드라마의 대사와 예능의 출연자 토크, 자막으로 압축된다. 드라마의 비인격적 표현과 비속어는 그래도 봐줄만하다. 예능은 심해도 너무 심하다. 맞춤법 틀린 자막이나
땅은 공기나 태양과 마찬가지로 만인의 소유이며 결코 개인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 땅을 사유화하는 것은 타인의 자연 상속권을 빼앗는 범죄행위이다. (토마스 페인)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의 나그네이다. 동서남북 어디로 가든 발길 닿는 곳마다 반드시 “이곳은 내 땅이다”라고 말하며 너를 내쫓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곳을 돌아다닌 끝에, 세상 어디에도 우리의 아내가 자식을 낳을 수 있는 한 조각의 땅과 우리가 걸음을 멈추고 경작할 수 있는 한 뙈기의 땅과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의 뼈를 묻을 수 있는 한 뼘의 땅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 (라프네) 오늘날 누군가에게 이제부터 너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마음껏 일하여 스스로 번 것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을 대서양 한가운데 내던지고 너는 마음대로 헤엄쳐서 해안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랄한 짓이다. 영국에는 현재의 인구보다 열 배나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형제인 동포들에게 구걸을 하거나 가혹한 날품팔이는 강요당하면서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거나 지상에서 살 가치가 없는 인간으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코로나19가 초래한 사회·경제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단순히 코로나19 이전 일상으로의 복귀에 그치지 않고, 코로나19 확산과정에서 불거진 다양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 마련이 핵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순환경제는 지역을 기반으로 생산과 소비 활동이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주민 일자리 창출, 소득개선 등의 효과를 낳는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를 의미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자본주의 시장경제 고도화로 야기된 지역 간 경제적 격차 해소를 위한 대안 경제로 주목받고 있다. 공공 예산을 들여 거둔 다양한 경제 성과가 과실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최대한 지역에서 순환하며 승수효과를 창출하는 경제 개념이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으로 확대되고 있는 지역화폐는 지역순환경제를 촉진하는 대표적인 정책 가운데 하나다. 지역순환경제 효과를 가시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방법론으로는 ‘LM3’(Local Multiplier 3)가 대표적이다. 영국의 ‘신경제재단’(NEF:New Economics Foundation)이 개발한 것으로 지역순환경제 효과를 3단계에 걸쳐 조사해 그 효과를 측정한다. 우선, 해당 기업이나 기관
LH 땅 투기 사건이 온 나라를 뒤죽박죽으로 만들면서 온갖 이슈를 다 삼키고 있네요. 양파껍질 벗기듯이 까도 까도 또 나오는 처참한 양상입니다. 정치권은 상대방을 할퀴려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소재로나 쓰고 있군요. 권력과 금력, 그리고 정보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지는 이미 오래됐잖아요. 전수조사가 어쩌고, 특검이 어쩌고 난리가 났네요. 정치권 공방의 속셈을 헤아리기란 어렵지 않지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민심을 달래기 위한 사탕발림 정책들을 막 쏟아내는군요. 급기야는 “LH를 당장 해체해야 한다”는 과격한 목소리도 있네요. 어째 세월호 사건 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르대던 “해안 경찰 해체” 극약처방 쇼가 떠오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대로 부동산 투기는 오랜 세월 은밀한 ‘그들만의 리그’에서 횡행해온 ‘적폐(積弊)’ 맞습니다. 남김없이 때려잡아야 한다는 말에도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이 얽혀있는 권력자들과 재벌들과 정보 귀족들의 조직적 저항을 막아낼 수 있을까요? 차명으로, 또는 기기묘묘한 수법으로 소유권을 분산해놓았을 기득권 타짜들의 보호막을 도대체 어떻게 뚫겠다는 흰소리입니까? 아무리 고민해봐도 이런
학문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여기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다. 하다못해 일상생활에서도 두 사람이 대립각을 세우고 싸우면 양쪽 말을 다 들어 봐야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판에, 학문 세계는 오죽할까? 무릇 학문 연구란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지, 한쪽 입장만 대변하거나 연구자의 주관적 경험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는 게 불문율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과학의 보기를 들어보자. 19세기 유럽에서 인기를 끈 골상학의 경우다. 당시 유럽은 턱의 모양, 안면의 각도, 골격의 모양 등을 토대로 인종과 남녀를 구분하는 골상학이 유행했다. 이를테면 뇌의 무게를 비교해본 결과 여성의 뇌가 남성보다 가벼우므로, 여성은 지능이 낮으며, 그래서 대학교육을 받는 게 무리라는 식의 결론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아가 흑인의 뇌는 백인보다 가볍기에, 흑인이 백인의 지배를 받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도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했다. 과학연구라는 그럴듯한 외연을 입었지만, 속내는 사회통념을 재확인한 데 불과했다. 19세기에 대학교육을 받은 엘리트 백인 남성들은 남녀차별과 인종차별을 당연시한 자신들의 고정관념을 ‘과학의 이름으로’ 재가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
살기 힘들다 해서 죽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도덕적인 사람은 자신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을 벗기 위해 자신의 사명을 오로지 실천한다. 자신의 사명을 다했을 때 비로소 그 짐에서 해방될 수 있다. (에머슨) 현재의 삶만이 진정한 삶이다.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이 순간을 잘 사는 것, 오직 그것에만 온 정신을 쏟아 노력하라. 내세를 위해 현세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어도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 실제로 살고 있는 삶은 현재의 이 삶뿐이다. 따라서 이 삶을, 이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을 가능한 한 잘 사는 것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인생은 고뇌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끝까지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사명이다. (토크빌) 너는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아, 뭔가 다른 생활이라면 더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 생활 속에서, 네가 현재 놓여 있는 조건 속에서, 너는 언제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칼라일) 사람들 속에서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 사는 자에게도, 혼자서 정신적인 목적을 위
영화만큼 진실을 알리는 매체도 없다. 아니 영화가 유일하게 진실을 알리는 매체이다. 다만 그것이 조금 늦을 뿐이다. 영화는 언론과 달리 실시간으로 사건을 중계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은 1991년 논란의 영화 'JFK'를 만들었다. 영화 'JFK'는 1963년 11월 텍사스 댈러스에서 암살당한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범인을 추적하는, 일종의 미스터리 드라마다. 35mm와 16mm, 슈퍼 8mm를 동원해 다큐멘터리 식으로 찍었으며 컬러와 흑백촬영을 동시에 하고 대규모의 장면전환과 별도의 시각처리가 동원된 올리버 스톤의 정치적 야심작이다. 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JFK'는 정치영화가 아니다. 철학적인 영화이다. 사실이 무엇인지를 더 이상 모르게 될 때까지 진실이 조작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이)사실이 무엇인지를 더 이상 모르게 될 때까지 진실이 조작되는 과정은 고도의 음모집단이 언론과 함께 벌이는 일종의 군사첩보작전이다. 지난 2년간 우리 안에서 벌어진 소위 ‘조국 사태’와 지금 전개되고 있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의 과정을 보면 오래 전의 사건인 JFK의 암살과 그걸 영화로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새로운 전략무기’ 고도화를 공언한 데 이어, 바이든 행정부와 앞으로 있을 협상 우위 선점을 위해 적절한 시점에 ‘새로운 무기’를 선보일 것이란 관측이 대세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새로운 전략무기’가 무엇이며, 그 발전은 어느 정도이고, 이에 대해 우리 군은 효과적인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그간 북한이 언급한 것과 발사한 내용들을 토대로 추론하면, ‘새로운 전략무기’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MIRV(다탄두각개목표 재돌입체),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V(우주발사체) 등이다. MIRV는 다양한 목표물에 대한 동시공격이 가능하고 적성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 SLBM은 2차 타격능력을 확보하고 한미연합군에 대한 군사적 대응옵션을 확대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SLV는 평화적 목적을 가장하고 일기예보·통신·GPS 등 군사적 목적을 위해 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MIRV 보다 SLBM과 우주 발사체가 ‘새로운 전략무기’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SLBM은 실전배치까지 시일이 걸릴 수 있으나, 2019년에 바지선을 활용하여 비행시험까지 마쳐 기술축적이 상당함을 과시
“금병동(琴秉洞)”이라는 이름은 한국 사회가 잘 알지 못하는 이름이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조선인의 일본관', '일본인의 조선관' 단 두 권이 번역되어 있을 뿐인데 뒤의 책은 지금은 아예 품절이다. 여기서 번역이라는 대목이 “뭔가?” 싶을 텐데, 금병동은 재일사학자이고 저서는 일본어로 쓰인 까닭이다. 2008년 타계한 그의 최초 업적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에 대한 학살 조사였다. 일본정부의 조직적 관여를 밝혀낸 것이다. 한일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관동대지진 학살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선구적 작업이다. - 금병동, 강덕상이 쓴 역사 1963년에 출간된 '관동대지진과 조선인'은 역시 같은 재일사학자로 여운형 전기를 쓰게 되는 강덕상 등이 함께 한 책이다. 강덕상의 '여운형 평전'은 조선 독립운동사 전체의 맥락을 짚어볼 수 있게 정리된 탁월한 저작이다. 한문으로 된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1972년 일본어로 먼저 번역되는데 그 번역자가 바로 강덕상 선생이다. 한국어 번역은 1년 뒤인 1973년이다. 박은식 선생의 책이 1920년 출간되었다는 걸 안다면 기가 막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