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과 가을에 경주를 찾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산까지 자세하게 훑어보려면 한 번의 여행으로는 어림없었기 때문이다. 맛집 순례도 여행의 큰 즐거움인데 생고기집과 횟집, 커피숍 등 찾아간 곳 모두 대단한 수준이어서 깜짝 놀랐다. 획일적인 맛을 자랑하는 프랜차이즈 음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맛이 개성적인데다 깊었다. 생고기집은 인상적이어서 이틀 연속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우 암소 갈빗살과 삼겹살 모두 최고 품질이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편이었다. 60대 사장은 그 비결을 젊어서부터 고기를 다뤄 안목과 확보돼 있는 거래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된장찌개도 담백하면서 깊어 자주 손이 갔는데 누군가 레시피 정보 제공 가격으로 2000만 원을 제시했지만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생고집의 맛 비밀은 줄기차게 한 우물을 판 뚝심과 세월에 있을 것이다. 보문단지 쪽 뒷골목에 있는 횟집은 구식 건물에 들어서 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이렇다 할 정보 없이 찾아갔기에 맛집 순례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바구니에 담겨져 나온 참가재미회에서 윤기가 흘렀던 것이다. 쫀득한 식감에다 양도 넉넉해서 고급 일식집이 부럽지 않았다.…
2024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 수는 통계청 발표로 35만 7000명이다. 23년 40만 6000명에서 약 5만 명 정도가 사라진 수치다. 17년도 당시에 출생아 수가 전년도보다 급감했기에 초등학생 수 감소는 정해진 미래였다. 5만 명이 얼마나 큰 숫자인가 하면 한국의 제2 도시인 부산 지역 23년 신입생 수가 2만 3000여 명 정도였고, 웬만한 도 지역 신입생이 1만 명에 많아야 2만 명이 채 안 된다. 도 지역 몇 개에 해당하는 신입생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35만 명이 끝이 아니다 앞으로 6년 동안 빠르고 급한 기울기로 그 수가 붕괴될 예정이다. 내후년인 25년도에는 32만 7000명, 26년 30만 3000명, 27년에는 27만 2000명, 28년에는 26만 1000명이 예상된다. 옆 나라에서 한국은 끝났다고 호들갑 떨면서 신문 제목에 쓸 만하다. 통계청에 나온 출생아 수를 토대로 단순 계산해보면 6년 뒤에는 전체 초등학생 숫자가 현재보다 90만 명 정도 줄어든다. 현재 6학년인 11년생부터 1학년 16년생까지 초등학생 숫자를 대략 267만 명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내년에 입학하는 17년생부터 6년 뒤 신입생인 22년생까지의 숫자는 177만 명이
‘낙양(洛陽)의 지가를 올린다’라는 말이 있어요. 진(晉)나라의 시인 좌사(左思)가 지은 ‘삼도부(三都賦)’를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베끼는 바람에 종잇값이 올랐다는 뜻인데, 요즘으로 말하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정도겠죠. 예나 지금이나 책이 인류문화 전승 발전의 결정적인 매개체라는 건 상식에 속하지요. 그런데, 지금은 내용의 가치에 대한 공감 확산으로 책을 사는 독서인들은 희귀한 세상이 됐어요. 고(故) 김동길 교수가 쓴 칼럼 ‘3김(金) 낚시론’은 아찔했어요. 정곡을 찌른 이 용감한 글은 김영삼(YS)·김대중(DJ)·김종필(JP) 씨 등 이른바 3김이 1980년 초에 서로 대통령이 되려고 싸우는 바람에 ‘서울의 봄’을 무산시킨 원죄를 비판한 내용이었어요. 당시 칼럼을 접한 DJ는 “낚시하기 좋은 장소를 가르쳐 주면 그리하겠다”며 웃어넘겼고, YS는 “언론 자유가 보장된 사회라면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고 받아넘겼다는 일화가 있죠.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출판시장의 왜곡 현상은 참으로 심각해요. 한때 베스트셀러 조작 사건이 세상을 시끄럽게 한 적이 있었어요. 처음엔 출판사 직원들이 서점을 돌면서 사들이거나, 지인의 개인정보로 도서를 사재기해 베스트셀
북관대첩비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함경북도 북평사였던 정문부장군이 의병을 규합, 함경도 일대에서 왜군을 물리친 업적을 기리고자 숙종 34년(1708년)에 함북 길주에 건립된 비(碑)다. 그 후 러일전쟁 중(1905년) 일본군이 강제로 일본으로 가져간 뒤 야스쿠니신사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재일 사학자 최서면 박사가 발견하면서 반환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한국의 초산스님과 일본의 카키누마 센신스님이 만나 일본의 참회차원에서 한국 반환을 추진키로 약속하면서 세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비의 반환 과정을 단순화하여 설명하면, 두 스님이 야스쿠니신사의 궁사에게 간청하여 반환의 확약을 얻어 내었으나, 남북간 비의 소유권 다툼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남북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나는 그해 11월 개성 영통사 복원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개성에서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의 심상진서기장을 만났었다. 심서기장과의 대화 속에 북관대첩비 반환에 김정일위원장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 일의 성사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 후 초산스님이 이끄는 한일불교복지협회를 통해 금강산에서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과 협의를 하도록 방북승인을…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부산 엑스포 유치가 실패했다. 실패한 역사를 기록하고자 함은 패배로부터도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제사회에서 엑스포와 같은 국제대회를 유치해야 하기에 반면교사가 필요해서이다. 11월 29일, 2030년 엑스포를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치른다고 결정됐다. 사우디는 119표, 한국 29표, 이탈리아 17표였다. 일부 언론은 석패라는 등 ‘졌잘싸’를 외치고 있지만, 역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받은 최악의 성적표였다. 더욱이 1년 이상을 정권 차원에서 전력투구한 결과치고는 초라함이 수준을 넘어선 충격적인 결과였다. 무엇보다도 온통 시내를 엑스포로 도배해 놓았던 부산 시민들의 상실감은 어떤 위로의 말로도 부족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사용한 공식 예산만 5천 7백억 원이 넘었으며 대통령은 연일 엑스포 유치를 위한 해외순방에, 총리와 부산시장 등도 덩달아 해외로 돌았고, 심지어는 엑스포와 무관한 법무부 장관까지 해외로 달려 나갔다. 재벌기업의 총수들도 도대체 그 일 아니면 할 일이 없는 것인지 연일 따라다니기 바빴다. 공개되지 않은 비용까지 합치면 천문학적인 경비가 소요되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의 부추
백목림(白木林) ! 눈 맞아 흰 나무가 된 숲길을 걷는다. 나이 든 가슴에도 설렘이 남았는지 심장이 쫄깃거린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예쁜 인사를 건네고 싶다. 이럴 때 생각나는 그 한 사람. 바닷가에서 만났던 그 사람! 예쁜 꿈을 심어주고 싶었던 그녀. 오빠는 성직자였다. 그 무렵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그 사람 손목을 잡고 잠에서 깨어났던 추억이 누에머리처럼 고개를 든다. 산사의 깊은 밤 종소리나 이른 새벽에 듣는 교회의 종소리에는 거룩한 음이 배어있었다. 큰 사찰의 종소리는 산 넘고 강 건너 먼 마을까지 다가가 듣는 이들 영혼에 스미어 깨어나는 빛 안개 같이 감싸주었다. 종소리는 여운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속에 스며들어 맑아지게 한다. 그 소리 정신을 일으켜 세운 뒤 아늑하고 그윽하고 포근하게 하면서 새로운 기운을 안겨주는 힘이 있다. 종은 울려주는 사람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는 초등학교에 땡땡이 종이 있었다. 이 종으로 사환아저씨는 공부 시간의 시작과 끝 종을 쳐주었다. 사찰에서는 수도승이 온몸의 힘을 균형 잡아 시간에 맞게 종을 울리고, 교회에서는 믿음 좋은 분이 교회의 종지기를 하면서 정확한 시간에 종소리를 들려주었다. 지금은 도시나 농촌이나 그 소
주요 방송의 날씨(일기예보)는 대개 용모(容貌) 단정, ‘날씨요정’ 별칭으로도 불리는 젊은 여성들 차지다. 영어권에서도 일기담당자(전문가)라는 미티오랄러지스트(meteorologist)라는 (공식)명칭이 있는데도, 꽃나이 묘령(妙齡) 여성이면 ‘웨더 걸’이라 부른다. 어디서나 ‘그 세계’는 경쟁의 도가니라고 한다. 선후배 간 소통방식이나 규칙, 어휘(語彙) 활용법 등의 내림(전통)이 있겠다. 허나 어떤 때 (좀 있어 보이는) 어떤 말을 누군가 쓰기 시작하고, 시청자에게 먹힌다 싶으면 다른 이들도 경쟁적으로 따라한다. 일반 시민의 언어생활에 유행처럼 번지기도 한다. 때로 어색한 말이 (그 동네에서) 돌다가 하릴없이 사그라지는 것도 관찰된다. 방송의 언어는 시민의 ‘말글 선생’이어서 공공(公共)언어로서의 역할(책임)을 잊으면 안 된다. 겨울 되면서 ‘온화하다’는 말이 날씨요정들 사이에 유행을 타는 듯하다. 들어보니 ‘온난하다’의 뜻으로 이 말을 대충 질러버리는 모양새다. 계절에 비해 따뜻한, 그러면서 햇살도 좋아 산책이라도 즐길만한 날씨가 온난(溫暖)이겠다. 온화는 ‘편안하다’는 穩을 쓰는 穩和와 ‘따뜻하다’는 溫을 쓰는 溫和의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온
지난 주에 만주 항일무장투쟁 역사탐방을 다녀왔다. 헌신은 무한했으나 바란 대가는 아무것도 없었던 '범도'의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가는 여정의 마지막은 대련이었다. 나는 대련에서 잠을 설쳤다. 잠자리가 불편해서가 아니었다. 대련의과대학 드넓은 교정 안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정결하고 쾌적했다. 창문을 두드리는 거친 바람과 해변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때문만도 아니었다. 대련에서 최후를 마친 세 거인의 생애가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우리가 여장을 푼 대련의과대학의 지척에 있는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 참모중장이 교수형 당한 것이 1910년 3월 26일, 겨울이었다. 나는 소설 '범도'에서 다시 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안중근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홍범도 장군을 쓰던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시리고 먹먹했다. 이회영 선생이 최후를 마친 곳도 대련이었다. 상해에 머물던 그는 다시 만주로 돌아가 무장투쟁을 재개하기 위해 대련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밀정들이 이회영의 이동 경로를 일본 영사관에 알렸고, 체포된 이회영은 처참한 고문을 당한 끝에 나흘 만에 옥사했다. 1932년 11월 17일이었다. 그를 밀고한 밀정은 이회영의 조카 이규서와 연충렬이었다. 이규서는 이회영 형
작년 이 맘 때 우리 언론에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북한전문가들이나 정부당국자의 논평이 연일 보도되었었다. 그런데 금년 들어서 북한에서건 남한에서건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했다는 보도나 핵실험 징후가 있다는 보도조차도 없다. 그 이유가 무었일까. 북한은 금년 들어 첩보위성발사에 올인 하면서 2차례의 실패 후에 최근 들어 3차 발사에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의 첩보위성 발사를 9.19군사합의 위반으로 간주한 우리 정부는 9.19군사합의 일부 효력을 정지시키는 조치를 하자, 북한은 9.19군사합의 자체를 무력화 하는 발표를 하면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 걷고 있다. 북한이 상황에 따라 7차 핵실험을 감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절대로 북한이 핵실험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겠다는 측면에서 북한 핵실험을 저지시켜야 하는 당위를 설명하고 싶다. 북한이탈주민들 중 길주군 인근에서 탈북한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 길주군 풍계리 일대에 ‘귀신병’이라는 희귀병이 돈다는 루머가 있다고 말한다. 병의…
은퇴한 중년의 김모 씨는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 딸에게 그간의 저축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다소나마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러나 자녀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에는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므로 고민을 하던 차에 창업 자금의 경우에는 일정 한도내에서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 ‘증여세 과세특례제도’가 있음을 알게 되고 이 방안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다. 근자에 들어서는 이전과는 달리 취업 대신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으며 세법에서는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창업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도움에 대해 증여세 부담을 대폭 줄여 주는 ‘창업자금증여세 과세특례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먼저 제도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부모로부터 받은 창업자금에 대해서는 50억 원(10명 이상을 신규 고용하는 경우에는 100억 원)을 한도로, 5억 원을 공제하고 10%의 저율로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이 그 골자이다. 즉 부모가 자녀에게 세금 없이 5억 원까지 창업 자금을 증여를 할 수가 있으며, 이를 초과하더라도 낮은 세율의 증여세만 부담하고 사업자금으로 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20억 원의 현금을 성년 자녀에게 증여하는 경우 일반 증여인 경우에는 6.2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