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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곡비(哭婢)

 

어머니 장례식날 이후/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방성대곡(放聲大哭) 해본 적이 없다/그날 몸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슬픔의 한 방울까지 다 짜내어 울었기 때문일까/아니면 새로 생긴 슬픔을 가장(家長)의 이름으로 감추어 두었기 때문일까/나를 알고 있는 그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목놓아 울고 싶은 날이 있었으련만/가장이라서 나는 그럴 수 없다/아침 식탁에 앉아서 숟가락을 들고 있을 때/문득 그가 왔다 곡비(哭婢)가 왔다/여름의 끝자락을 쥐고/고층아파트의 방충망을 붙들고/천지가 무너지듯 그가 울었다/한바탕 통렬한 울음이 계속될 동안/창문 안을 들여다보며 그가 흐느껴 울 동안/지금까지 가슴 속에 감춰둔 내 슬픔도/그의 호곡 하나하나에 사설을 붙였다/여름의 끝자락을 쥐고/내 슬픔을 알고 있는 그가 와서/나 대신 소리쳐 울고 있다

 

김종해(1941~) 시인의 '곡비(哭婢)가 왔다'다. 모두가 무더위와 폭우에 치여 신음하며 버티는 시절이다. 선생은 이토록 힘든 시간에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참 깊고 굵직한 인생론을 세상에 선물했다. 매미는 보통 7년, 북아메리카의 어떤 종자는 17년 동안 땅속에서 유충기간을 보낸다. 그리고 세상에 나와서 고작 7일(에서 한 달) 동안 울다가 생을 마친다. 짝짓기를 끝내자마자 죽는다. 매미의 그 억울한 운명을 알고 나면, 짜증을 내며 귀를 막고 싶었던 그 요란함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통곡으로 여겨진다. 관대한 사람이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곡비’를 모를 것이다. ‘울 곡(哭)’, ‘여종 비(婢)’. 왕가나 지체 높은 집안에 초상이 나면 돈 몇 푼, 쌀 몇 말에 슬프게 울어주던 여인들이었다. 그 시절의 예법이 들어있는 '가례'(家禮)는 큰일 치르는 동안 곡소리가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곡비들이 상가(喪家)의 위세를 지켜주었던 것이다.

 

친부모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슬피 울지 않았다. 행세하는 집안의 초상에 곡품 팔러 와서 그 댁의 효성 깊은 자식들보다 더 자지러지게 울었다.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 진짜 잘 울드만”, 하는 소문이 저 먼 동네까지 나야만 하는 사정도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네들은 대개 부실한, 또는 먼저 간 남편을 대신하여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었다. 그 곡소리의 비극미가 극에 달했던 이유다.

 

21세기는 다정하지 않다. 호전적이다. 각박하고 위태롭다. 이 빌어먹을 신자유주의 세상이여! 그 본질은 잠자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거대한 톱니바퀴다. 노인 중년 청년 할 것 없이, 언뜻 보면 다들 화려해 보인다. 근사한 차림새에, 비싼 자동차 몰며, 좋은 음식 먹고 풍요를 구가하는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몸과 마음의 여유라고는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휴식은 늘어지게 낮잠을 자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왕의 시간이 아니다. 만사(萬事)가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미물들의 과욕이 초래한 징벌이다.

 

그들은 시인처럼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목놓아 울기는커녕 그 마음조차 먹지 못한다. 그 시시한 낭만주의는 신을 따라 죽어버린지 오래다. 곡비의 통곡은 매미떼와 혼자서 슬픔을 삼키는 이 시대의 왜소한 가장들의 속울음으로 이어진다. 눈 밝은 소수는 이미 오래전에 할 말을 잃었다. 침묵이 그들의 언어다. 그들도 실은 몹시 불안하다. 이 거대한 슬픔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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