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회 전국체전이 코로나19 영향으로 고등부만 개최되는 아쉬운 상황에서 경기도는 선수들의 고군분투에 힘입어 전체 메달 수 선두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마감했다. 갈수록 줄어드는 옅은 학생 선수층 속에서도 경기도 소속으로서 훌륭한 성적을 낸 선수들과 코치진 그리고 운영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와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면서 올림픽을 앞두고 들끓는 국내 정서와 국제 위상 제고를 위해 정부는 주최국으로서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취지 아래 80년대 초기부터 올림픽 메달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각 종목 유망주들을 집중적으로 육성시키기 시작했다. 정부는 올림픽 개최 6~7년이 남은 시점 운동신경과 체격조건이 남다른 초·중학생들을 중심으로 올림픽 꿈나무를 선발했고, 바로 그 유망주들을 우리는 ‘88꿈나무’라고 호칭했다. 사상 최초로 올림픽 2관왕에 오른 양궁 김수녕 선수를 비롯해 많은 ‘88꿈나무’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국위선양은 물론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중흥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금번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의 한국 선수단의 성적은 메달 총계가 1984년 LA올림픽 수준으로 후퇴했고, 양궁을 제외하면 금
수원시가 ‘청소차량 배기관 수직상향 전환 시범 사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대부분 청소차량의 배기관은 차량 뒤쪽에 설치돼 있다. 따라서 주로 차량 후방에서 폐기물 수거 작업을 하는 환경미화원은 배출되는 매연에 직접적으로 노출된다. 게다가 청소차의 대다수는 디젤 차종으로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 배기가스를 배출한다. 이 배기관을 차량 뒤편 바닥이 아닌 조수석 뒤에 수직으로 설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배기가스가 차량 위로 배출돼 환경미화원들이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 배기가스에 덜 노출된다. 시는 2020년 9월 자동차 전문 튜닝업체 준비엘의 제안으로 ‘청소차량 배기관 상향 전환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전국 최초로 청소차량 6대에 수직상향 배기관을 장착해 1년여 동안 시범 운행, 효과가 입증됐다고 밝혔다. 올해에도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업체에서 운영하는 청소차량 13대에 추가로 설치한 바 있다. 시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자 사업의 장점·효과를 정리해 환경부에 제출했다. 이에 환경부가 지난 8월 이 사업을 벤치마킹, 우수사례로 인정해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가이드라인’으로 채택했으며 전국 지방정부에 도입을 권장했다. 환경부는 이에 앞서 2019년 3월…
문재인 정부가 고심 끝에 생각해낸 UN에서의 종전선언 제안과 이를 통해 북미 남북대화를 재개하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궤도에 올려놓으려 했던 야심 찬 의도가 미국의 이견(異見)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국이다. 비록 중대과제 선결이란 조건을 달았어도 북한의 긍정적 반응과 중국의 환영의 뜻에 기대에 차서 미국으로 건너가 카운터파트인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을 설득코자 했던 서훈 안보실장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듯하다. 설리번은 ‘정확한 순서, 시점, 조건’을 제시하며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북한의 선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종전선언은 물론 북미대화, 나아가 관계개선이 가능하다는 종래의 미국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종전선언의 의미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정치적 상징적 선언의 의미밖에 없다고 하지만 현재와 같은 교착상태에서는 북미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어 관계 당사자들의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재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좋은 아이디어에 대해 미국이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이고 미국을 설득하여 종전선언의 테이블로 인도할 방책은 없는 것일까. 미국이 현 상황에서 종전선언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네 것, 내 것이 없는 거야.”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 게임’ 속 대사다.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니 ‘깐부’(같은 편)라는 단어도 덩달아 유행어가 됐다. ‘깜보’? ‘깐부’? 뭐라고 불렀는지 헷갈리지만, 코흘리개 시절 나 역시 공터에서 구슬이나 딱지치기를 하며 동네 또래들과 깐부를 맺었다. 깐부를 왜 맺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추측컨대 그 친구와 친해서였기도 했고, 친구의 깐부라는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어린 시절에도 나에게 같은 편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듬직한 일인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게 아닌가 싶다. 깐부의 취지는 ‘경제적 일심동체’였다. ‘개인 소유’는 없었고, ‘공동 소유’였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정말 그랬었나 싶다. 시작할 때는 ‘네 것, 내 것’ 없이 ‘우리 것’이라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늘 누군가는 손해 보는 공정치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깐부’라는 이유로 불평도 못 했다. ‘깐부’ 사이에서도 힘의 불균형은 분명히 있었다. 누군가는 더 가졌고, 누군가는 잃었다. 어떤 식으로 포장하든, 드라마 속 기훈(이정재 분)은 구슬을 가진 자가, 일남(오영수 분) 할아버지
자유로운 존재도 자기 자신에게만 얽매여 있으면 악마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된다. 도덕의 세계에는 주인 없는 땅이 없으며 애매한 땅은 모두 악마에게 속해 있다. (아미엘) 네가 세속적인 통념과 세속적인 관심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너는 세상 사람들의 동의와 칭찬을 더 이상 찾지 않을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끝없이 사람들의 눈치만 보다가는 아무것도 결단할 수 없다. 사람들의 평가는 무한하고 다양하다. 너는 말할 것이다. “나는 훌륭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고. 그러나 네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네가 이제부터 하려는 행위를 칭찬해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내면 생활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과 다른 남들의 생각 속에 사는 가공의 자신을 추구하며, 억지로 자신을 실제와는 다른 것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가공의 자신을 장식하는데 정신을 쏟느라, 실제의 자신은 소홀히 한다. 만약 우리가 평정과 성실과 관대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면, 우리는 서둘러 그것을 과시하며 그 미덕을 가공의 자신에게 주려고 할 것이다. 그러한 미덕을 가공의 자신에게 줄 수 있다면, 진정한 자신은 그것을 잃어도 좋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 떠날 거라 했다. 서른세 살에는 미치지 않으면 자살하게 될 운명이라 했다. 인도 뉴델리 파하르간즈 골목에서 만난 예언자라는 이의 말이었다. 스무 해 전, 나는 한국을 떠났다. 중국에서 터키까지 두 해에 걸쳐 길 위에서의 삶을 살았다. 사랑하던 이를 잃고 힘겨운 마음으로 견디던 여정(旅程)이었다. 그 한 복판에서 듣게 된 끔찍한 예언이었다. 탁류(濁流)에 휩쓸려 깊고 어두운 강 아래로 내가 가라앉는 일시정지 화면이었다. 화가 치밀어 좌충우돌 목적지도 없이 버스를 탔다.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못했다. 사흘 밤낮 의자에 꼿꼿이 앉아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러다 도착한 곳이 히말라야 산맥 해발 2천 미터 고도에 위치한 마날리였다. 해가 저물기도 전인데 버스는 끊겼다.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묵어야 했다. 더군다나 알고 보니 온천 마을.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않는 자학 프로그램”이 버스 끊긴 산속 온천 마을에서 자동 종료될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고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무작정 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며칠을 굶어 쓰러지기 직전이었지만 사과나무의 탐스러운 열매에 눈길조차 주지 않을 만큼 가혹
지금 내 손에 들려 잠 못 들게 하는 책은 ‘세 여자’다. 작가 조선희는 잊혀진 여성독립투사 허정숙, 고명자, 주세죽 세 여자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되살려 놓았다. 2017년 나온 책을 읽은 이들은 ‘3년 전 화제가 됐을 때 안 읽고 왜 이제야?’ 하고 물을 수 있겠다. 그에 대한 답이 오늘 글의 주제다.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녀의 전작들을 제목만 보고 내 스타일이 아니라 고 지레짐작, 독서목록에서 제외시켰었다. 또 그 기억으로 ‘세 여자’도 읽지 않았다. 그런데 내 독서모임 다음 책이 ‘세 여자’로 선정돼 내 의지 없이 잡게 된 것이다. 소설은 나를 단박 100년 전, 역사의 격변 속에 떨구었고 세 여자의 파란만장한 운명의 회오리에 휘몰리게 했고 이틀 밤을 꼬박 새우게 만들었다. 근거 부실한 순간 감정의 선입견을 반성한다. 그 같은 선입견으로 놓친 음악이 얼마나 많았을까. 뒤늦게 듣기 시작한 그리스 출신 미국 작곡가 야니(본명 야니스 흐리소말리스 Yannis Hrysomallis)와의 만남도 그랬다. 음악광 친구와 대화하다 ‘왜 야니 음악에 관심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들었다. ‘전자음악 쓰는 뉴에이지 음악가잖아. 몇 곡 들어봤는데 가
-비르투스와 포르투나 ‘비르투스(Virtus)’라는 라틴어는 ‘미덕(美德)’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virtue’의 뿌리가 되는 말이다. 전쟁을 통해 국가의 힘을 확장했던 고대 로마에서 비르투스는 우선 전사(戰士)의 주력부대일 수 밖에 없는 남성들의 “용기”를 뜻했다. 그렇다면 그건 무엇에 대한 용기였을까? <로마사 논고(論考)>를 쓴 마키아벨리는 역사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군주론>을 썼는데 그가 돌파하려 했던 것은 “운명”이었다. ‘포르투나(fortuna)’라고 불린 운명은 이미 신에 의해 정해진 경로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처지를 말하는 것이었고, 용기는 이와 대결해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역사를 스스로의 힘으로 새롭게 만들어 내는 ‘자질(qualita)’이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따라서 바로 이 지도자의 자질에 대한 제왕학(帝王學)이었다. 1469년에 태어나 1527년에 세상을 떠난 그가 살았던 당대의 이탈리아는 외세에 휘둘려 분열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민중들의 삶은 따라서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고 재난이 겹치면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가혹한 폭정”에 시달렸다. 그러니 이탈리아의 독립과 그에…
역사를 소수 엘리트층에 의한 지배로 본 이탈리아의 정치경제학자 파레토(Vilfredo Pareto)는 대중의 지배는 일종의 환상이라고 했다. 대중들은 그저 자신들을 이끌어줄 새로운 엘리트를 기대할 뿐이기에 그 엘리트가 순환하면서 역사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엘리트의 순환론』(정헌주 역, 간디서원, 2018)에서 사자형(Lion)과 여우형(Fox) 엘리트가 교차한다고 했다. 사자형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강하고 충성심과 힘을 강조하며 용감하고 무모하며 때로는 무식하기까지 하다. 여우형은 현란한 말솜씨와 조작에 능하며 교활하고 주도면밀하며 때로는 유약하고 무능하기까지 한 지도자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의 역대 대통령에 대입해보자. 먼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교활한 여우 성향이 있었지만, 권위주의가 넘쳤던 전형적인 사자형의 지도자였다. 4·19로 2공화국을 출범한 민주당 정권은 의원내각제로 무책임한 장면 총리가 지도자였다. 3번째 지도자는 18년의 철권통치를 했던 라이온형의 박정희였다. 그의 사후 80년의 봄 시절 최규하는 왜 대통령이 되었는지 무능 그 자체의 폭스형이었다. 5번째 광주에서 피의 학살을 자행하면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은 누가 뭐래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