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AI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고 한다. 당장 5개월 뒤인 25년도 신학기부터 바뀐다는데 가르쳐야 하는 교사는 뭐가 뭔지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작은 학교라 이미 학생당 하나씩 태블릿이 보급된 상태인데 거기에 앱으로 교과서가 들어오는 건지, 다른 기계가 들어오는 건지 정확히 모른다. 당연히 AI 교과서로 뭘 활용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대로라면 큰 예산을 들여 만든 교과서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수업 시간에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도 썩 좋지 않은 듯하다. 얼마 전 2학기 상담 때 학부모 한 명이 꺼낸 이야기를 보면 그렇다. 우리 반 아이의 중학생 형 공개수업 때 태블릿을 활용한 수업을 봤는데 굉장히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실망한 이유를 묻자 그 수업에서 아이가 뭘 배우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업 중 교사가 올린 링크에 학생들이 접속하고 자신의 닉네임을 정하는데 수업 시간의 반이 지나간 것부터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수업 내용은 아이들이 올린 미술 작품에 서로 댓글을 다는 활동이었는데 학생들이 각자 자기 태블릿만 쳐다보며 웃는 게 학부모 눈에 굉장히 이상해 보인 듯했
충무로 대한극장이 9월말 폐관했다. 대한극장은 1958년 개관 당시 미국 20세기 폭스사가 설계를 맡아 70mm 원본 필름을 그대로 상영할 수 있도록 했고, 우리나라 최초로 빛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한 무창극장이었다.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최첨단 시설을 갖춘 대한극장은 관객들에게 웅장한 스크린과 생생한 음향으로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킬링필드와 같은 대작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극장의 형태가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쇼핑과 오락, 식사까지 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로 바뀌어가자 대한극장도 건물을 철거한 뒤 2001년 12월, 7층 건물에 11개 상영관을 갖춘 지금의 영화관으로 재개관했다. 이 시기에 한국 영화들은 주로 대한극장에서 시사회를 했으며, 외국 배우들의 내한 행사도 거의 대한극장에서 열렸다. 대한극장이 영업종료를 알리자 영화의 한 시대가 저물고 추억이 사라진다며 아쉬움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다. 대형 멀티플렉스가 급성장하고,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이 확대되었으며, 코로나 팬데믹을 겪는 동안 극장 관객이 현격히 줄었으니 누적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도 불어주어 찜통더위는 완전히 물러간 듯하다. 가을이다. 외로움을 느끼는 계절이 왔다. 왜? 가을은 잎이 떨어지는 계절이고 잎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 나무가 생애 주기 중 생명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무는 겨울이라는 죽음에서 봄이 되면 다시 생명을 활성화해 찬란하게 부활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특히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을은 한 해의 마무리 단계를 준비하는 시기이고 이 준비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온 한 해를 돌아보는 성찰이다. 이렇게 성찰할 때 내가 이뤄낸 것들도 떠오르겠지만 가장 먼저 나 자신의 “존재”를 보게 된다. 존재 자체를 돌아보면 그리 대단한 것이 없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사진 찍을 때마다 까치발을 하며 키를 높이거나 자신에게 대중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을 위해 미리 영어판, 아주 두꺼운 하드커버 책을 옆에 끼고, 특히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영어 제목이 크게 쓰여 있는 책의 제목이 잘 보이고 손이 가리지 않도록 잡고 걷는 사람은 쉽게 성찰할 수 있는 마음이나 능력은 떨어질 것이다) “대단하지 않은” 내 존재를 보며 나 자신을 비하하거나 절망
살면서 우리는 종종 장애물들을 맞닥뜨린다. 배움과 성장의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잘 해결되지 않고 쌓일 때 과도한 스트레스로 작용해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며 소화 불량, 불면증, 두통 등 증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 불안과 우울이 더 커진다. 지난 20여 년간 화병 등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병이 된 환자들을 진료해 오면서 일시적으로 증상만 누그러뜨리는 약과 치료로 병을 키우시는 분들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원인과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떤 충격적인 사건, 가족이나 지인 등 가까운 관계에서의 상처, 큰 경제적 손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으로 인한 해소되지 않은 분노 등의 감정해결 되지 않고 쌓이는 정신적 스트레스, 그리고 육체적 과로. 환경오염. 영양부족, 인스턴트 음식 등의 육체적 화학적 스트레스 등이 해결되지 않고 쌓여서 병이 된다. 단지 하나의 요소가 아닌 살아온 과정 속에서 다양한 차원의 복합적 원인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가정, 사회적 관계에서의 질.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 먹고. 자고 움직이고 접하는 환경에서의 모든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다. 병이
일본 관동지역 한글학교 협의회가 개최한 '2024 한국어 교사 학술대회'(9/20-9/22)에 다녀왔다. 필자는 이 학술대회에서 ‘재외동포 차세대 교육의 혁신과 미래 : 미래 글로벌 생태와 차세대 정체성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기조 강연을 했다. 떠나온 모국 밖에서 자신의 삶과 미래를 헤쳐 나아가야 하는 재외동포 차세대들은 그들 부모 세대가 견지했던 정체성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더 확장된 정체성, 더 고양된 정체성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시민 정체성은 세계의 시공(時空)에서 자아를 당당하게 드러내며, 의미 있는 성취를 향하게 한다. 세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은 그냥 세계 무대에서 세속적 성공을 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일종의 범(汎)도덕성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세계인의 공동 발전에 나의 참여를 다짐하는, 그런 정체성이다. 세계를 떠받치는 선한 가치를 세계 시민으로서 내가 실천하며 살겠다는 의식, 그런 정체성이다. 건강한 세계 시민이라면 문화 다양성이 넘쳐나고, 초 긴밀(hyper connective) 네트워킹으로 기존의 경계들이 해체되고, 지구의 위기와 새로운 갈등이 세계인 모두의 문제로 와닿는, 그런 글로벌 생태에서 세계와 나를 지속 가능하도록 발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버스 정류장에 다섯 살쯤 된 어린이가 두 손 포개 기도하고 있었다. 어린이는 동생 그리고 어머니와 외출 중이었다. 어머니는 두 아들과 한여름 도로 위를 방황하고 있었는데, 어린 둘째는 더위와 피로에 지쳤는지 유아차에서 노곤히 자고 있었다. 어머니는 택시를 잡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택시는 흔드는 손에 멀찍이서 다가오다 이내 가속 페달을 밟아 신속히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어머니는 유아차가 있으면 택시를 잡을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아스팔트 도로가 지글지글 끓었다. 그렇게 택시를 몇 대 보냈다. 정말이지 지독한 여름이었다. 한탄을 외면할 수 없었던 큰아들은 어머니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럼, 버스 타고 가자 엄마.” 어머니는 유아차가 있으면 버스 기사분들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는 수 없이 집까지 걸어가 볼까 하며 발걸음을 떼보려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섯 살 어린이의 기도는 이때 시작되었다. “우리 버스 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어머니는 그 모습이 귀여워 미풍이라도 분 듯 웃으며 힘을 내어 집으로 걸어가자 하였다. 어린이의 기도를 들었을 신은 (그가 누구이든) 분명 인간 세상을 가엾게 여겼을 것이다. 우습게도 나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대내적으로는 ‘다문화사회’를 지향한다는데 과연 그런가.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 출신 고려인(кореец. 카레이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자. '재외동포에 대한 내국민 인식조사(재외동포청, 2023)'에서 “러시아·CIS지역동포(고려인)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항목에 대해 응답자 1,000명의 3.1%가 “매우 가깝게 느낀다”, 26.2%가 “어느 정도 가깝게 느낀다”, 50.6%가 “보통이다”, 17.1%가 “다소 이질적이다”, 3.0%가 “매우 이질적이다”라고 응답하였다. 이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우리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은 고려인을 불편해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30대의 부정적 인식(8.5%)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고려인 이해가 기대 이하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고려인들은 조선 철종(哲宗. 1849-1863) 재위 말년인 1863년과 고종(高宗. 1864-1919) 즉위 원년인 1864년을 기점으로 두만강 너머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이자 영토를 확장한 개척자들의 후예들이다. 한국근대사에서 고려인은…
‘벼룩이 간을 내어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에게 푼돈을 뜯어 먹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골라 등쳐먹고 사는 독버섯 같은 부류를 빗댈 때 사용한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벼룩의 자기 제한을 검증한 이색적인 실험이 있다. 벼룩이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의 높이는 벼룩들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정도다. 그다음에는 어항의 출구를 막기 위해서 유리판을 올려놓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올라 유리판에 부딪힌다. 그러다가 자꾸 부딪쳐서 고통을 느껴 유리판에 닿지 않을 만큼만 튀어 올라가도록 스스로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히지 않는다.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까지만 튀어 오른다. 그러고 나서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 대상은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유형의 또 다른 실험이 있다. 그것은 사나운 이빨을 가진 파라냐(piranha)에 관한 실험이다. 남아메리카 등지의 강에서 서식하는 피라냐를 큰 수족관에 넣고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였다. 피라냐에게 먹이를 준 후, 한쪽에 몰리면 수족관의 가운데를 유리판으로 막는다.
찾아낸 약(藥)은 생각이다. 오랜 실패 끝에 터득한 처방이다. 생각으로 생각을 덮고, 생각으로 생각을 지운다. 덮고 지우기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들린다는 생각마저 사라지게 된다. 아니 망각하고 만다. 들리는 것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것. 도망쳐서, 들림에도 들리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내게는 그것이 기쁨이다. 들리지 않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선 쉬지 않고 생각해야 한다. 한순간이라도 생각을 멈추면 기쁨도 따라서 멈추고 만다. 기쁨이 멈춘 자리에 남는 건 소리다. 풀벌레 울음 같은 그 소리. “찌르르르.” 헤아려 보니 벌써 이년째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귀울림(耳鳴)에 시달리고 있는 게. 귀를 막으면 도리어 또렷해진다. 없는 소리를 있는 것처럼 지어내서 들려주는 녀석의 정체는 뇌(腦)다. 왜 그러는지 첨단 의료 장비도 알지 못한다. 없는 소리 때문에 하루가 기울어설까. 언제부턴가 어지럼증까지 도졌다. 귀울림과 어지럼증이 합세하는 날이면 하루가 지옥 같다. 간신히 살아낸다는 표현이 적확하리라. 간신히 길을 걷고, 간신히 글을 썼다. 이러다 영영 뛰지 못하는 건 아닌가. 조기축구를 하는 사람을 보면, 운동장을
이카로스는 다이달로스라는 아테네 출신의 건축가(이며 조각가, 발명가)의 아들이다. 다이달로스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크레타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당시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다이달로스를 환대했고,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생활 중 노예와의 사이에서 이카로스를 낳게 된다. 이후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에가 황소와 간음하여 황소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식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는데, 이 과정에서 다이달로스가 파시피에를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게 이 괴물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미궁을 만들게 시켰다. 다이달로스는 라비린토스라는 이름의 미궁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둔다. 하지만 미궁 속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미노스 왕은 미노타우로스를 미궁 속에 가둬놓고 해마다 아테네의 소년과 소녀 각 7명씩을 미궁에 던져줘야 했다. 죄 없이 죽어가는 소년과 소녀들을 위해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제물의 틈에 끼어들어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였다. 이때 테세우스와 사랑에 빠진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을 빠져나오는 법을 알려 달라고 간청했고, 다이달로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