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동네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옛부터 뱀은 ‘業’이라 하여 ‘집지킴이’로 모셨다. 어르신들 말씀중에 “부잣집 업나가듯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말은 큰 구렁이가 재물을 늘게 해 주는 집지킴이로 있다가 슬며시 나가면 집안이 기울어 간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어린시절 농촌의 어르신들은 뱀뿐 아니라 집안에 사는 모든 동물을 바로 業으로 여기신 것 같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집 밖으로 나온 달팽이, 지렁이, 두꺼비,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미꾸라지조차 귀하게 대했다. 우리의 재산을 지키고 가족의 吉凶禍福(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격화된 동물로 대우받았다. 이들 業 동물들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집을 옮겨간단다. 재산싸움, 무모한 욕심,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다하지 못하는 집에는 더이상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산이란 본인의 노력에 의함도 있지만 주변의 성원, 소비자, 정부정책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증식되는 생물체라 할 것이다. 그러니 증식에 합당한 세금을 내고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하지 못한 부자를 일러 ‘猝富(졸부)’라 하고 갑자기 돈을 번 사람이 돈을 제대로 쓸 줄 몰라 일탈된 행동을 하는 증상을 졸부증후군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은 우리 축구팀이 4강신화를 달성할 때 선수들의 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국민들에게 일깨워줬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의 병역 면제를 둘러싸고 시작된 찬반 논란이 정치권에서 모병제 논의로까지 확산되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문화.체육.예술계에 적용된 병역특례는 국위 선양의 포상적 의미도 있지만, 인생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도 감안된 국가적 배려다. 특히 전성기가 짧은 운동선수는 더욱 그렇다. 만약 축구스타 손홍민이 병역특례가 없었다면 지금 어땠을까. 히딩크는 우리에게 한가지 더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똑같은 나이에 같은 기술을 가졌어도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선진 축구와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없다는 메시지다. 이런 체력의 중요성은 문화.체육.예술 쪽에만 해당될까. 필자는 어려서부터 조금만 피곤하면 코피가 나고 체력이 약해 밤늦게 공부하는 게 어려웠다. 시험볼 때 밤을 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았다. 그런데 좀 잘나가는 외국 대학의 경우는 특히 시험 기간에는 하루이틀 꼬박 잠을 자지 않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도 체력이 없으면 경쟁력
근래 진보진영 유력인사가 북한 김정은위원장을 계몽군주라 지칭하여 보수진영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사건을 보면서 아직 우리사회의 대북인식에 첨예한 갈등적 요소가 많이 남아있고 국민적 합의를 기대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라는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북한해역에서 표류하는 우리 국민을 사살하고 부유물을 태운 북한군의 몰 인권적 행동에 대해 신속하고 용단있는 사과표시를 한 김정은 위원장의 행동을 계몽군주로 비유한 것을 보수진영에서는 3대세습 독재국가의 수장이면서 자신의 권력을 위해 자신의 후견인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또한 이복형을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독살한 잔인한 인간을 어떻게 계몽군주라 칭할 수 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다. 필자는 여기서 김정은 위원장의 계몽군주성을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의 적이면서도 미래 함께 살아야할 동포로서의 북한, 그 집단의 지도자 캐릭터를 우리가 분명히 잘 안다면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말이 시사하듯 앞으로의 대북정책 결정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 그의 캐릭터를 한번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먼저 북한 김정일의 요리사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가 전한 말에 의하면, 김정은이 10대에 원산 특각에 휴가차 다녀
“6.25 전쟁 때 한국과 미국이 함께 시련을 겪었다”는 우리 방탄소년단(BTS)의 원론적인 발언을 놓고 세계가 한바탕 여론전쟁을 벌였다. 중국 네티즌을 중심으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왔다는 한국전쟁의 중국식 표현)를 모욕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고, 외국 언론들은 ‘편협된 애국주의’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네티즌 등을 인용해 “6·25 당시 미군은 침략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입장에만 맞춘 발언”, “국가 존엄을 건드렸다”며 ‘중국의 분노’를 부각시키려 했다. 사드보복에 한번 데인 현지 우리 기업들은 공식 쇼핑몰과 소셜미디어에서 BTS 관련 게시물을 내리기까지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BTS의 악의없는 발언을 공격했다”며 “현지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중국의 애국주의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 BTS를 둘러싸고 노출된 중국의 소셜미디어(SNS) 중심에는 이른바 Z세대가 있다. 1995년 이후 출생한 이들 청년세대는 중국이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사태 이후 사회주의 경제도입과 함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때 같이 자라온 세대로 애국주의와…
헌법은 “국방”을 “신성한”이라는 형용사로 수식한다. 헌법 제5조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가 그것이다. 단 한순간도 전쟁이 끊이지 않아온 지구의, 아니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 본다면 외세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는 “국방”이 “신성한”의 수식을 받을 자격은 충분할 수도 있겠다. 반면 코스타리카와 같이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서도 평화를 이끌어나가는 국가를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우뚱 해지기도 한다. 코스타리카가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군대를 폐지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그들에게 “국방”이 “신성한 의무”였다면 군대를 폐지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국군은 헌법에 의해 “국가의 안정보장과 국토방위라는 신성한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유독 한국에서 국방의 의무 해태는 민감하게 작용한다. 그럼에도 병역비리는 끊이지 않고 잊을만하면 터져 나온다. 그 때마다 여론은 들끓는다. 하도 여론이 들끓다보니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심지어 검찰이 기소여부를 판단하기도 전에 이미 여론에 의한 재판과 응징이 이뤄져 버리고는 한다. 예컨대 유명 연예인이었던 MC몽은 2010년 치아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변해지는 생활 풍경이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서로 만나서 얘기하는 일이 극도로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직접 만나서 얘기할 사항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전화나 다른 교통수단으로 해결하게 된다. 관공서 출입구가 주 출입구 하나로 통제되고 대부분 바이러스 체크 장소로 바뀌었다. 불편하지만 누구나 마스크를 쓰고 있고 열화상 체크나 손 소독 등 정해진 지시에 순응한다. 누구 하나 이렇게 불편하게 시비를 걸거나 탓하는 사람이 없이 자연스런 일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곳은 대민 상담 장소를 야외에 설치하여 텐트에서 민원인들과 마스크를 쓰고 민원 응대를 하기도 한다. 아마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서 서로 간에 조심하는 공중보건 의식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드물게 방역 수범국가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정치를 하시는 분들은 자신들이 정책을 잘 펼쳐서 모범국가가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선진국들이 다시 코로나 감염자 수가 폭등하고 재차 팬더믹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상황을 보더라도 이것은 정치하는 사람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삶에 영향을 준 詩人을 읽는다. 공직에서 문학의 사치를 걷는 동안 염불과 잿밥은 왜 먹으려했던 것인가? 직장은 수상한 시대를 이겨야 했고, 학문에서는 어떤 이념과 현실에 적응해야 했다. 시대도, 이념도, 그 인식과 의식의 오류는 모두 내가 만든 문학의 오솔길이었다. 이 수상한 문창과 시절, 황지우 시인을 통해 나의 문학은 좌충우돌 하면서 멀고 어려운 강을 건너야만 했다. 시인은 한국예술종합학교로 갔고 총장을 끝으로, 고향인 해남으로 돌아왔다. “뜻이 이끄는 대로 뚜벅뚜벅 먼 길을” 가라는 방향의 키를 잡아준 것도, “지식과 덕성을 1%로만 토해 내라”는 것도 스승의 가르침이셨다. 백련재에서 스승과 제자로 재회했다. 아버지 소천은 슬픔과 회자정리(會者定離)로 간단하지 않았다. 귀촌과 귀농은 아내의 동의를 얻는데 성공했다. 詩人도 2년 시름 끝에 해남에 둥지를 마련했지만 여의치 않은 일들이 많아 곁에서 바라보는 나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제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육각형 한옥건축을 계획하고, 고향땅을 밟으면서 발품을 팔았다. 스승과 나는 우수영과 땅끝을 오가면서 땅의 기운이 문학과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오관의 작용을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충북 영동군, 충남 금산군, 전북 무주군 등 3개 지역이 협력하여 지역의 관광활성화사업을 도모하기 위해 3도 3군 문화관광 프로그램인 ‘금강 따라 걷는 삼도(道), 삼미(味), 삼락(樂)’을 연계하고 있다. 그리고 3개 지역의 대표적인 농·특산물을 재료로 음식 메뉴, 디저트, 도시락 메뉴를 개발하였다. 특색을 갖춘 지역 음식들을 보급, 관광 상품화할 계획이다. 일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일단은 훌륭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고장 먹거리와 지역 활성화 파급의 효과는 기대할 만 하다. 지역문화 콘텐츠의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여기에 지역 문화 콘텐츠와 로컬 푸드와의 연계는 앞으로 3군의 과제가 될 것이다. 문화 콘텐츠란 ‘문화적 요소를 지닌 내용물이 미디어에 담긴 것’을 의미한다. 미디어에 담긴 것이라는 정의를 제외하면 지역의 음식도 어떻게 보면 문화 콘텐츠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역의 문화자본을 활용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 중에 지역과 연계된 이미지로서 대표되는 음식(食)도 문화 콘텐츠의 하나가 된다. 의(衣), 식(食), 주(住)는 문화 콘텐츠의 하나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제주도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1982년 공직의 회식에 4급 부서장이 30분 늦게 도착했다. 먼저 자리한 30명 직원들의 불만이 일기 시작하더니 7급 중간쯤 되는 선임들이 몰래 반찬을 먹기 시작했다. 요즘 부서장이라면 자신이 늦으니 먼저 식사를 시작하라 연락을 하겠지만 당시의 공직 상층부 어르신들은 그런 배려를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몰래 시작된 접시빼기는 한동안 진행되었고 결국 상다리 아래에는 10개가 넘는 빈 접시가 쌓였다. 1985년 회식 중반에 술을 강권하는 간부를 조력(?)하면서 또 문제의 그 7급 선배들이 건네준 사이다가 든 소주병을 서빙하다가 혼자서 다 뒤집어 쓰고 벌주를 하사(!)받았다. 그날 회식은 음식 먹은 기억없고 벌주로 마신 소주의 진한 진향만 기억난다. 25도 톡 쏘는 소주의 송진 맛을 당시 젊은이들은 진맛이라 했다. 8급까지는 당하는 줄 알면서 피하지 못했던 회식의 아픈 기억이 참으로 많기도 하다. 2015년경 세월이 흘러가니 이제는 회식을 주관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래서 일찍 도착해서 동료들을 기다렸다. 참석 인원만큼 사다리를 그려서 자리를 정했다. 복불복으로 결정되는 자리이니 방석배정에 대한 불만이 없고 옆자리, 앞자리에 누가 앉는가는 그날의 운이다
어느 해 추석, 버스가 시골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 문이 덜컹하고 열리자 알싸한 황토 냄새와 함께 흙먼지가 훅 차안으로 밀려들어왔다. 한껏 멋을 낸 옷에 번들거리는 구두를 신은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버스에서 쏟아져 내렸다. 손에는 선물보따리가 가득했다. 터미널에 마중 나온 어린 동생은 제일 먼저 누나가 사온 운동화를 받아 들고 벌써 포장을 뜯고 있었다. 나는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내 손에는 공장에서 준 식용유 선물세트가 하나 들려있었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당산나무를 지나 방앗간 터를 지나갈 때 승용차가 빵빵 거리며 나를 비켜 지나갔다. 성공한 아랫집 자식들이 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승용차를 타고 오지 못했다. 바리바리 선물꾸러미를 가져오지도 못했다. 겨우 결혼은 했으나 결혼식은 하지 못했고 아내가 아파서 아들은 집에 두고 혼자 찾아오는 길이었다. 어머니에게 용돈이라고 드릴 얇은 봉투가 겨우 하나였다. 이미 집에 와 있을 동생들을 볼 면목도 없었다. ‘큰 형이 집안을 위해서 한일이 뭐가 있는가?’ 전번에 집에 왔을 때 어린 동생이 나에게 한 원망이 여전히 귀에서 맴돌았다. 그냥 여기서 발길을 돌려 돌아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