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인문고전 모임에서 만난 한 선생의 가훈은 '나를 의심하라'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토론을 할 때마다 남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는다. 의심이 가는 대목은 메모해 뒀다가 뒤풀이 자리에서라도 꼭 묻는다. 처음에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받으면서 그의 가훈 그대로 나를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정확히는 내가 말한 것들, 내 사고, 내 시각. 정말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 생각은 맞는 것인가, 그 반대 지점의 생각은 엉터리이기만 한 것인가. 그 선생의 영향으로 마치 초침이 된 느낌이다. 누구의 말이나 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고 한다. 옳든 그르든 참고한다. 그러나 이 습관은 이따금씩 흐느적거린다. 어떤 일방의 현상이나 주장에 쉽게 동조하는 것이다. 지난 4·7 보궐 선거에서 오점 많은 국민의힘당 후보의 큰 차이 승리는 어려울 것이라는 나자신의 분석을 좋은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예술 창작에서 말하는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만큼 나를 의심하라가 깊이 각인돼 있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 대선 경선 국면인 이즈음 거리두기가 이루어져 다행이다. 각 후보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
노동은 육체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조건이다. 만약 인간이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얼이 죽거나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이 정신생활의 필연적인 결과인 것은, 육체에 있어서의 그 불가피성과 마찬가지로 분명한 사실인데도 모든 사람이 다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육체노동에 종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체력을 잃고 진리를 놓치게 될 것이다. 나는 현대의 문학과 철학에 나타나 있는 오류와 결함, 그 지나친 장식과 나약함, 우울함이 현대 문단의 허약하고 병적인 습관의 결과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은 그리 좋지 않더라도 그것을 쓰는 사람이 더욱 노력하는 훌륭한 사람이어야 하며, 현재처럼 그 사람이 쓰는 것과 실제 인물이 너무 동떨어진 대비를 이루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에머슨) 우리는 육체노동을 통해 외부 세계를 배운다. 풍요로움의 은혜는 그것을 공짜로 얻는 사람보다 그것을 생산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삽을 들고 밭에 나가 이랑을 고를 때, 나는 언제나 큰 기쁨과 함께 육체의 건강을 느끼며, 왜 나는 지금까지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남에게 시킴으로써, 이런 행복을 나 자신한테서 빼앗았던 것일
현실은 영화보다 더 잔인하다. 아프간 수도 카불이 탈레반 에 점령당했다는 뉴스는 말 그대로 지옥도를 보여주었다.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치다 결국엔 미군에게 갓난아기라도 살려달라고 맡기는 뉴스 영상은 그야말로 무간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삶의 희망이 노루꼬리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엄마가 아기를 생면부지의 군인에게 던지지 않는다. 그 참혹한 어머니의 마음을 가늠이나 할 수 있으랴? 아기를 포기한 아프간의 엄마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에게도 호세이니의 소설처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떠오를까? 비극은 멀리 아프간에만 있지 않았다.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 양의 부산대 의전원 입학이 취소되었다. 지금 인턴과정을 밟고 있는 조민 양은 앞으로 의사면허 자체가 박탈될 수도 있다. 자칫 그녀가 쌓아올린 전 생애를 부정당할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조민양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처럼 삼성을 등에 업고 부당하게 승마포상기록을 내세워 이화여대에 입학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돈도 능력”이라며 세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잘못도 없었다. 빌미는 동양대 표창장이었지만 알다시피 조민의 고초는 아빠가 조국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것. 아빠가 국정을 농단했기 때문이 아니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케 만드는 나환자(한센인)들의 신비스런 힘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이 신부는 부산 인제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병역을 마친 뒤 광주 카톨릭 신학교를 다녔다. 2000년 로마 교황청이 세운 살레시오 신학교에 유학 중 내전 중인 남수단 오지 톤즈 마을에 선교사로 간다. 이 신부가 그곳에서 8년간 실천한 선교 의료 교육활동은 초인적이었다. 그들은 신부를 '남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2008년 잠깐 휴가를 나와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대장암 4기였다. 투병기간에 톤즈로 돌아가고 싶어 했으나 끝내 선종했다. 48세였다. 종군기자로 명성이 높았던 kbs의 구수환 피디가 이 신부와 톤즈의 사랑과 우정을 다큐영화로 만든 게 '울지 마 톤즈'다. 나는 지난 2010년 9월 '울톤'을 관람했던 45만 명 가운데 하나다. 요즘도 영화 보면서 종종 눈물 나지만, 그날처럼 펑펑 쏟은 적은 없다. 세 번을 봤는데, 처음 혼자서 보던 날처럼 울었다. 실은 관객 모두 마찬가지였다. 특이한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어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의힘과 비교섭단체 5개 정당에 대한 부동산거래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권익위는 본인과 그 가족의 법령 위반 의혹 소지가 있는 국민의힘 의원 12명(13건)과 열린민주당 의원 1명(1건)을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24일 즉각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1명 제명, 5명 탈당 권고’라는 조치결과를 발표해 ‘어물쩍’ 넘어가려는 속셈을 드러냈다. 이런 행태로는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공정·특혜’ 의혹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한무경(초선·비례) 의원을 제명하기로 하고, 소속 의원 5명에 대해서는 탈당을 권고하기로 했다. 나머지 6명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는 권익위 조사에서 ‘업무상 비밀이용 의혹’이 지적된 자당 소속 김의겸 의원에 대해서 “근거가 전혀 없다”며 “당 차원의 조처를 할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권익위가 적발한 의혹은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 1건, 편법증여 등 세금탈루 의혹 2건, 토지보상법·건축법·공공주택특별법 등 위반 의혹 4건, 농지법 위반 의혹 6건 등을 적발했다. 국민의힘이 104석인 걸 감안하면 소속 의원 10명 중…
2004년 초여름, 개성 시내를 지나 동북쪽 오관산 방향 개성 영통사 복원 현장으로 가는 길. 울퉁불퉁한 산길을 지나면서 좌우의 산야를 유심히 보니 큰 수목이 잘 보이질 않는다. 옆에 앉은 개성시 인민위원회 K국장의 말이, 자신의 어린 시절에는 큰 나무가 많았었다고 한다. 평양에서 묘향산 가는 길(2시간 길)에서도 어김없이 시골마을 인근 산은 민둥산이다. 2012년 하나원에서 만난 함경도에서 온 탈북청년이 말하길, ‘소학교 시절 학교 다녀오면(자주 학교를 결석하고) 나무땔감을 하는 일이 하루 일과였다고, 주변에 나무가 없어 몇 시간을 걸어 멀리 가야 땔감나무를 구할 수 있었다고’. 겨울에 추위를 견디기 위해선 북한 주민들은 땔감을 필히 준비해야 한다. 시골에서 자란 필자도 중학교 시절 사방공사에 동원된 기억, 식목일만이 아니라 자주 나무 심기 작업에 나선 기억이 있다. 다행히 정부의 시탄 정책으로 무연탄에서 기름, 전기로 난방 방법이 변하면서 지금의 푸르른 산을 보게 되었지만, 북한의 경우는 많은 석탄 매장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채굴 기술과 자재 부족, 수송을 위한 도로나 수송차량의 절대 부족 등으로 아직도 나무 채벌과 낙엽을 땔감으로 사용함이 일상이다 보니
교사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가 족히 수백 통은 넘어간다. 내가 인기 많은 교사여서 편지를 받는 건 아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작년에 담임했던 아이들이 자기 교실에서 스승의 날 행사로 편지를 써서 교실로 가져온다. 학년이 끝날 때쯤에 편지를 주고 떠나는 아이들도 가끔 있다. 교사를 하다 보면 연례행사처럼 편지를 받게 된다. 편지에는 보통 공부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나, 올 한 해 재밌었다는 말이 적혀 있다. 때로는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하기도 하고, 말을 잘 안 들어서 죄송하다, 그동안 말썽꾸러기들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다는 이야기가 구구절절 쓰여 있을 때도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지금 괴로운 일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가 올 때도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생활하는 게 대동소이하니까 편지의 내용도 비슷비슷해진다. 나를 잊지 않고 편지를 적어서 건네준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개학을 맞이해서 출근했는데 교무실에 편지가 한 통 와 있었다. 보낸 이는 올해 우리 반 친구 A였다. 급한 일이었으면 메신저를 통해서 연락이 왔을 텐데 그게 아닌 걸 보니 천천히 확인해도 될 내용인 듯싶었다. 편지 봉투에 우표까지 붙여서 온 편지를 보고 약간은 두근거리기
기도의 보람은, 네가 가장 선한 순간에 도달했을 때, 네 가슴속에 삶의 의의에 대한 최고의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신에게 봉사하는 내적 형식으로서, 신의 은총을 구하는 수단으로 이해되고 있는 ‘기도’란 공허한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원래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인 신에게 언어로 자신의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도에 의해서는 우리는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며, 또 신의 계율로서 우리의 마음에 각인된 의무의 하나를 수행한 것도 아니므로, 결국은 실제로 신에게 봉사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를 통해 신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으로부터의 소망,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행위가 바로 신에게 봉사하는 거라는 마음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 속에는, 우리의 마음에 절대적으로 내재해야 하는 기도의 정신이 들어 있다. 이 소망에 언어와 형식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에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수단일 뿐이다. (칸트) 이따금 어린아이처럼 누군가에게(신에게) 호소해 도움을 청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것은 좋은 감정일까? 아니다. 좋지 않다. 그것은 나약한 마음이고 믿음이 없는 것이다. 뭔가를 간절히 소망하는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