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별난 도서관 이야기를 들었다. 책이 아니라 사람을 대출해 주는 도서관이라는데 이름하여 ’살아 있는 도서관(Living Library). 도서관을 찾은 사람들은 ‘만남을 원하는 이’를 전용 카드로 신청한다. 대개 직업과 성향등을 기록한다. 사서는 고객이 원하는 이를 백방으로 찾아내 도서관에 오게 한다. 대면 시간은 딱 한 시간. 일반 도서관의 ‘기한 내 책 반납’과 같은 규정이 있는데 ‘만난 사람과 싸워서는 안 되며 한쪽이 대화를 원치 않을 시 바로 중단해야 한다’는 것. 최다 대출 희망 대상자는 ‘은행강도’였다. 당연지사, 대출을 원하는 이는 일반인이 평소 만나기 힘든 존재들이었다. 레즈비언, 랍비, 유럽연합관리 등이 눈에 띈다. ‘집시’를 만나기 원하는 ‘네오 나치주의자’도 이색적이다. 헝가리에서 집시는 보기 드문 존재가 아닌데? 그가 집시를 만나고 남긴 기록이 마음에 남는다. ‘과거 세상의 모든 집시를 증오했는데 도서관에서 만나 대화해 보고 달라졌다. 지금도 도둑질하는 놈들은 싫지만!’ 헝가리 하면 제일 먼저 집시가 떠오른다. 야생의 냄새가 맡아지는, 인간의 바닥 정서가 밴, 심장을 저미는 애조가 끓는 집시 음악을 미치도록 좋아한다. 헝가리를 집
사람들에 대한 선의는 인간의 의무이다. 만일 우리가 선의로써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이 된다. 아무리 비참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그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어떤 사람의 내부에도, 우리들 속에 살고 있는 것과 똑같은 영혼이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때도, '그래, 세상에는 온갖 사람이 다 있게 마련이니까 참아야지' 하고 생각하라. 만일 우리가 그런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드러낸다면, 첫째로 우리는 옳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둘째로 그들을 결사적인 싸움으로 유인하게 된다. 그가 어떤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신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불구대천의 원수로서 서로 싸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그가 현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면 좀더 잘해 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라도 선의로 대하며, 그에게 다른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쇼펜하우어) 악의 유혹에 빠진 사람을 잔인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자신도 남에게 위로받은 적이 있는 것
정부는 작년 12월 28일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였다. 자유, 평화, 번영의 비전을 선포하고, 그 협력원칙으로서 포용, 신뢰, 호혜를 내세웠다. 그리고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인태 지역 질서 구축, 비확산·대테러 협력 강화, 기후변화·에너지 안보 관련 역내 협력 주도, 상호 이해와 교류 증진 등을 포함한 9대 중점 추진과제를 선정하였다.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은 대체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용하고 있다. 다만 미국형이 중국의 견제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하여 한국형은 “보다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관계의 구현”을 추구한다. 한중의 긴밀한 경제적 상호의존관계를 고려한 국익 우선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지지를 표명하였지만, 구체적 정책 실행과정에서 계속 한국을 유인 또는 압박할 것이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적합한 행동 전략은 무엇인가? 자유무역의 국제규범과 규칙에 근거한 헤징 전략이 최선이다. 예를 들면 국제규범과 규칙에 따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는 동시에 중국, 일본 등과 함께 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F)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도, 인도네시아 등 제3의 중립지대에 미
여행은 삶 속에서 피어난 욕구를 반영한다. 행복(happiness)하고 건강(fitness)하게 잘 살고(well-being) 싶다는 욕구를 반영한 여행, 웰니스 관광(Wellness Tourism)은 2023년에도 트렌드로 예측된다. 웰니스란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상태를 이르는 말로, 2000년대 이후 웰빙 트렌드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며 등장한 개념이다. 웰니스를 추구하는 여행 웰니스 관광은 온천·명상·요가·건강식·숲·산책 등을 통해 건강한 개인과 삶을 만드는 데 목적을 둔다.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관광과 달리 삶의 질을 높이려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강은 주로 기본 체력과 회복력이 떨어지고 여러 가지 신체적인 증상이 생기며 질병과 가까워지는 중장년층과 노년층의 관심사였으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확대되고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며 전 연령층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특히 MZ세대는 건강관리도 자기 계발의 하나로 여기며 꾸준히 지켜보고 관리함으로써 조화로운 삶을 위한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3년이 지나도록 지속된 코로나19 시대는 사람들을 위축시켰
분단된 땅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은 서럽다. 78년이라는 너무나 긴 세월 동안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지도, 방문할 수도, 서신도 주고 받을 수 없는, 전 세계의 유일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남북당국자 회담 끝에 나온 합의 이후 극소수 인원만이 몇차례 상호방문을 했을 뿐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은 버려진 채 분단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현재 북한과의 접촉은 철저히 차단돼 있다. 정부의 허락 없이는 서신 교환이나 만남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 국가보안법(보안법)이 엄존하는 현 상황에서는 통신-회합 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만과 중국도 2008년 ‘3통 조처’로 이산가족이 본토 방문과 서신 교환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보안법은 1948년 과거 독립운동을 탄압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제의 치안유지법과 보안법을 그대로 답습해 제정된 법이다. 이 법은 숱한 남용 사례를 남겼다.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이승만 정부 아래서 농림부 장관을 지냈던, 이승만의 최대 정적 조봉암마저 이 법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는 이른바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돼 1심 무죄 선고를 받고도 1958년 2심과 대법원의 유죄 판결을 거쳐 죽임을 당했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2차…
대장동 불길이 언론계로 번지고 있다. 언론인 출신의 김만배, 전직 언론인 남편 남욱 등 대장동 관련자들과 거액의 돈거래를 한 기자들이 속한 언론사가 공개됐다. 한겨레신문, 중앙일보, 한국일보다. 관련 기자들의 이름은 이미 언론계에 비밀이 아닐 정도로 회자되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손쉽게 기자 이름을 찾을 수 있다. 명품구두를 받았다는 채널A 기자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그들이 보도헀던 기사를 찾아내 교묘하게 편파보도 한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채널A 기자는 김만배와 머니투데이에서 같이 근무했던 2011년 5월 31일, 50억 클럽 멤버 곽상도 변호사를 공동 인터뷰 해 《저축은행 비리, 처벌 강화해야 발본색원》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곽상도는 완벽한 법조인으로 그려졌다. “검찰권은 국민을 대신해 수사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검찰이 돼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검찰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그의 말과 함께 더 이상의 찬사가 없을 정도다. 한국일보 기자는 지난해 10월 《30%에 갇힌 민주당》이란 칼럼에서 “대장동 수사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 턱밑까지 파고들었다.”며 “민주당 내부에서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고, 민주당발 정계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너의 노동은 0원. 너의 노동은 자원봉사. 너는 과로하는 백수” 나의 실상이다. 나는 ‘무급’ 마을활동가이다. 그 시작은 이랬다. ‘아이 셋을 데리고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은 없을까?’ 세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과 병행하면서 점차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마을공동체 영역으로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그러다보니 아이를 데리고서 하려던 일은 아이를 데리고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돌봄교실에 알아봤더니 자녀를 맡기려면 ‘맞벌이 부부’라야 한단다. 일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재직 증명서’와 ‘의료보험 납부 확인서’를 제출하라는데. 그건 뼈 빠지게 일해도 내가 만들어낼 수 없는 문서였다. 그때 처음 무급으로 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돈으로 노동의 가치를 매기는 사회에서 돈을 받지 않는 노동에 ‘공권력’이 발부하는 성적표였다.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에 대한 증명서와 확인서였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이라는 용어를 고안했다. 마을활동은 육아와 가사노동과 함께 대표적인 그림자 노동에 속하고 나는 주구장창 그림자 노동을 해왔다. 임금노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림
대학 입시철이다. 요즘이 수능 점수를 기반으로 한 정시모집 전형과 합격자 발표가 집중되는 시기이다. 입시를 앞둔 학생들은 제도권 교육의 최종 선택을 하고, 대학은 이들 지원자를 전형하여 합격 여부를 정한다. 지난 연말 역내에 소재한 분당영덕여고에서 진로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에 대해서 소개하고, 향후 입시 공부를 위한 동기부여를 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일 때는 늘 많은 고심을 하게 된다. 한마디 한마디가 어쩌면 학생들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비효과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인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신중하게 내용을 구성하게 된다. 학생들에게 대학은 무엇일까부터 시작했다. 대학은 BTS이다 학생들은 고교과정까지 길고 긴 학습의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12년 동안 배운 내용은 늘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들이다. 그 정점이 수학능력시험이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답을 골라내야 하니 탐구와 이해보다는 암기식 위주의 학습 방법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개도국에서 중진국으로 또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어쩌면 암기식 학습 방법이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학은 다르고 달라야 한다. 그곳은 어마어마한…
작년 말부터 2023년 벽두까지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들은 올 한 해에 대한 여러 예측을 쏟아내고 있다. 대체로 낙관적인 예측보다 비관적인 예측이 더 우세하다. ‘위기’ 또한 가장 인기 있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위기’는 옮음과 그름, 삶 혹은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등을 의미했지만, 근대에서 위기는 선택조차 쉽지 않은 위기의 일상화 시대로 변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와 타이완의 위기, 식량 불안 위기, 경기침체 위기,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부채 위기, 이란 핵문제, 기후변화 악화 등은 단골이거나 중첩되는 위기 속 예측 소재들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은 거의 상수로 자리 잡아 국제정세 예측의 기본 축이 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예측에 한반도가 빠질 수 없다. 북한의 무인기 기습과 군의 허술한 대응 모습은 계축년의 한반도가 더 격랑 속으로 빠져들어 갈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본 적이 없는 지각변동’이 한반도에도 밀어닥치고 있음을 예고한다. 김정은 정권은 그간의 북한이 구사해온 對남한 전략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핵무기와 미사일의 고도화가 거의 달성되었다는 나름의 자신감
넷플릭스의 오스트리아 6부작 드라마 ‘우먼 오브 더 데드’의 주인공 블룸(안나 마리아 뮈에)은 직업이 장의사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하도 시체를 많이 봐서인지 살면서 그리 무서운 것이 없다. 성격도 냉랭한 편이다. 말하는 것도 남을 배려하거나 하지 않는다. 도무지 살가운 성격이 아니지만 오직 한 사람, 곧 남편 마르크(막시밀리안크라수스)에게만은 예외였다. 하지만 마르크는 아침 출근길에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그 광경을 블룸은 두 눈 뜨고 지켜보게 된다. 블룸은 차차 남편의 사고가 의도적이었으며 누군가, 어떤 집단이 남편을 살해했음을 알게 된다. 블룸의 가혹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원래 이런 류의 자경단(自警團) 영화는 (그 이름도 추억에 젖게 만드는) 찰스 브론슨의‘데스 위시’ 시리즈가 원조였다. 아내를 살해하고 딸을 강간해 죽인 범인들을 찾아 일일이 응징하고 죽이는 중년 남자 폴 커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형편없었으며 찰스 브론슨의 대표작 ‘빗속의 방문객’, ‘원쓰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황야의 7인’ 등에 비해 그의 명성을 몇 단계 떨어뜨리는 작품이었지만 오히려 대중적 인기는 치솟았다. 찰스 브론슨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