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전화라도 걸고 싶은 저녁. 차에 앉아 휴대폰 연락처를 들여다본다.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 여러 날. 만만하게 전화할만한 이름을 떠올려본다. 몇 명 되지 않는 중에서 퇴근시간이라 망설여지는 몇을 빼고 나면 한 둘 정도만 남는다.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울어도 받지 않는다. 바쁜 시간이니 당연하다. 저무는 하늘 끝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무가 보인다. 하늘로 뻗은 가지가 허공을 나눈다. 가지와 가지 사이 삼각이나 사각으로 분리된 허공. 그 사이에 걸린 저녁의 채도가 짙다. 이내 나뭇가지와 허공의 경계를 어둠이 흐려 놓는다. 경계가 모호해진다. 심리적인 경계는 보이지 않는다. 타인들이 암묵적으로 설정한 경계가 그렇다. 나만 모르는 경계를 타인들이 공유하면 ‘왕따’가 된다. 그 경계는 성벽처럼 견고하다. 빈틈 하나 없이. 어쩌면 그것은 내가 만든 경계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만든 선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것. 일명 ‘자발적 왕따’라고 하지. 생각해보면 내가 먼저 뒤돌아서고 금을 그어놓은 경우도 있지 않았던가. 환했던 낮은 침몰하는 배처럼 조금씩 어둠에 잠긴다. 나무들도 검은 형상으로 굳어간다. 어느 누가 저 어둠을 말릴
2009년 어느 가을 아침, 6학년 부장교사가 교장실로 뛰어들었다. “신종 플루 때문에 수학여행을 못 가게 됐습니다!” “저런!” “어떻게 하죠?” “아이들 실망이 크겠죠?” “그럼요!” “대책을 세웁시다!” “어떻게요?” “가라면 가고 말라면 말고, 그러면 누가 교육을 어렵다고 하겠어요?” 그날 교사들은 예전에 모스크바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동유럽 나라를 ‘가상 탐사’하는 여정을 정해 그 나라의 지리와 역사, 문화, 언어, 일상생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리포트를 작성했더라는 ‘학급여행’ 이야기를 읽고(유네스코 핸드북, 1981), 3일간의 ‘경주 가상여행’을 구상했다. 카페를 개설해서 자료를 모으고 토론회, 가장행렬, 보고서 작성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은 여행이 취소됐다는 발표에 실망하면서도 이 대안에는 절대적인 지지를 보여주었고 더구나 적극적이었다. 첫째 날, 우선 경주에서 파는 달콤한 빵을 맛
“어디선지 몰래 숨어들어 온/근심, 걱정 때문에/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흰 눈이 채 녹지 않은/내 마음의 산기슭에도/꽃 한송이 피워 내려고/바람은 이토록 오래 부는 것입니까/3월의 바람 속에/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당신이 계시기에/아직은 시린 햇볕으로/희망을 짜는/나의 오늘…/당신을 만나는 길엔/늘상/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살아 있기에 바람이 좋고/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당신이 계시기에/나는 먼 데서도/잠들 수 없는 3월의 바람/어둠의 벼랑 끝에서도/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시인 이해인 수녀는 ‘3월의 바람’을 이렇게 노래했다. 아직은 쌀쌀함이 몸을 움추러 들게 하지만 봄을 알린다는 3월이 돌아온 것을 보니 가는 세월은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며칠 전만 해도 심술을 부린 날씨도 제법 살랑거림을 느끼게 한다. 햇볕도 완연해 3월을 맞는 기분이 과거를 회상케 한다. 모레가 경칩이다. 대지가 아지랑이의 호위를 받으며 활갯짓을 시작하는 시기다. 이럴 때쯤이면 3월의 봄바람은 더욱 봄을 실감나게 해줄 것이다. 3월을 두고 흔히 ‘춘삼월 호시절’이라 말한다. 봄의 경치가 가장 좋은 철이란 얘기다.…
연필이 지우개에게 /신진호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나는군 뽀오얀 피부빛이 눈길을 끌었지 네모이면서 묘한 말랑말랑함도 매력이었어 더구나 그 특유의 풋풋한 향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지 널 만난 뒤로 좋지 않은 기억은 저장되지 않았어 온전한 것만 남도록 네 몸을 문질러 내 잘못을 지워버렸거든 때론 연필깎이 몸단장에 새신랑 같다며 환히 반겨주곤 했지 세월이 강물처럼 느껴지는 날 우리 둘 모두 점점 작아지는 서로의 모습에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길 바래 조금씩 닳아져 간다는 것 너와 나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잘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잖나 이 친구야 ■ 신진호 1964년 충남 공주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졸업. ≪대한문학≫으로 〈억새〉 초회 추천(2017. 가을호), 〈젓가락이 숟가락에게〉 추천완료(2017. 겨울호). 시집: 《젓가락이 숟가락에게》 대한문학작가회, 지송문학회 회원.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기세가 꺾일 줄 모르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요즘이다. 필자는 유치원을 갓 졸업한 아이를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숨죽여 뉴스를 보곤 한다. 연일 새로 발표된 확진자 수와 이동 경로를 발표하는 관계자들과 언론인들, 바이러스 검사와 확진자 치료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을 바라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 와중에도 감동적인 소식을 접하였는데, 극심한 의료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대구로 많은 의료진들이 자원봉사하러 갔다는 것이었다. 또한 대구의 한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는 이들 자원봉사 의료진들을 위해 숙박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했다고 한다. 급박하고 정신없는 소식들이 넘쳐나는 요즘 이들이 시민사회에 베풀어준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 되어 필자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문득 누군가에게 베푼 호의가 바이러스 못지않은 전파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미술작가들 중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전파력을 가지고 관객들과 소통하는 이들이 있다. 쿠바에서 성장하고 미국에서 활동했던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라는 작가는 79.3㎏ 만큼의 사탕을 전시 공간에 쌓아놓고 관객들에게 사탕을 가져가도록 했다. 전시를 마치
중국 발 코로나19가 한국에서 발병한 지 40여 일이 지난 3월 2일 0시 현재 확진자가 4천212명에 달했다. 해외 70여 개국에 입국 금지·제한으로 국격은 땅에 곤두박질 쳤다. 정부는 아직도 중국인의 입국을 차단하지 않았고 있는데 중국인의 입국이 결정적인 패착이었음을 아직도 모르는 듯하다. 초기의 미온적인 대처로 확진자가 조금씩이지만 늘어났는데 대통령은 상황이 끝날 듯한 의미의 발언을 하였다. 급기야 대구의 신천지 교회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 확진자 숫자는 배로 증가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각자도생으로 살아 남아야 한다면 국가가 아니다. 지역사회로 추가 확산이 시작되자 미온적이던 정부는 총리를 내세워 9시 뉴스 시간에 맞추어 긴급회견을 가졌다. 그러나 이때도 국민들이 잘해주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500명 확진 이후 급하게 부총리와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중한 사태를 전했다. 전염병을 낙관하는 것처럼 바보짓은 없다. 이미 때를 놓친 상황이고 병원의 의료진도 감염되며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거리와 가게, 체육관, 식당은 텅 빈 상태가 되었다. 경제가 휘청이며 소상공인은 물론 기업 매출은 급락했고 회의와 모임이 취소되고 공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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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국민의 일상을 파괴하면서 생산, 소비, 투자를 축으로 한 경제 전반이 극도의 침체로 빠져든지 오래다. 이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여행·숙박·음식점업 등의 체감 경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주 민생·경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는 코로나19가 몰고 온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재정, 세제, 금융 등의 정책이 총망라됐다. 이번 대책은 금액으로 16조원 규모여서 우리 경제가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계획만 있고 실천이 늦어지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따라서 국회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추경안을 통과 시켜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발표된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해야 한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로 규모로 당면한 경제 위기를 돌파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우선 코로나19의 충격에서 헤어나는 것이 시급하지만 민간의 활력을 키워 구조화된 소비·투자 부진에서 탈출해야 하는 겹겹의 숙제를 안고 있다. 이번 나온 대책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소기업 지원 등의 민생 대책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영세 개인
경기도의 지향점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이다. 도는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대한민국 최고의 지방정부’로 가꾸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이 교통 인프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데다, 수도 서울까지 품고 있는 경기도의 교통체증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문제점으로는 경기 남부와 북부, 경기도의 중심과 외곽 지역 간의 불균형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교통 인프라는 격차가 심하다. 따라서 정부와 도는 지하철 새 구간을 개통하거나 기존 구간을 연장하는 한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GTX는 지하철보다 3배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차세대 고속 전철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7일 주요 업무추진계획을 통해 GTX를 목표 기한 내 개통할 수 있도록 사업을 적기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A노선은 오는 2023년 개통, B노선은 이달 기본계획 착수, C노선은 오는 12월 기본계획 고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발표한 바 있는 서부권 GTX인 D노선 도입도 검토할 예정이다. A노선은 파주 운정역부터 서울역, 삼성역을 거쳐 화성 동탄역까지 잇는 노선이며,
20년 전만 하더라도 비디오를 틀면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마마는 천연두의 다른 이름이다. 두창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는 감염성 질병인 천연두를 앓으면 열에 서넛이 죽었고, 살아남아도 얼굴은 곰보가 되었다. 포천은 한국 최초로 천연두를 치료했던 고장이다. 포천 영평초등학교 교정에 이를 기념하는 비가 서 있다. 일찍이 북경을 방문해 중국의 선진문물을 목격한 박제가(1750~1805)는 <북학의>(1778)를 지어 조선을 부강하게 하는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정조의 특채로 규장각 검서관으로 일하던 박제가는 1786년 정월, ‘병오소회’를 국왕에게 올렸다. 이때 박제가는 서양 선교사들을 조선에 초빙하고 이용감을 설치하자고 주장했다. “국가에서 관상감 한 부서를 운영하는 비용을 들여서 그 사람들을 초빙하여 머물게 하고, 나라의 인재들로 하여금 천문과 천체의 운행, 악기나 천문관측 기구의 제도, 농잠, 의약, 기후의 이치 및 벽돌을 만들어 궁궐과 성곽과 다리를 짓는 방법, 구리나 옥을 채굴하고 유리를 구워내는 방법, 화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