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수능의 변별력을 구실로 전문가도 풀기 어려운 초고난도의 소위 ‘킬러 문항’이란 ‘약자인 우리 아이들 갖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하며 사교육 문제를 거론한 것은 타당했다. 수능의 변별력을 명분으로 공교육만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능 문제가 존재하는 한, 그것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 고질병인 사교육 번성의 기반임은 분명하다. 낮은 임금에 아이를 키우며 주택 마련에 더해 사교육비에 허덕이는 맞벌이 부부를 생각해 보자. 킬러 문항을 못푸는 아이의 성적은 별도로, 친구 모두 학원에 가 버려 같이 놀 친구가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왕따로 전락하게 된다. 부모의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은 노후 빈곤과 이어지고, 이는 저출산이나 강남 부동산 가격 등 다양한 사회 문제 속에 반영된다. 공교육 현장의 교사들 역시 학생들과의 관계 형성이나 역할에 있어서 무기력에 빠지며, 아이는 아이대로 성적 경쟁 속에 건강한 인성 형성보다는 모든 것을 성적 서열로 판단하게 된다.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어린 학생들의 비극이 이미 낯설지 않게 된 우리 사회다. 과도한 사교육 현실 속의 일반 가정에서는 학생에게 부가 아니라 가난을 세습시키는 현실이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발언
인간의 존엄성은 때로는 이성으로, 때로는 양심으로 불리는 우리의 영적 본원에 존재한다. 이 본원은 시공을 초월하여 의심할 나위 없는 진리와 영원 불변의 진실을 가진다. 그것은 불완전한 것 속에서 완전한 것을 본다. 그것은 보편적이고 공평하며 언제나 인성 속의 편파적이고 이기적인 것과 대립하고 있다. 이 본원은 우리들 각 개인에게 엄연히 우리의 이웃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귀중한 존재라는 것, 그들의 권리 또한 우리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신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또 우리에게 진리가 아무리 우리의 자존심에 거스르는 것일지라도 끝까지 진리를 받아들이라고 명령한다. 우리에게 공정하다는 것이 아무리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일지라도 언제나 공정하라고 명령한다. 이 영적 본원은 우리에게 그것이 어떤 사람 속에서 발견되더라도 아름답고 거룩하고 행복한 모든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라고 호소한다. 이 본원은 바로 인간 내부에 있는 신의 빛이다. (채닝) 사람들은 육체적인 생활 속에서 하늘의 기쁨을 얻고 법열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오직 선한 삶을 살고 싶은 바람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청정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지혜와 감정이 청정할 때 그들에게 신성이 계시된다.
정치적 무관심이 영화적 무관심을 부른다. 이제 아무도 영화’판’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무리 코로나19 탓이었다 해도 이제 극장가를 두고 수직계열화 문제니 스크린독과점 문제니 등등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특히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그렇다. ‘범죄도시3’가 개봉 초기 전국 2352개 스크린에 걸린 것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전국 스크린 수는 2700개 아래 수준이다. 그동안 돈을 못벌었으니, 뭣보다 극장가가 망하게 생겼으니, 한 영화만이라도 돈을 좀 번다는데 뭐 그리 잘못이겠느냐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적어도 생각을 해야 한다. ‘범죄3’가 그렇게 시장을 싹쓸이 하고 있을 때 지난 해 베를린영화제와 런던비평가협회에서 상을 탔으며 올해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작이었던 ‘말없는 소녀’는 전국 스크린 45개에 불과한 것에 대해 생각을 좀 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아무 것도 기대할 게 없는 정권이고 세상이라고 한다. 영화 따위 어떻게 된다 한들 이제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식이다. 심지어 정부가 영화진흥위원회를 지목해 혈세를 낭비했다며 곧 감사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EBS가 ‘다큐멘터리K 대학혁신’이라는 타이틀의 5부작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 혁신의 과제와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복기해주었다. 5월 17일 방영된 1부 ‘왜 대학은 달라져야 하는가’를 시작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 ‘최고의 대학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채용이 대학을 바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1일의 ‘대학, 창업의 중심이 되다’로 막을 내렸다. 1부에서는 대학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로 자퇴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교수들이 수업을 부실하게 해 등록금이 아깝다는 것이다. 2부에서는 중앙대 김누리 교수와 경희대 김종영 교수가 혁신과 융합형 교육으로의 전환을 강조하면서 제기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를 주 의제로 다루었다. 3부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공간이 아니라 틀 안에 가두어 두고 창의력을 억누르며 ‘지식 답습’을 강제하는 대한민국 대학의 문제를 다루었고, 4부에서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인재를 요구하는 기업과 그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학의 현실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대학이 창업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리조나 대학과 가천대학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혁신의 장애물은 학과 체제
쉰 살이 되면 인생에서 쉰내가 나는 것인가? 했었다. 쉰 살이 지나고 정년 한 지도 십 수년이 되었다. 우주적인 고독을 안고 홀로그리움과 두려움에 서서히 길들여지는 것일까. 조그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 이루고 괴로워했다. 처신에 있어서도 멧돼지처럼 대담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생각하며 삼갔다. 이 세상 ‘천재는 99%의 노력과 1% 재능이다.’고 생각하며 오로지 능력과 노력으로 살아야 한다고 자신을 닦달하며 빈 틈 없이 살았다. 정다운 부모, 한 사람의 친형제를 그리워하며 평생을 걸었다. 이제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개그 같이 성공은 ‘1%의 재능에 99%의 돈과 백으로 얻어진다.’는 말을 긍정하며 허허 허! 하고 웃는다. 새벽 다섯 시 반, 인간의 체온을 느끼지 못한 채 잠에서 깨어나면서 ‘오늘은 또? …’ 하는 생각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동물원 길을 가고 있었다. 아침 공기는 상쾌했다. 30대 후반 젊은 부부가 간편한 복장으로 달리고 있다. 건강한 부부의 모습이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좀 더 가니 구청의 느린 청소차가 도로의 먼지를 흡입하여 포장도로를 깨끗이 닦아놓고 있다. 공원으로 가는 대학로 숲길은 오래된 플라타너스가 시골 동구 밖 느티나무를…
KBS가 뉴스의 중심에 섰다. 대통령실이 지난 5일 한전이 전기료와 통합 징수해 온 ’KBS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도록 법령을 개정하라‘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하자, 사흘 뒤 김의철 KBS 사장이 ’수신료 분리징수가 철회되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실 발표가 있자, 조선일보는 ‘KBS 수신료, 전기료와 분리 징수한다’고 확정된 것처럼 보도했다. ‘수신료는 사실상 국민세금···국민 불편 호소 반영’이라는 대통령실 입장만을 부각시켰다. 중앙은 ‘대통령실 KBS 수신료 분리징수 권고···개혁 신호탄?’이란 스트레이트 기사와 ‘대통령실 “KBS 수신료 통합징수, 국민 찬성 0.5%뿐”'이라는 제목으로 해설기사를 내보냈다. 두 신문은 분리징수가 ’개혁‘인지 ’개악‘인지에 대한 검증은 없었다. 동아는 ’대통령실 “KBS 수신료, 전기료와 분리징수를‘이란 제목으로 보도해 가치판단을 배제했다. 권고를 반영한 제목이었다. 해설기사도 대통령실이 제시한 국민 97%가 분리 징수를 찬성한다는 주장과 공영방송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KBS 입장을 균형 있게 반영했다. 한국·경향·한겨레는 첫 번째 사설로 KBS 수입의 45%를 차지하는 수신료 분리징수의 문
우리는 생활 속에서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알게 혹은 모르게 정부가 부과하는 여러가지의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월급에서 떼는 근로소득세, 외식비과 쇼핑을 포함한 대부분의 소비 생활에 포함되는 부가가치세, 집 살 때 취득세, 팔 때 양도소득세, 술 마실 때 주세, 담배 필 때 담배소비세 등등. 이렇게 정부는 국가 구성원들의 경제 행위를 샅샅이(?) 살피고 세금을 부과해서 국가 재정을 운영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그 전체적인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 가끔 언론 지상을 통해 올해 정부 예산규모가 얼마라는 정도의 막연한 이야기 들어 보았을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내는 세금의 규모가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구성이 되는지 국세 통계를 통해 알아보자. 지난 3월말 발표한 ‘2023년 1분기 국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청이 거둔 세수가 384조여원으로 전년 대비 14.9% 증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총 국세에서 국세청 세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97.0%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감소했다(나머지 3%는 관세라고 보면 된다). 2020년 국세청 세수액 277조3000억 원과 비교하면 2년 새 무려 106조9000억 원(약38.6%)이 증가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모르는
수천 년 전부터 자생 또는 타생으로 암약해온 스파이는 한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 이 만고불변의 법칙 아닌 법칙은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서도 형태를 달리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보가 그만큼 중요한 때문이다. 러시아 정보기관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두고 부식해온 ‘러시아 스파이망’이나, 남한을 전복하기 위한 북한 정권의 끊임없는 ‘남한 내 간첩 부식하기’는 생생한 사례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 간첩망 조직과 가동은 푸틴이 가장 믿는 FSB가 맡았다. FSB는 2021년 7월 경 우크라이나 점령 계획을 준비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FSB 제5총국이 전담하고 담당요원도 20명에서 200여명으로 대폭 증원했다. 러시아 특수부대가 선호하는 수법은, 직파 요원들을 최소화하고 현지에서 고참 첩보원을 포섭하여 자체 첩보망을 가동하는 것이었다. 정치· 경제 분야 고위직을 주 포섭대상으로 삼는다. 일종의 ‘거짓 깃발 포섭 형태’인데, 포섭된 협조자들은 자신의 나라 관료를 대신해서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믿는다. 우크라이나의 여러 고관대작들과 정치인들은 수십 년에 걸쳐 러시아 특수기관과 연계하여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우크라이나 의회 인민대표인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우리의 사랑도 흘러간다.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그 유명한 시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의 일부다. 이 다리는 파리 15구에 실제로 도도히 서 있다. 작자 기욤 아폴리네르. 그의 진짜 이름은 기욤 아폴리 나리 드 코스트로비츠키(Guillaume Apollinaris de Kostrowitzky). 1880년 러시아 제국의 폴란드신민으로 로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폴란드의 귀족 여인이지만 아버지는 누군지 모른다. 그는 대학도 가지 않은 괴짜다. 대학입학시험에 한 번 떨어지자 다시는 도전하지 않았다. 교과서적인 공부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첫 직장으로 독일 귀족의 가정교사가 됐다. 그 집의 젊은 가정부를 사랑해 추근거렸지만 거절당했다. 실연의 고통을 어쩌지 못한 스무 살 청춘은 시로 발설했다. 이어 르뷔블랑슈에 ‘레레지아르크’라는 콩트를 발표했다. 이때 기욤 아폴리네르라는 사인을 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아폴리네르는 프랑스군에 참가하길 원해 프랑스 귀화를 결정했다.…
철학자 미하엘 슈미트-살로몬은 ‘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주지마라’는 책에서 ‘문화적 피로(Cultural Fatigue) 증후군’을 이야기한다. 선거 때마다 어느 정당에 표를 줘야 할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이런 피로가 선거 때마다 계속 누적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미하엘 슈미트-살로몬은 자신이 겪고 있는 문화적 피로 증후군을 사회학자들은 ‘정치에 대한 실망’이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더 정확하게 말해 ‘정치인에 대한 실망’이라고 표현한다. 정치가들이 정치를 잘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 행복하고 삶의 질이 높다는 것이다. 2023년 유엔 산하 지속가능 발전 해법 네트워크가 발행한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스스로 매긴 행복도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5.951점으로 57위이다. 1위 핀란드, 2위 덴마크, 3위 아이슬란드, 4위 이스라엘, 5위 네덜란드, 15위 미국, 47위 일본, 58위 그리스, 64위 중국, 최하위 137위는 아프가니스탄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나를 대신하여 일해 줄 정치인을 뽑는 선거를 한다. 그러나 내 삶이 행복하지 않은 국민들은 선거 때마다 문화적 피로 증후군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내가 사는 지역에 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