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미술관은 광복 79주년을 기념해 경기미술창고 특별전시 ‘대한독립’을 경기도미술관 로비 공간에 선보인다. 경기미술창고는 2019년 코로나 긴급작품구입을 시작으로 매년 경기청년작가, 대중미술장르 작품 구입을 통해 공공 및 민간 작품대여 수익을 내는 사업으로 경기도 시각예술가들의 창작계기를 확대하기 위한 사업이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 한반도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를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특별한 전시다. 독립운동가를 소재로 작가별 해석과 현대적 감각을 더해 지금, 현재에 함께 기억하고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을 담아냈다. 박순철 작가는 전통 수묵 기법의 절제되고 함축적인 표현으로 독립운동가를 현대적 시각으로 표현했다. 작가 특유의 인물 해석이 수묵이라는 소재를 통해 진중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손지훈 작가는 디지털 페인팅과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해 독립운동가들이 광복 이후 발전한 지금의 대한민국에 살아간다는 설정으로 힘겨웠던 독립활동을 끝내고 각자의 휴식의 방법을 찾아 즐기는 모습을 젊은 감각으로 담아내었다. 유승백 작가는 그라피티 아트 장르를 활용한 스프레이 기법으로 색감이 주는 생명력을 흑백사진과 결합해 표현했다. 각 색상 패턴은
“항일음악을 소재로 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관심의 씨앗이 되길 소망합니다. 관심들이 모여 커질수록 진실된 역사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되며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알게 될 것입니다.” 항일음악은 일본제국주의의 한국 침략과 지배를 반대한 투쟁 음악으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해방을 쟁취함으로써 자주독립을 이루고 민족국가를 수립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애국계몽운동을 비롯해 독립운동, 해방운동, 변혁운동 등을 아우르는 혁명음악으로, 그 중심에는 애국가, 독립가, 혁명가, 항일가요, 반일가요, 항일가곡 등 항일노래가 있다. 경기문화재단 ‘2021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 민간공모 지원사업’에 선정, ‘청년1919-2021’ 공연을 앞둔 예술단체 우주는 음악예술 분야의 일제잔재 청산과 항일음악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우주는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중들의 문화적 성향을 파악하고, 소통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10년 이상 호흡을 맞추고 있는 공연단체로 지난 2017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항일음악 330곡집’ 집필 참여를 계기로 ‘항일음악회’,
‘인문도시’ 수원시는 근대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인문기행 코스 4개를 개발했다. 4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거쳐 완성된 만큼 풍성한 볼거리와 탄탄한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 그 중 첫 번째 코스 ‘신작로, 근대를 걷다’에 이어 ‘대한독립의 길을 걷다’라는 제목의 두 번째 코스를 소개한다. 이 코스는 제목 그대로 일제 강점기의 수원과 수원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나라를 빼앗겼던 암울한 시대를 기억하는 근대 건축물과 일제에 저항해 독립의 의지를 드높였던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이번 코스는 여행길을 더욱 다채롭게 한다. 총 6㎞를 둘러보는데 3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연무대~방화수류정 인문기행의 시작은 ‘연무대’다. 220년 전 정조대왕의 친위대인 장용영 군사들이 무예를 연마하던 훈련장으로,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보는 사람의 마음을 탁 트이게 해준다. 지금은 연날리기, 활쏘기는 물론 하늘 높이 올라 수원화성을 내려다보는 헬륨 기구 ‘플라잉수원’ 등의 체험이 이뤄지는 평화로운 곳이다. 그러나 102년 전 연무대에서는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는 민초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수원 장날이었던 1919년 3월 16
[ 경기신문 = 이성훈 기자 ]
◆안응칠 역사/안중근 글/독도글두레 옮김/독도도서관친구들/384쪽/값 1만8000원 “만약 인민이 없다면 국가가 어떻게 있겠습니까? 지금은 민족이 중심이 되는 세상인데, 무슨 까닭으로 유독 한국 민족만이 어육(魚肉)이 되는 것을 달게 여기고 앉아서 멸망을 기다린단 말이오?” ‘안응칠 역사’는 안중근 의사의 옥중 자서전으로 1909년 12월 13일에 쓰기 시작해 1910년 3월 15일에 집필을 마쳤다.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어려서 안응칠로 불렸고, 해외생활을 하면서도 이 이름을 많이 사용했다. 1896년 16살에 김아려와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고, 이듬해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를 받고 도마(토마스)라는 세례명을 갖게 됐다. 안중근은 27살이던 1905년에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들을 모으고 국권회복을 도모했다. 이 과정에서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 양성에 힘썼고, 평양에서는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해 산업 진흥운동에도 매진했다. 이후 연해주로 가서 의병대열에 참가해 대한의군을 조직하고 무장 항일투쟁에 나섰다. 1909년, 안중근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동의단지회’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했고,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