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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 길을 묻다<17>-원경선 풀무평화원 원장

 

-2007년 정해년이 밝았습니다. 이렇게 직접 뵈니 젊은사람 못지 않은 건강을 지니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생각도 젊으신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일을 하고 계신데 새해를 맞는 특별한 소감은 어떠십니까.
▲지금은 이렇게 건강해도 15세때 간 디스토마를 알았습니다. 옛날에는 개울에서 가제도 잡아먹고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내내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런데 유기농을 시작한 것이 1976년도인데 30년 전까지 아팠던 몸이 유기농 현미밥을 먹고 나서 나았습니다.
유기농은 청정재배를 해야 하는데 2해를 완전히 실패하다가 3년째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때 내 건강이 완전히 회복이 됐던 것입니다. 그게 유기농으로 한 현미식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1996년도에 세계 환경연합에 강연을 갔는데 비행기를 23시간을 타고 끄떡 없었습니다.
난 유기농을 나를 위해서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내가 덕을 봤던 것입니다. 식생활이 중요하고 현미는 기적의 쌀입니다. 뇌에 영향소를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미 FTA문제로 사회가 들끓고 있습니다. 한미 FTA를 체결하면 우리농업이 붕괴될 것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미 관계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정부의 정책이 잘못돼 있습니다. 우리는 자재가 없는 나라입니다. 원자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게 가공해 되 파는 것이 돈벌이 입니다.
그러니까 농사 안짓고 품팔이 하는 사람이 많아야 했습니다. 원래 근본 정책이 그랬습니다. 농촌이 잘 살 수 있는 정책이 아니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는 자유무역시대가 왔습니다. 예전에는 외국에 팔 생각도 안하고 살 생각도 안했습니다. 유기농도 그렇습니다. 미국같은 나라에서 유기농이 들어오면 우리나라 가격의 반값에 들어올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게임이 안되는 얘기입니다.
정치인들이 어떻게 나가는지 모르지만 이 문제는 경제적차원 보다는 생명적 차원에서 다뤄야 합니다. 생명적 차원에서 볼 적에 농업은 댐에 물을 가둬두는 것과 같습니다. 물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또 나무의 산소공급과도 같습니다. 쌀 농사는 생명차원에서 다뤄야 합니다. 
우리 풀무원에 경우라면 처음부터 외부에 의지 안하고 자급자족으로 해 왔습니다. 외국에 의지하게 되면 항상 불리한 입장이 됍니다. 지금 우리는 참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정책적인 오류, 구부러진 것을 이제 펼려고 하니 힘든 것입니다.

 

 

-참 힘든 상황입니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암만 싸워도 안됩니다. 농민들이 그렇게 발버둥 치지만 미국은 뜨거운 맘이 없는 나라입니다. 돈이라면 이라크도 공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석유노리고 한 전쟁입니다. 돈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하고 있고, 자유무역협정도 그런 관점에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국책이 외국 원자재를 가져다가 가공해서 품팔아 먹는 정책이고, 그렇기 위해서는 농촌을 죽여야 한다는 정책 때문입니다.
국내적으로도 생명 차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물량차원의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차디찬 냉혈 동물입니다.
우리나라가 이제와서 농촌 문제로 반발하면 무슨 답이 나오겠습니까.
전세계가 생명보다는 경제를 중요시 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을 보니까 일본에서는 민주주의 대신 금을 중심으로한, 그래서 금금주의, 금권주의가 됐다고 합니다.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습니다. 본질적인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들이며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방법이 없습니다.

 

 

-풀무원 창시자로서 나눔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나누는 삶이 항상 옳은 길인데, 그것을 실천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없습니까.
▲풀무원이라는 회사가 너무 커져서 정신이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1963년 농촌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침 김포공항에 찾아온 미군 목사들이 우리나라의 하우스보이를 제게 맡겼습니다.
그러면 큰집도 없으니까 3-4명정만도 맡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데리고 한나절은 성경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농사를 가르쳤습니다. 먹고살수 있어야 도둑질을 안한다. 이거 안하면 실패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물질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젖부터 밥먹는것 까지, 물질에서 시작했습니다. 작년 뉴스가운데 마포에 어느 아파트 13층에서 아이셋과 어머니가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놈 던지고, 두놈 던지고, 마지막 한놈이 “엄마 살려달라”고 했지만 그놈마져 마저 던지고 자기도 죽었습니다. 아마 2천만원 빚때문에 그런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질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물질을 알아야 합니다.
풀무는 쇠를 녹일때 쓰는 도구로 풀무질을 해서 못쓰게된 농기구를 녹여 사용하게 합니다.
정신이 못되먹은 것을 고치는 것, 정신 못된 것을 대통령 시켰더니 4천억이나 해먹었습니다. 백담사도 가고, 정신 못되먹은게 잘못된 것입니다. 정신 못된 것을 풀무질 해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헨렌켈러처럼 장애가 있어도 할 일 다했습니다.
바른 정신과 일해서 자기 먹을 것은 벌어라. 이것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작년 뉴스가운데 또 하나는 대학을 나온 여자가 도둑질을 하다가 들켰습니다. 어떻게 대학까지 나온 여자가 도둑질을 할 수가 있느냐 그랬더니 “저도 몰랐어요, 6일을 굶었다. 자기도 모르게 손이 나가게 됐다” 그러더군요. 물질이란게 생명입니다. 그래서 생명이란 걸 알아야 한는 것입니다.
대신 내 생명인 동시에 남에 생명인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는 바르게 살고, 먹을게 있으면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해라. 이 얘기가 왜 나오는지 아십니까. 이웃사람이 못 먹으면 안됩니다. 옛날 그런말이 있다. 똥이야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은 못 먹는다.
진정한 평안을 얻으려면 나눠야 합니다. 한 그릇이면 반 그릇씩, 배는 좀 고프지만 못먹는 사람을 남겨둬야 하는 고통은 더 심합니다.
양주에 4만평을 지어서 처음 이일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란 말이 나와 내 가족과 이웃, 이웃이 어디까지 가느냐 국민, 더 나아가면 세계로 가야합니다. 63억 인구중에 기아대책본부 이사장을 했습니다. 10억이 굶주리고 있고, 2시간에 한명씩 죽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라는 의미를 썼습니다.
먹을거 쌓아놓지 말고 나눠줘라. 그것을 철저히 실천했습니다. 그것이 국제기아대책기구 시작입니다. 국제승인 받기 전에 내가 시작했습니다. 1천억이 한국에서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눠먹을때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하늘에다 쌓아두면 구멍을 못 뚫는다는 예수는 얘기가 있습니다. 여기서 큰 것 하나를 배웠습니다.
같이 먹는다. 그러면 도둑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일하고 먹어라. 항상 문 열어 놓고, 하루 일하면 하루 먹여주고 했습니다. 일하기 싫어서 가버린 사람은 더 많았습니다. 40년동안 해왔는데 지금도 문을 안 잠금니다.
한번은 젊은애가 왔습니다. 왜 거기에 있지 않고 왔냐고 물었더니 도둑질 해서 쫒겨났다고 그랬습니다.
회원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훔쳐가라지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훔쳐갈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때 내 맘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큰 것 배운것이 예수는 재물을 땅에 쌓으면 도둑이 훔쳐간다 했지만 훔쳐갈 것이 없어지고, 지킬 것이 없어지니 군대가 필요없어집니다.
대학교수 얘기가 석기시대에는 군대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청동기 시대, 군장 시대가 나타나면서 도둑이 생겼습니다. 무엇인가 지켜야 하니까 그래서 군대가 생겼던 것입니다.
서울하고 의정부 사이에 34단인가 한번 불려가서 체플시간에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 가서 군대 없애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얘기로 대학교수 3친구가 징역을 살았습니다. 이제 21세기는 평화의 시대이다. 그러려면 잘 들어라. 잘못 옮기면 내가 징역갈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군대 없앨려면 일용 양식을 나누면 군대는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창고가 없어지면 지킬 것도 없어진다.
평화는 꼭 와야 한다. 군대 없애야 한다. 그러려면 이기주의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영감같은 것이 왔습니다. 사실은 내가 이 길을 살아왔지만 보편적인 얘기는 아닙니다.
공산주의도 이렇게 하다 망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하겠느냐. 이기주의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가족이기주의입니다.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득 든 생각이 이 사람들은 가족이기주의를 뛰어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바로 군대에 온 사람도 있고, 부모가 병들어 있었는데도 군대에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왜 오느냐, 가정을 지킬려면 국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입니다. 가족을 생각해서 부모를 생각해서 군대에 온 것입니다. 이제 알것은 국가 없는 가정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이제는 세계 없는 국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국가를 위해서 세계를 생각하는 것,인류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나누는 것입니다. 안하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들은 군대에 오면서 이미 했지 않았느냐. 이제 안하지 말고 해야 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세계를 위해 몸바친다는 것은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입니다.
풀무질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평화얘기 까지 왔다. 방법은 이것입니다. 많은 평화 운동가들을 알고 있습니다.
가장 정곡을 찌르는 것, 난 그렇게 해 보니까 되더라 하는 그런 풀무질, 자기가 먹고살기위한 풀무질, 나누면서 살수 있는 정신 풀무질, 이제는 평화를 위한 풀무질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사회가 성장과 개발에 몰두해 있습니다. 생태계가 파괴된 지 오래됐습니다. 되 살리자고 노력해도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념적인 양극화가 심각합니다. 이런 현상을 치유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문제 들어가서는 할얘기가 많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이 기운이 없습니다. 이기주의때문에 안되고 있는 것입니다. 전체주의로 가는 것이 개인이기주의입니다. 내가 그 시대를 살아봤습니다. 2차대전이 끝날때 상황은 소련밖에 붉은 색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3, 4년후에 세계 1/3이 붉은 색이었습니다.
함께 잘 살자고하는데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는 무척 가난해 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장경제도 아니고 신자유주의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7년전에 연해주를 가봤습니다. 저녁에 가면 먹을게 없습니다. 원인 제공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왜 이념적으로는 좋은데, 왜 안되느냐. 자본주의의 맨 밑이 이기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때문에 나눠주지 않으니까 저꼴이 된 것입니다. 사회주의도 속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소련의 경제학지를 보면 99%이상이 공동체고 1%가 자영농장이다. 중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99대1입니다. 그러나 생산율은 99%에서 27%가 나옵니다. 남에 것이 되니까 27%밖에 안 나오는 것입니다. 속은 그대로인 것입니다.
1%인 자영농장에서는 감자가 63%가 나옵니다. 이게 세균성과 같은 것입니다. 개인 욕심을 이용해서 이기주의를 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시 시장경제로 돌아가고, 신자유주의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문제를 돌아봐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그얘기 했습니다. 김선일 사건 때, 사흘 후엔가 앞으로 이런 일이 있어도 마찬가지로 하겠다고 노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내가 그전에 얘기 했습니다. 청와대에서 국가원로들을 초청했을때 먼저말하라고 해서 그랬습니다.
대통령 지금 힘들지요, 입후보할때 뭐라고 했소, 미국에게 유일하게 노라고 얘기하겠다고 했지요. 역대 대통령들이 물질제일주의로 망했습니다. 노 대통령만이라도 생명을 제일로 하는 지도자가 되길 바랍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아무도 얘기 안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신문에다가 보도를 하려고 글을 썼습니다. 국익이 아니고 국망이다는 말로. 부해서 잘 살아서 성적으로 문란해지고, 다음에 망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이래가지고 되겠냐, 스와핑도 있고.
그런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와핑 구경하고 돈내는 곳으로 돼 버렸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스와핑입니다.
미국 망하게 돼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소돔 고모라랑 똑같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살아서 뭐하겠습니까. 이것이 모두 부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잘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국익이 아니라 국망, 나라가 망할 징조로 나가고 있습니다.

 

 

-저출산에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농촌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겠습니까.
▲나도 그런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농촌에서 젊은 놈들 다 나가 버리고 60세 노인들만 남아있었습니다.
국가가 정책을 잘해야 합니다. 잘살다 망하는 것입니다. 이건 어디서 개 짓는 소리라는 것 처럼, 나도 막혀서 아무소리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품팔이하는 생산을 버려야한다는 것입니다.
작게 살아도 반드시 망하지 않습니다. 잘살다 망하면 뭐합니까. 우리에게는 못된 성격이 있습니다. 우월감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세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돈을 줘도 일을 못하는 사람, 이는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다음 돈 줘야 일하는 사람, 돈 없어도 일하는 사람, 세번째 그 사람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돈에 의지하다가는 세계 각국이 전부 미국처럼 짐승이 돼 버리고 결국 망하게 됩니다. 빨리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 귀농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패한 귀농이 많습니다.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 주신다면.
내가 귀농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귀농을 꿈꾸듯 해서는 안됩니다. 돌아가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농사가 중요하니까 이것 아니면 안되니까 그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나 먹을거 우선 하고, 남 나눠줄 것 해야지 팔아먹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할 수 없이 도시민들도 국민도 굽히게 해야합니다.
남길려고 하지 말고.
자꾸 근본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시정해야만 합니다. 자급자족하자, 6천평으로 우리 먹을거 한다. 그러고 나니 아무문제 없다. 돈벌이 하면 안되고, 할 것 없으니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살생 문화로 가고 있습니다. 생명문화로 가야합니다. 농업을 살려야 합니다.

 

 

-아드님 얘기좀 하겠습니다. 정치하는 아들(원혜영 의원)을 둔 입장으로서 요즘 정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석달 전에 애들을 다 모아두고 혜영이 보고, 너 국회의원 출발할 때 기억하냐고 물었습니다. 어릴적부터 정치인 기질이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때 교장과 담임이 가정방문을 왔습니다. 학생회장선거당시 출마연설에서 매일 가져오는 퇴비 안가져 오게 하겠다고 했답니다. 그때부터 정치적으로 말하는 기질이 있었습니다.
혜영이는 비교적 자유롭게 했습니다. 고등학교때 낼 모든 학교들이 휴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일협정 반대 문제로 동맹휴업을 했는데, 혜영이가 학생회장을 할 때 경복고만 동맹 휴업을 안했던 것입다.
하루는 집에 와서 물었습니다. 동맹휴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그래서 물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랬더니 다른 학교 다 하는데 우리만 안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이유라면 오히려 안 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남들 다 한다고 따라가기만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한일협정 반대 운동을 하다가 한달 정학처분을 받았습니다.
대학에 가서는 서울대학 학생주임하고 당담교수 둘이 왔었습니다. 그들은 미안한 얘기지만 낼 시위를 하려고 하고 있다며 낼 시위를 하면 수업일수가 모자라게 된다고 이것 좀 막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얘가 경복고 나와서 학생회장을 했는데, 그동안에는 경기고에서 많이 학생회장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시위를 주도해도 경기고 나오면 봐주고, 경복고 나오면 벌을 주고, 뭐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대학생이면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 말한 그런 의미라면 동의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들을 비굴하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비굴한 인간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들이 나를 찾아 온다고 할때 “우리아버지 그런 사람 아니다”라고 혜영이가 말했답니다. 그렇게 된 것이지요.
혜영이가 정치에 나갈때 두 가지, 바르게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두번이나 감옥에 갔다 온것은 바르게 살기 위한 것 아니었냐며 되 물었습니다.
또 하나는 돈이었습니다. 깨끗하게 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혜영이는 또 돈이야 언제든 풀무원에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그랬습니다. 너 국회의원인데 예수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라. 너 정치도 예수가 하는 정치 해야 한다고.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 돈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돈에 대해서는 하나의 철학이 있습니다. 돈에 대해 아이들은 호기심을 갖습니다. 자꾸 감추면 자꾸 호기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감추지 말고, 자유롭게 나눠야 합니다.

 

 

원경선 원장은?
원경선 풀무평화원 원장은 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 출생으로 황해도 수안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줄곧 농사에 종사했다.
풀무원 창시자이며 원혜영 국회의원의 아버지이기도 한 원 원장은 1955년 경기도 부천에 풀무공동체를 설립, 처음으로 나누는 삶을 실천에 옮겼다. 이후 이름이 알려지면서 거창고등학교 재단 이사장,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부회장을 역임하며 전세계를 무대로 나누는 삶을 강조하고, 배고프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활동했다. 풀무원에서 물러난 후 지금은 충청북도 괴산에 위치한 풀무평화원으로 자리를 옮겨 '죽는날까지 일하는 삶'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용환신 시인은?
용환신 시인은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나와 농민들의 삶을 시로 표현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민족문학지에 연자시 '가정방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시집 '다시 시작해 가자', '겨울꽃' 등의 책을 발표했다.
그는 또 1987년 6월 항쟁 이후 수원 민주문화 운동연합 창립을 주도하였으며 경기남부민족문학협의회를 결성, 민족적인 정신을 되살리자는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현재는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과 사람과 땅의 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농촌과 농민을 근간으로 하는 문학을 추구하고 있다.

 

 

/대담= 용환신 시인  /정리=장충식기자 jcs@kgnews.co.kr
/사진=장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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