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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청춘]삶의 끝자락? 세상서 가장 행복한 선생님

유치원 한자 선생님 노업씨

 

“이게 무슨 그림이죠?”

“해요” 아이들의 목소리가 강남유치원 소나무반 교실을 떠나갈 듯 울린다.

“이건 무슨 글자일까요”

방금전 아이들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동그란 눈만 크게 뜨고 한자카드를 주시한다. 한자선생님은 조용해진 교실을 다시 활기차게 만든다.

“이 글자는 날 일(日)예요. 우리 같이 큰소리로 읽어볼까요?”

아이들은 목젖이 보일 정도로 한자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따라한다.

“날 일, 날 일, 날 일”

눈만 뜨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은 또다시 활기찬 모습으로 돌변했다.

“선생님 옷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맞춰보세요”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에 잠긴다. ‘선생님 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는 “선물요”라고 외친다. 아이의 어이없는 대답에 선생님의 입가에는 웃음이 꽃핀다.

“아니예요. 자! 여러분들에게 보여줄께요. 짜잔~”

한자선생님의 품에서 사각형 모양의 딱딱한 종이 한장이 나온다. 한자카드였다. 한자선생님은 아이들과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이게 무슨 그림이죠” “개울요”

“맞았어요, 개울이예요”

한자선생님은 칠판에 개울을 그린다. “개울의 그림과 모양이 바로 한자로는 내 천(川)이예요”

아이들은 한자선생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가 됐다는 신호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공부하고 다음에 또 만나요”

 

 

아이들은 한자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안녕히 가라며 꾸뻑 인사한다.

이처럼 유치원에서 한자선생님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노(老)교사는 바로 노업(68)씨다.

노 씨는 지난 1960년 전북 정읍에서 처음으로 교편을 잡았다.

6년간 시골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던 노 씨는 65년 12월 서울로 교직자리를 옮겼다. 노 씨는 제자들이 성장하는 모습에 만족하며 40년 교편생활을 접었다.

지난 2000년 정년퇴임후 노 씨는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후배 교장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글짓기를 가르쳐 달라는 내용이었다. 노 씨는 사절했다. 노 씨는 글짓기를 가르친다는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님 그럼 한자를 가르쳐주세요”

노 씨는 “그건 내가 할 수 있을 것같아, 그렇게 할께”라고 대답한 후 초등학교 방과후 학습 한자선생님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 또한 노 씨에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정말 무슨 일을 하면 보람될까?’ 노 씨는 고민했다. ‘우선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기 위해 이사를 먼저해야겠다. 그럼 어디가 좋을까’

‘그렇지! 수원이 좋겠다. 효의 고장이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보전돼 있으니까’

노씨는 지난 2004년 11월 수원으로 이사를 왔다. 수원으로 이사한 후 노씨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세상과 이별할 수 있는 위기였다. 노 씨는 소화가 안돼 병원을 찾았다. 노 씨는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자는 권유를 받았다. 노 씨는 덤덤하게 정밀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렸다. 노 씨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내가 혹시 암에 걸린게 아닌가’하는 우려가 노 씨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의사는 ‘위암’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천청벽력이었다. 다행히 수술하면 완치될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 씨는 작년 위암수술을 했다. 노 씨는 쾌유해 퇴원 후 정기검진을 받으며 1년을 보냈다. 또다시 수술했다.

 

 

지난 2월이었다. 노 씨는 약한 육체지만 조금이나마 보람된 일을 하며 여생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 씨는 서호노인복지관에서 아내와 관절염에 좋다는 아쿠아로빅을 배웠다. 문득 노 씨의 머리속엔 무의미로 가득차 있었다.

노 씨는 복지관 직원에게 일을 할 수 없냐고 물었다. 노 씨는 며칠이 지나 기쁜소식을 접했다. 복지관에서 일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한자선생님.

노 씨는 일할 수 있다는 소리에 너무 기뻤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복지관은 “어떤 일인데”라며 묻는 노 씨에게 “할아버지 예전에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고, 한자 가르쳐보셨다고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복지관은 “그래서 저희가 강사파견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한자선생님으로 활동해주셨으면 해서요”라고 말했다.

“할 수 있어”

노 씨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1년동안 열심히 어린이들 가르치는 교수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난 19일 강남유치원을 찾았다. 첫수업이었다.

“어린아이들과 처음해서 그런지 어색하네요. 그래도 너무 기쁩니다. 내가 손자같은 아이들과 함께 애기할 수 있고,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다는게”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마음에 병마가 물러간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기쁜 마음으로 시조를 지을 생각입니다.”

노씨는 ‘시조생활’지 신인문학상을 받고 등단한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노 씨는 병마와 싸우며 유치원에서 한자선생님으로 제2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다.

노 씨의 여생계획은 이렇다.

지난 15일 개인문집 1호를 펴냈다. 이에 따라 남은 생애동안 2회에 걸쳐 개인문집을 더 펴내고 싶다는 게 여생계획이다.

밖에서는 한자선생님으로, 집에서는 시조시인으로 집필 활동하는 노 씨의 인생2막에 햇살이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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