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 경기지사 이산가족 온라인 상봉장 가보니…
27일 수원시 권선구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 화상상봉장에서 최지호(72)씨는 남녘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셋째 조카 광순(42)씨에게 연신 “내가 모셔야 하는데,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고 흐느꼈다.
이날 화상상봉장에 모인 가족 가운데 최고령자인 최병옥(102) 할아버지는 북녘에 두고 온 둘째 아들 지호, 딸 정은(62), 정녀(60)씨를 보기위해 지팡이를 짚고 손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상봉장에 도착했다.
“통일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얘 이름이 최통일이야.”
1·4후퇴 당시 큰 아들만 데리고 내려온 최 할아버지는 큰 손자 최통일(51)씨를 가리키며 “너희들을 보지도 못하고 내려와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지호씨는 세 남매가 어떻게 살았왔는지 몹시 궁금해 하는 ‘아버님’께 그간의 우여곡절을 들려줬다.
14살이란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큰 형을 잃고 폭탄 파편에 맞아 죽을뻔 했던 일이며 먹고 살게 없어 굶주렸던 일 등 둘째 아들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최 할아버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더니 상봉장 안에 침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무거웠던 분위기는 서로에 대한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수그러들기 시작해 막내딸 정녀씨가 “아버지, 나 날때 거꾸로 나서 오래 못 살거라고 했다던데, 나 벌써 60살이예요”라고 말하자 모두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어 세 남매는 북녘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버님 앞에서 세 자식이 노래좀 부르겠시요”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최 할아버지고 자식들의 노래에 대한 보답으로 손자들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비록 남과 북의 박수소리는 엇박자로 울렸지만, 통일이 돼 가족의 손을 직접 맞잡고픈 그들의 염원은 한 박자가 됐다.
한동안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둘째 손자인 광춘(48)씨가 자신의 친할머니인 김정복 할머니 얘기를 꺼내면서 다시 울음바다가 됐다.
지호씨는 “전쟁이 끝난 뒤 허리가 좋지 않아 물동이 하나도 못 드셨던 분이 세 남매를 먹이기 위해 무거운 짐을 들고 시장에 다니시다가 1년 넘게 병원신세를 지다가 돌아가셨다”며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흐느꼈다.
최옹은 “화상으로라도 이렇게 봐서 너무 기쁘다”며 “난 건강하니 걱정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라”며 작은 아들을 위로했다.
이날 화상 상봉은 서로의 주소를 확인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상봉장에서 나온 최옹은 “화면으로라도 잃어버린 아들을 봐서 힘이 솟는다”며 “이번 화상 상봉을 계기로 하루 빨리 통일 돼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 상봉장에서는 최병옥 할아버지 가족을 비롯해 남쪽 네 가족 20명과 북쪽 네 가족 열명이 각각 화상으로 2시간씩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