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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20> - 깨달음의 길

‘인도의 마지막 조사’ 보리 달마 - 소설가 이 재 운

 

1조 마하 가섭으로부터 스물여덟 번째로 부처님의 법맥을 이어받은 인도 스님이다.

달마는 그의 스승이던 반야다라 존자의 열반을 마지막으로 인도 내의 교화를 제자들에게 맡기고 중국으로 건너갈 결심을 하였다. 불교를 세계적으로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는 중국으로 가서 포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이미 중국에도 불교가 전파되어 나름대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경전 위주로 보급된 불교가 마음을 닦고 깨달음을 이루는 데는 미흡하다고 생각한 달마는 선불교를 직접 보급하기 위해 교화의 큰 바다를 건넌 것이다.

당시 중국의 불교는 대단한 기세로 확산되어가고 있었는데 모두가 교종의 교화에 의한 것으로 선종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었다. 이러한 때에 달마 존자가 선종을 퍼뜨리기 위하여 중국으로 건너가려고 결심한 것은 지극히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달마는 520년에 처음으로 교화의 길을 중국으로 돌리고 험난하고 먼 길을 떠났다.

중국으로 가는 길에 금릉이란 곳에서 당시 양나라의 왕이던 무제를 만나게 되었다. 무제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많은 절과 탑을 세우고 갖가지 공양을 해오던 터였으므로 아주 당당한 자세로 달마를 대하고 다음의 문답을 나누었다.

“존자께서는 무얼 가지고 먼 길을 오셨습니까?”

“나는 아무 것도 가져온 게 없습니다.”

신기한 법문을 잔뜩 기대하고 있던 무제에게 내려진 대답은 당시의 교종 풍토로 보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말이었다. ‘금강경’이나 ‘법화경’, ‘화엄경’ 같은 비밀한 경전을 지참하고 왔어야지 맨몸으로 올 리가 없다고 믿고 있던 무제가 하도 어이가 없어 하소연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수없이 많은 절을 짓고 탑을 쌓았는데 어떠한 공덕이 있을까요?”

“공덕은 무슨, 전혀 없습니다.”

“예?”

“맑은 지혜는 그 밝음으로 두루 비칠 뿐 하고자 해서 하는 일로는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 맑은 지혜입니까?”

“그런 것은 원래 없습니다.”

“나하고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대체 누구시오?”

“모르겠습니다.”

무제는 이 문답에서 달마의 뜻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화만 내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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