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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41>-깨달음의 길

‘부처의 법맥을 마지막 받은’혜능-소설가 이재운

 

혜능이 후원으로 나가 방아를 찧고 장작패기를 꼬박 여덟달을 계속했다. 지혜로운 자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그때까지 혜능은 단 한 번도 홍인 앞에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여덟 달 동안 묵묵히 일만 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기다리는 혜능의 구도 열기도 대단했고, 제자를 단련시키기 위한 스승의 인내도 대단했다. 마루빠가 밀라레빠에게 몇 차례에 걸쳐 탑을 쌓게 하고 무너뜨리기를 거듭한 끝에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나 달마가 가르침을 청하는 제자를 밤새 눈 속에 서있도록 버려둔 것처럼 홍인도 혜능을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찧는 일만 시켰다.

혜능이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은 것을 놓고 홍인이 부처님의 의발에 눈먼 제자들로부터 혜능을 보호하기 위해 그랬다는 주장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는 하나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도 혜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혜능은 그동안 북방 오랑캐족으로서 어린 시절을 몹시 거칠게 살아왔다. 혜능 자신이 쓴 ‘육조단경’이라는 자서전에 너무 의지하다 보니 이런 점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입문 당시의 혜능은 비록 그의 근기가 대단하기는 했을지언정 그동안 살아오면서 새롭게 지은 업보도 많았을 것이다

혜능이 살던 지방에서 쓰던 말과 절에서 쓰는 말도 사뭇 다른 점이 많았을 것이고, 의식에도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혜능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그런 혜능에게 선이라는 지고한 수도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기초 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다. 방아를 찧으면서 스님들의 생활도 익히고 절의 관습이나 문화도 배우고 글도 배우면서 근기를 좀더 다듬으라는 뜻이다. 아울러 집에 두고온 어머니 생각도 떨구고 세간에서 지었던 인연을 방아찧듯 찧어서 말끔이 없애버리라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홍인이 후원을 둘러보러 나왔다가 혜능의 곁을 지나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내 뜻을 아는가?”

“예. 그래서 저도 스님의 방문 앞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홍인의 이 말 한 마디가 어쩌면 혜능에게 준 가르침의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처음 홍인을 친견한 이래 여덟달만에야 내려진 이 설법은 혜능의 정진에 더욱 불을 붙였으며 결코 외롭게 하지 않았다. 또한 이로써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뚜렷이 서게 된 셈이었다. 더이상의 군소리도 없는 너무도 짧은 설법이었다. 의발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 수많은 제자들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교수법이라고나 할까.

혜능의 나이 서른세 살이 되던 해인 671년의 어느 날, 홍인은 대중을 불러놓고 전법의 시기가 왔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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