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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67>-깨달음의 길

법당 木佛을 땔감으로 쓴 천연-소설가 이재운

 

천연이 혜림사(慧林寺)라는 절에 머물 때의 일이다. 엄동설한의 강추위를 견디다 못한 천연은 법당으로 가서 목불을 들어다가 도끼로 잘게 쪼개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남들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덜덜거리고 있는 동안 천연은 웃옷을 벗어놓고 땀을 뻘뻘 흘렸다. 이상하게 여긴 옆방의 스님들이 무슨 재주로 방을 따뜻하게 했느냐고 물었다. 폭설이 계속되어 땔감이라곤 아무 것도 없던 때였다.

“법당에 있는 목불(木佛)을 갖다 땠습니다.”

깜짝 놀란 스님들이 큰일이 났다면서 법석을 떨었다. 그야말로 수백 생을 다 바쳐도 그 죄는 씻을 수 없는 대죄라고 입을 모았다. 지옥엘 가더라도 가장 고통스런 무간지옥에 가야 마땅하다고도 했다. 경내가 발칵 뒤집혀 이 몰상식한 천연을 성토하고 있을 때 천연은 정말 천연스럽게 말했다.

“나는 부처님을 화장해서 사리를 얻어볼까 했습니다.”

“아니 목불에서 무슨 사리가 나온다고 그런 미친 짓을 했단 말이오? 그건 나무 토막이란 말이오!”

“나무토막? 그렇다면 왜 나를 꾸짖는가!”

천연은 행여 부처님을 우상화할까 경계했던 것이다. 사리도 나오지 않는 부처님이라면 깎아놓은 조각에 불과한 것이고, 조각이라면 나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상징은 어디까지나 상징으로 받아야지 그 이상까지 빠지는 것은 선승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개 한 종교가 생겨나 발전하고 나면 의례 의식화되기 시작한다. 의식이 더욱 복잡해져 무슨 법회라도 한번 열라치면 삼귀의례부터 시작하여 수십 분이 지나야 설법이 시작된다. 오래된 종교일수록 의식은 더 복잡해진다. 의식없이 설법을 막바로 하려면 신도들도 심심해한다. 그러다보니 의상, 불구같은 게 자꾸 발전한다. 무슨 종교이고 의식이 발달하면 삿된 길로 빠지기 쉽다.

천연이 어느 날 시자를 불렀다.

“목욕물 좀 데워다오. 내가 갈 데가 있어.”

시자가 물을 데우자 천연은 목욕을 깨끗이 하고 나서 새 옷을 갈아입었다.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신을 신었다. 팔십 평생을 이용한 육신에 대한 마지막 예우로 깨끗이 목욕하고 새 옷도 입힌 것이다.

그때까지도 천연의 임종을 눈치 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다는 것의 의미를 천연의 행장으로 생각하여 오판한 것이다. 그러나 천연은 분명 오늘 간다고 말했다.

천연은 신발을 신고 발을 내딛는 순간 입적에 들었다. 그제서야 대중은 간다는 말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목욕하고 새 옷, 새 신을 신고 가야하는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향수는 8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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