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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74>-깨달음의 길

창조와 발견…시간 유무의 차이-소설가 이재운

그 후 약산의 선기는 석두와 문답을 나누는 사이 날로 예리해져 끝내는 석두의 종지(宗旨)를 뚫어버렸다. 종지는 석두의 깨달음을 가리킨다.

석두의 법을 이은 약산은 홀로 일가를 이루어 제자들을 지도하며 보림과 교화를 폈다.

깨달음의 내용을 보충한다.

제자와의 문답에 이런 것이 있다.

어떤 스님이 약산에게 질문했다.

“달마 조사가 중국에 오기도 전에 조사의 뜻은 이미 중국에 충만해 있었다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이지.”

“그런데 구태여 뭣하러 오셨을까요?”

“그저 있기 때문에 오셨을 뿐이야.”

이 문답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좀더 분명하게 하자면 이런 예를 들 수 있다.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고 하자. 그래서 조각가가 그것을 베어다가 깎고 다듬어 훌륭한 불상을 빚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불상은 창조냐 아니면 원래의 나무 속에 있던 불상을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냐는 문제점에 직면하게 된다. 후자의 경우 깎아낸 나무조각들을 다시 붙이면 물론 원형을 회복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창조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모든 예술 작품이 창조냐 아니면 발견이냐는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말하자면 약산이 받은 질문은 모든 것은 발견이라는 전제로 제기된 질문이다. 즉 나무 속에 이미 들어있는 불상을 꼭 집어내서 눈 앞에 보여야만 되느냐는 질문으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이다.

창조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간의 현상을 현실에 나타나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되나 발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간을 인정치 않는 셈이 된다.

창조의 관점이 현실적이라면 발견의 관점은 비현실적이다. 시간을 흐르게 두어 창조의 현상이 나타난다면 그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한다면 창조라는 개념은 분해되어 발견이란 개념으로 전환될 것이다.

이와같은 논리는 자칫 모든 변화에 대한 인식이나 예술 작품의 창조를 발견의 범주로 집약시켜 어떤 결정론이나 운명론으로까지 비약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절대 진리를 구하는 입장에서 발견의 개념이 갖는 몇 가지 비현실적인 부분이 오히려 약산의 문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논리의 현실적 한계야말로 불교 이전에 극복되어야 할 근본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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