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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90>-열반의 길

죽음은 휴식하는 것… 슬퍼하긴-소설가 이재운

동산은 임종을 앞두고 대중에게 최후 문답을 허락했다. 먼저 동산의 질문이 내려졌다.

“나는 부질없는 이름을 세상에 남기게 되었다. 누가 그 흔적을 지워주겠느냐? 그대로는 부끄러워 세상을 뜰 수가 없다.”

대중이 모두 침묵만 하고 있을 때 한 사미가 일어나 앞으로 걸어나왔다.

“화상의 법호를 말씀해 주시면 제가 깨끗이 없애드리지요.”

“아이고 고맙다. 이제 부질없는 이름이 없어졌다.”

이 문답에 대한 고승들의 촌평이 있다. 석상(石霜)은 ‘아무도 그를 긍정할 사람이 없다.’고 했고, 운거(雲居)는 ‘부질없는 이름이 있었다면 내 스승이 아니다.’고 했다. 조산(曹山)은 ‘옛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그를 설명하지 못했다.’고 했고, 소산(疎山)은 ‘용이 물에서 뛰어날 기틀이 있건만 아무도 짐작하는 이가 없다.’고 했다.

어떤 스님이 동산에게 물었다.

“화상께서 건강을 잃으셨다는데 병을 앓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요?”

“있지.”

“앓지 않는 사람이 화상의 병을 간호해줍니까?”

“내가 그를 간호할 수는 있다.”

“화상께서는 어떻게 그를 간호하시겠습니까?”

“내가 간호할 때는 병이 보이지 않는다.”

동산이 재차 법문을 내렸다.

“이 껍데기를 벗고는 어디서 다시 만날꼬?”

그러나 대중은 긴 침묵만 지켰다.

서기 869년, 즉 당나라 함통 10년 3월에 문인들을 시켜 머리를 깎고 옷을 갈아입고 종을 치게 한 뒤에 태연히 앉아서 세상을 떴다.

그러나 동산의 임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울고불고 설치는 제자들이 영 거슬렸던지 차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다시 깨어나 벌떡 일어난 동산은 제자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사문이란 마음이 물건에 집착되지 않아야 참된 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삶은 힘들고, 죽음은 휴식하는 것인데 슬픔과 무슨 관계가 있으랴!”

그리고는 주사승을 시켜 한바탕 우치재(愚痴齋)를 지내어 대중들의 어리석음을 꾸짖게 했다. 그러나 대중들이 여전히 사모의 정을 그치지 않자 동산은 일주일을 더 기다렸다.

공양 때가 되자 동산도 상석에 앉아서 음식을 받아먹었다.

“중의 집안에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대체로 떠날 때가 되면 이처럼 수선을 떠는구나.”

8일째 되는 날, 동산은 목욕을 마치고 나서 할 수 없이 입적에 들었다. 향수는 63세, 법랍은 4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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