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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94>-깨달음의 길

평생 방울만 흔들다 간 ‘보화’-소설가 이재운

반산 보적(盤山寶積)을 섬기면서 법을 받들다가 나중에 그 법통을 전해 받았다.

보적의 임종기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보적이 임종에 앞서 최후 설법을 시작했다.

“누가 내 얼굴을 그릴 수 없는가?”

학인들이 다투어 보적의 초상화를 그려다 바쳤다. 학인은 대중, 문인과 같은 용어로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학인들은 보적의 눈, 코, 입 또 흑버섯이나 사마귀 점까지도 자세하게 그려넣었을 것이다.

숙제 검사를 한 보적은 학인들을 하나하나 불러다놓고 회초리를 들이댔다. 모두들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떨떠름한 채 웅성거리고 있을 때 바로 보화가 나타났다. 이때 보화는 보적 문하에서 학인으로 있을 때였다.

“제가 큰 스님의 초상화를 그려보겠습니다.”

“그래? 한번 그려보게나. 잘못 하면 회초리가 기다리고 있네.”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 그릴 테니 보십시오.”

말을 마친 보화는 그 자리에서 물구나무를 섰다.

“자, 그립니다.”

보화는 손으로 땅을 짚고 거꾸로 선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보적은 들고 있던 회초리를 내려놓으며 학인들을 향하여 말했다.

“저 학인이 장차 미친 놈처럼 중생을 제도할 것이다.”

보적은 그렇게 말하면서 흡족한 미소를 띤 채 임종했다. 우주의 유일 절대하고 광대 무변한 생명의 모습을 자유롭게 그려준 보화 덕에 편안히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보화가 중생들을 미친 듯이 제도하러 다니게 되었다. 미친 듯이 제도한다는 것은 앞서 초상화를 그릴 때 표현 양식이 아무리 자유롭고 비상식적이라도 물구나무까지 선 것을 가리켰던 것인데 바로 그 점이 지금의 보화를 보는 단서가 되었다.

반산이 입적한 뒤에는 북쪽 지방에서 교화를 했다. 그는 성이나 시장, 또는 무덤 사이를 다니면서 방울을 흔들어댔다. 그것이 신기해서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그는, “명두래야타 암두래야타(明頭來也打 暗頭來也打)”하고 말할 뿐이었다. 밝은 것이 와도 때리고 어두운 것이 와도 때린다는 말이니 곧 밝음과 어두움의 두 극단을 다 때려부수라는 뜻이다. 그것은 악업도 나쁘지만 선이라는 것도 곧 업이기 때문에 악업이든 선업이든 모두 짓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선악(善惡)이 있어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라는 건 다른 종교, 다른 사상에 있는 말이지 불교에서만은 선도 악도 다 멀리하라고 한다. 선이든 악이든 붙잡고 보면 그게 그거라는 말이다.

선을 잡는 순간 뒷면에는 이미 악이 달라붙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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