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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02>-깨달음의 길

침묵속에 때마침 울린 경판-소설가 이재운

 

그러자 그 스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이 일을 들어 나중에 어떤 스님이 그 뜻을 물어보았다.

“큰 스님들이 이따금 동그라미를 그려보이거나 卍자를 써보이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다 부질없는 일이야. 깨달았다고 없는 것을 새로 얻은 것도 아니고 깨닫지 못했다고 해서 있던 것을 잃어버린 건 아니라는 말일세. 누가 자네를 가리키며 어느 것이 너의 불성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나? 대답을 하는 게 불성일까? 대답을 하지 않는 게 불성일까? 아니면 둘 다 불성일까? 또 그것도 아니면 둘 다 불성이 아닐까?”

혜홍(慧弘)이 앙산의 이러한 설명을 들어 참고로 자신의 선문답 하나를 소개했다. 혜홍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말을 놓고 따지지도 말고 침묵하지도 말라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그 스님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마침 경판이 울렸다. 경판은 절에서 쓰는 넓적한 평종이다.

그 종소리가 들려오자 혜홍은 몹시 난처해하는 그 스님에게 말했다.

“대답해줘서 고맙네.”

산은 이런 임종게를 남겼다.

내 나이 일흔일곱이 되도록

늙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네.

성품따라 오르락내리락하니

두 손을 마주잡고 두 무릎을 굽혔네.

앙산은 무릎을 두 손으로 껴안은 채 입적하였다.

오도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경통이 앙산을 친견하러 찾아갔는데 앙산은 아무런 말도 없이 굳게 입을 다문 채 앉아 있기만 했다. 손가락 쳐드는 게 전문인 구지처럼 손가락을 쳐들거나, 주장자로 매질을 전문으로 하는 덕산처럼 폭력을 쓰든지 해야 할 텐데 앙산의 칼에 힘이 빠진 것이다.

힘이 빠졌다는 것은 경통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일 뿐이다.

그런 경통이 나름대로 무언의 의미를 분석하고 크게 소리질렀다.

“아하, 그런 것이로구나! 인도의 스물여섯 조사님네도 그렇고 중국의 여섯 조사님네도 그저 그렇구나! 우리 화상께서도 그렇고 나 또한 그렇구나!”

경통은 또 벌떡 일어나 앙산을 한바퀴 빙 돈 다음 한쪽 발을 들고 앙산 앞에 서 보였다. 그러자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앙산 화상이 등나무 주장자로 경통을 갈겨댔다.

앙산이 경통을 주장자로 때렸다는 것은 깨달음을 인가하겠다는 것인가, 인가를 하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이 의문은 선가(禪家)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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