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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09>-깨달음의 길

“향을 들었으나 깨닫지 못했습니다”-소설가-이재운

 

청활은 도반인 충후(沖煦)와 함께 소계산으로 계여(契如)를 찾아갔다. 산길을 더듬어 중턱에 이르렀을 때 밤을 줍느라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는 한 노승을 만났다. 여기서부터 문답이 시작된다.

먼저 청활이 노승에게 물었다.

“도자(道者)여! 혹시 계여 암주(契如庵主) 화상이 계시는 곳을 아시오?” 도자는 노승을 가리켜 부른 말이다. 도 닦는 사람 정도의 존칭어다. 그러자 노승은 밤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내려놓고 길손들을 돌아보았다.

“어디서 오셨는가요?” 선사들은 대개 이 말 속에 화살을 숨긴다.

“산 밑에서 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올라오셨습니까?”

“여기가 어딘데요?” 청활도 방패를 썼다.

노승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차렸다. “가서 차 한 잔 나눕시다.”

청활은 그제서야 그 노승이 계여라는 걸 알아차리고 암자까지 따라가 담론을 나누었다. 단풍이 짙게 물든 숲 속에 앉아 탐스러운 산과일을 들어가며 도화 법담(道話法談)을 나누는 세 스님은 날이 가는 줄 모르고 담론에 심취했다. 밤이 되면 이리나 호랑이같은 산짐승들이 찾아와 계여의 주위로 모여들곤 했다. 마침내 오랜 이야기 끝에 계여의 송곳이 더욱 날카롭다는 것을 느낀 청활은 정식으로 제자의 예를 올려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밤이 깊어 이야기를 들을수록 청활의 감격은 부풀어 갔고 마침내 계여에게 게송을 지어바쳤다.

움직이면서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것이 있네

누가 가고 오는 이 소식을 들어 알리

한 술 밥에 배가 부르지 않고 수많은 황금도 믿을 것 못되네.

도가 아니면 굴복시키기 어렵고 빈 주먹으로 싸우지 마세

용이 읊조리고 구름이 이는 곳에 한가한 휘파람만 몇 마디 들리네.

청활과 충후는 대장산에 암자를 새로 지어 계여를 모셔다가 가르침을 청하였다. 스승과 제자는 스스로 양식을 마련하여 밥을 지어먹고 빨래하면서 틈틈이 부처의 그림자를 함께 뒤졌다. 그들은 단지 사람 셋이라는 것뿐 따로 책도 없었다.

그들이 서로 토론하여 깨달음을 닦아나갔을 뿐이었다.

물론 서로서로 큰 책이 되고 큰 죽비가 되어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채찍질하며 지냈다. 청활은 수십 년을 계여의 품에서 지내다가 수룡(水龍)을 찾아가 친견을 청했다.

“청활 대사는 어디서 어떤 스님을 보고 왔나요? 깨달은 바는 있나요?”

“저는 일찍이 계여 대사를 뵙고 믿을 자리를 얻어냈습니다.”

“그렇다면 대중 앞에서 깨달은 바를 보이시오! 내가 시험해 보겠습니다!” 곧 대중이 몰려들고 법석이 차려졌다. 향이 피워지고 오도담을 들으려는 대중들의 침묵이 법당을 휘감았다.

청활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법상에 올라앉았다. 그리고 향로에 꽂혀진 향 한 개를 뽑아들었다.

“향을 들었으나 아직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그 한 마디였다.

수룡이 일어나 껄껄 웃으면서 인가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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