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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13>-깨달음의 길

할당, 원숭이에게 유언장을-소설가 이재운

 

1176년 1월 15일은 할당이 입적하기로 한 예정일이었다.

그날이 되자 절은 인근의 주민과 멀리서 구경 온 사람으로 붐볐다.

깨달은 스님의 열반상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할당은 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재도 손수 드렸다.

재를 마치자 군중들은 모두 방장으로 몰려가 할당의 임종을 기다렸다.

어떤 이는 흥분으로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최후 설법이라는 보기 드문 진짜 설법을 초조하게 기대하기도 했을 것이다. 또 어떤 제자는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꼭 물어야겠다고 비수같은 질문을 준비하고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최후 설법을 할 것이라는 할당 본인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궁금해진 몇 사람이 할당의 방문을 살며시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방 안에 마땅히 있어야 할 할당은 보이지 않고 다만 그가 기르던 검은 원숭이가 두루마리 편지 한 통을 들고 서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할당은 탑 위에서 이미 입적을 마친 뒤였다.

원숭이가 들고 있던 두루마리엔 할당의 사세송이 적혀 있었다.

사세송이란 세상을 떠나면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적은 편지다. 그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향수는 74세였다.

통일신라의 신문왕 시절, 경주에서 태어난 그는 불국사에서 오계를 받고 법명도 얻었다.

그는 스무 살이 되기까지 5년 동안 주로 경전을 수학하였고 그 뒤부터는 공부 방법을 참선 위주로 전환하였다.

부설이 처음으로 참선에 뜻을 두고 열심히 정진을 하던 중에 영희(靈熙)와 영조(靈照)라는 두 도반을 만나게 되었다.

얼마 후에 그들 셋은 좀더 절실한 환경에서 수도하기로 뜻을 모으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법왕봉 아래에 조그마한 암자를 엮어 묘적암이라고 이름했다.

배가 고프면 송화나 산과일을 따먹고 목이 마르면 샘물을 떠마셨다.

나무 그늘이나 암반에 앉아 좌선을 했고 밤이면 관솔불을 밝혀 놓고 법담을 나누거나 불변하는 참 이치를 탐구했다.

그들은 산중 수도를 계속하는 동안 무언가 무너뜨릴 수 없는 장애가 그들 앞에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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