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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19>-깨달음의 길

나고 죽는것이 없는줄 알아야 - 소설가 이재운

마지막으로 부설이 병을 치자 병만 깨지고 물은 병꼭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조계사 대웅전의 왼쪽 벽에 이에 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부설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환신(幻身)이 나고 죽는 것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은 병이 부서지는 것과 같고 진성(眞性)이 언제나 있는 것은 물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은 것이네. 그런데 두 스님이 병을 쳐서 병도 깨지고 물도 쏟아진 것은 두루 명산을 찾고 선지식을 친견하였으나 나고 죽는 것을 거두어 진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법성(法性)을 지키지 못한 증거이네. 업으로부터의 자유와 부자유를 시험하고자 할진대 평소 마음의 평등과 불평등으로써 알 수가 있는 것이네. 그러기에 공부의 깊이를 알려고 한다면 나고 죽는 것이 없는 줄 아는 것과(知無生死) 나고 죽는 것이 없는 것을 증득하는 것과(證無生死), 나고 죽는 것을 자유로이 활용하는 것(用無生死)의 세 가지가 있지 않는가? 병과 물이 모두 떨어지는 것은 지무생사와 증무생사에 그친 것이며 병은 떨어지고 물은 매달려 있는 것은 용무생사라네.”

그리고 부설은 게송을 읊었다.

눈으로 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으니

분별이 없고 귀로 들어도 들리는 것이 없으니 시비가 끊어졌네.

분별과 시비를 모두 내던지고 다만 마음 속의 부처를 찾아내어

스스로 귀의하였네.

이와 함께 부설은 사부시(四浮詩)를 읊었다.

‘처자와 권속들이 대나무숲처럼 널려 있고 금은과 옥백이 산 같

이 쌓였어도 죽음에 다다라서 내 한 몸만 홀로 가니 이것도 생각

하면 허망할사 뜬 일일세.’

(妻子眷屬森如竹 金銀玉帛積似邱 臨終獨自孤魂逝 思量也是虛浮浮)

‘나날이 가로세로 티끌세상 달리면서 벼슬이 조금 높자 머리털

은 희어지네. 명부(冥府)의 염라왕이 금어관대(金魚冠帶) 두려워

하랴.이것도 생각하니 허망할사 뜬 일일세.’

(朝朝役役紅塵路 爵位高已白頭 閻王不金魚 思量也是虛浮浮)

비단결에 수를 놓듯 미묘한 무애변재(無碍辯才)

천편 시로 만호후를 비웃어도 다생에 너다 나다 잘난 자랑 길러

올 뿐 이것도 생각하니 허망할사 뜬 일일세.

(錦心繡口風雷舌 千首詩輕萬戶候 增長多生人我本 思量也是虛浮浮)

입으로 설법하되 구름 덮듯 비 내리듯 하늘꽃 떨어지고 돌사람

이 끄덕여도 번뇌를 못 끊으면 생사고(生死苦)를 면치 못하리.

이것도 생각하면 허망할사 뜬 일일세.

(假使說法如雲雨 感得天花石點頭 乾慧未能免生死 思量也是虛浮浮)

부설은 생사의 깊이를 체험하고 그것을 실천할 경지에 이르렀다. 환상을 모조리 타파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인지, 깨달음의 단계로 볼 때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부설은 이미 그의 생각을 죽음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두 도반이 지켜보는 데서 그의 깨달음과 임종이 동시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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