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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27>-깨달음의 길

태고, 무(無) 공안 진리에 빠져 - 소설가 이재운

 

그가 남긴 선문염송(禪門拈頌)은 한국 선사와 선시사에 길이 빛나는 명저다. 이 책은 그때까지 전하던 불교 선사(禪史)에 관한 자료를 집대성하여 추리고 추린 끝에 천 가지가 넘는 중요한 선문답을 뽑아낸 것이다.

이 책이 등장함으로써 선의 지표가 설정되고 사이비 선을 몰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화두라는 개념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여 이후 선문염송에 나오는 화두 하나쯤은 평생 과제로 잡고 있는 수좌들이 많아졌다.

열세 살에 동진 출가한 태고는 스물여섯 살에 경학(經學)의 최고봉인 화엄선(華嚴選)에 합격했다. 그 후엔 선학에 뜻을 두고 단식, 기도, 참선 등 여러 방법으로 진리의 문을 두드렸다.

태고가 결정적으로 매달린 것은 조주의 무(無) 공안이었다.

결국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읊어냈다.

조주가 깨달음의 길을 막고 앉아

시퍼런 칼을 들어 눈앞에 세우니

빈 틈 하나 보이지 않네

여우와 토끼가 종적을 감추더니

이윽고 사자가 나타나네

굳게 닫힌 문을 열어젖히니

시원한 바람이 태고암을 스친다

태고는 무(無) 공안을 깨뜨린 데 대하여 훗날 다음과 같은 법문을 남겼다.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개한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조주 스님은 ‘없다’고 대답하셨다.

그 ‘없다’는 말은 마치 한 알의 환단(還丹:쇠에 대면 쇠는 금세 황금으로 변한다는, 신선 사이에 비밀히 전해진다는 약)과 같아서 ‘없다’는 말은 삼세(三世) 부처님의 면목을 능히 뒤집어낸다. 여러분은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만일 믿을 수 없겠거든 그 큰 의심 밑에서 마치 만 길의 벼랑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몸과 마음을 모두 놓아버리고, 또 아주 죽은 듯이 아무 헤아림도 생각도 없어 ‘어찌할까?’ 하는 생각을 아주 버리고 다만 ‘없다’라는 화두만 들되 하루종일 4위의 안에서 다만 화두를 목숨으로 삼아야 한다.

언제나 맑은 정신을 가지고 때때로 스스로 단속하며 화두를 들어 눈앞에 잡아두되, 마치 암탉이 알을 품었을 때 따스한 기운을 계속하게 하는 것과 같고, 고양이가 쥐를 노릴 때 몸과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잠깐이라도 눈을 떼지 않는 것과 같이 몸과 마음이 있고 없음을 깨닫지 못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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