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인민들은 지난 8월 중순, 큰물 피해로 아직까지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남쪽도 태풍 ‘나리’이후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도처에서 태풍 피해를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이례적으로 유럽 기자들을 초청, 내륙 깊은 곳으로 들어가 피해 상황을 취재하도록 허용했다. 개방의 신호가 아닌가 하는 해석이 나오기 마련이다.
독일의 보수신문 ‘디 벨트’ 인터넷 판은 지난 9월 초부터 22일까지 디트리히 알렉산더 기자의 북한 취재 기사를 여러 차례 보도했다. 북한의 정치체제, 핵 문제, 북·미 관계, 북한·시리아간의 핵 물질 거래설, 한·미 군사훈련, 휴전선의 남·북 긴장 상황 그리고 특히 지난 8월 북한의 큰물 피해 상황 등을 비교적 소상하게 보도한 것이다.
알렉산더 기자가 큰물 피해 취재 목적으로 방문한 지역은 황해북도 평산군 기탄리(그는 지탐(Ji Tam)이라 잘못 들은 것 같다) 일대이다. 평산은 평양에서 동남방 약 100㎞ 떨어진 곳이라고 썼다. 다음은 그의 기사 일부이다.
정성수(기탄리 인민)씨는 이번에는 심야에 강물이 범람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무사하지 못하리라고 보았다. 기탄리 인민위원회가 범람 위험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31살의 이 농부는 자기 집과 50m 떨어진 서흥강 강물이 자신의 지붕을 덮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정씨는 8월 13일에서 14일의 바로 그날 밤, 네 살과 여섯 살 난 두 딸을 끈으로 묶은 다음 자신도 묶고, 그의 처는 최소한의 생필품을 싼 보따리를 들고 마을 사람 100여명과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그가 낮이 돼 돌아왔을 때 거기에 자기 집은 없었다. 그 자리에는 놀랍게도 썩은 냄새 나는 진흙더미뿐이었다. 그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플라스틱과 나무판자를 모아 천막을 쳤다. 동네 사람 모두가 그랬다. 이곳 사람들은 수백 년 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북한의 대부분 지역에 8월 중순에만 쏟아진 비가 400mm 가량이었는데 이는 연중 강우량의 3분의 1이다. 서흥강의 수위는 11m가 올라갔다. 마을 사람 한 명이 죽었고, 세 명은 아직 실종 상태이다.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 전역에서 모두 250명이 익사했다.(르몽드는 600명이라 보도).
정부의 지시는 분명해 보인다. 9월 말 벼 추수 때까지 집을 다시 짓는다. 정부는 최소한의 생필품을 제공한다. 즉 옥수수, 쌀, 야채. 그러나 주택 재건축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돈, 장비, 시멘트도 줄 수 없다. 그러나 정씨는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긴 듯 밝은 표정으로 “지도자 동지가 계시는 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경애하는 지도자’라는 호칭을 가진 김정일을 보통 사람들은 쉽게 보기 어렵다. 그가 TV에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 4월 25일. 65세의 독재자는 조선인민군 창건 기념일 퍼레이드 때 등장했다. 평양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1만명의 보병과 낡은 로켓발사대가 선을 보였는데 평양방송은 일부를 손질해서 두 시간 뒤에 방영했다.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가르침(교시)은 북한인민들에게는 하나의 경전이다. 주석 자리는 아직도 공석이다. ‘영원한 주석’ 김일성은 지금도 북한인과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부모라고 믿고 있다. 이 지역 인민위원회 근처 언덕에는 20m 높이의 기념탑이 있다. 그 탑에는 “김일성 주석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쓰여 있다. 모든 북한인들은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가 새겨진 배지를 달고 다니며, 그의 아들은 아직도 다만 총서기일 뿐이다.
수재민들은 노동당 창당 기념일인 오는 10일까지 새 집을 짓고 새 마을을 건설한다. 현지의 유럽연합 봉사자들도 이를 믿고 있었다. “마을은 세워진다. 그러나 당신(기자)은 ‘어떻게’라고 묻지 않은 게 낫다”.
인민들은 당의 명령대로 공사를 마칠 것이라는 뜻이다. 북한은 이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를 개방의 신호(Zeichen der Oeffnung)라고 평가하는 측과 재난 구조를 요청할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경제난 해결을 외부에 기대보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기자들은 모두 “당국의 개방 의지”가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무튼 북한이 달라져야 하지만 우리의 대북관도 달라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크다. 남북이 함께 잘 사는 길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