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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깨달음의 노래, 해탈의ㅣ 노래<151>-깨달음의 길

불경을 접고 삼매에 들어간 경허 - 소설가 이재운

 

영운(靈雲)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불법의 대의가 뭡니까?”

영운이 대답했다.

“나귀의 일이 끝나기도 전에 말의 일이 닥쳐왔군.”

그 스님이 알아듣지 못하여 다시 설명해 주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영운이 설명을 달아주었다.

“채색의 기운은 언제나 밤에 움직이고 요정은 낮에 만나지 않느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화두를 풀기가 어려웠다.

경허는 동학사에 돌아가는 즉시 학인들을 깨워 한 자리에 모이게 했다. 그리고 불경 강의를 폐지한다면서 모두 자기 절로 돌아가도록 했다. 경허는 불경을 가르치는 강사였었다.

그 후 영문을 모르는 학인들은 하나씩 둘씩 동학사를 떠나갔다. 경허는 평소에 그렇게도 아끼던 책을 마당으로 끌어내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아무리 문자를 뒤지고 따져보아도 생사의 문제만은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문고리를 안으로 굳게 걸고 집중 삼매에 들어갔다.

“그렇다. 결국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 목숨이 다하는 날,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떻게 되는가? 왜 태어난 자는 죽어야만 하는가? 꼭 죽어야만 한다면 죽음 뒤의 세계는 또 무엇인가? 이 육체가 한낱 고깃덩이가 되어 썩어없어질 때 이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 왜 태어나 왜 죽는단 말인가?”

경허는 화두에 매달려 석 달 동안 애를 태웠다. 시퍼렇게 날선 칼을 턱 밑에 받치고 앉아 ‘만일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이 칼로 죽어버리겠다.’는 결심으로 용맹 정진해나갔다. 그러나 경허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있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쳐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 밖에서 곡식을 소달구지에 싣고 온 일꾼들이 떠드는 소리가 경허의 귀에 들려왔다.

“중이 보시를 받아먹고도 깨우치지 못하면 보시한 집의 소가 되어 죽도록 일을 하며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지?”

“공부라도 했으니 그건 좀 낫지. 공부마저 게을리하며 허송세월한 중은 콧구멍도 없는 소가 되어 그 은혜마저 갚지 못한다네.”

그 말을 듣자 경허는 온 몸이 오싹하는 듯한 깨달음을 얻었다. 자성본원(自性本源)을 깨친 것이었다. 이때가 1880년 11월, 그의 나이 31살 되던 해 그믐날이었다. 경허는 조용히 오도송을 읊었다.

문득 콧구멍 없는 소라는 말에

이 우주가 바로

나라는 것을 깨우쳤다네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서

일을 마친 야인(野人)이

태평가를 부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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