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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55>-깨달음의 길

경허의 설법에 빠져드는 한암 - 소설가 이재운

이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부딪쳐보는 기막힌 수수께끼다. 일생을 바쳐 이 수수께끼를 풀어봐도 잘 풀리지 않는 참으로 교묘하게 정제된 일급 수수께끼이다.

이 일이 바로 어린 한암을 불문에 귀의케 한 직접적인 인연을 일으켰다. 유학을 공부하던 그는 모든 걸 정리해버리고 금강산 장안사로 나아가 수도승으로 변신했다.

어느 날 그는 보조(普照)의 수심결(修心訣)을 읽다가 ‘만일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자성(自性) 밖에 법이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불도를 구하려고 한다면 몸을 태우고 살갗을 불로 지지는 고행을 하고 팔만대장경을 아무리 독송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모래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오히려 수고로움만 더할 뿐이다’는 귀절에 이르러 갑자기 추위가 엄습하는 듯한 극한 상황에 빠져들어 온 몸이 서늘하게 얼어붙는 듯했다.

그때였다. 밖에서 스님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귓전을 두드렸다.

“간밤에 장안사 해운암에 불이 나서 잿더미가 되었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암의 선기(禪機)가 불쑥 일어나 언제라도 터질 듯이 익어버렸다.

한암은 그 후 경북의 성주 청암사에서 당대 제1승인 경허(鏡虛)를 만나게 되었다. 한암은 기쁜 마음으로 설법을 청하였고 경허도 한암의 인품을 보고는 즉시 금강경의 한 귀절을 인용하여 설법을 해줬다.

“무릇 눈으로 보이는 모습은 모두가 허상이니 만일 모든 모습이 참모습이 아닌 줄을 바로 본다면 그것이 바로 불성을 보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미 익을 대로 익었던 선기가 폭죽처럼 터져 한암은 황홀한 우주의 시원을 향하여 미소를 던졌다. 한암은 반고 이전, 즉 유교의 태극이요 도교의 무요 기독교의 말씀인 천지창조의 이전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다리 밑에는 푸른 하늘 / 머리 위엔 작은 산 / 원래가 안팎이나 중간은 없는 것 / 절름발이 걸어가고 / 소경이 앞을 보는데 / 북산은 말이 없이 / 남산에 마주 서있네.

경허는 한암의 경지가 개심(開心)을 초과했다고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인정하지는 않았다. 의식의 한 과정으로 약간 높은 경지에 이르렀을 뿐 그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경허는 지적했던 것이다. 그 뒤 한암은 전등록을 보던 중 석두(石頭)의 질문에 대한 약산(藥山)의 대답을 읽으면서 다시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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