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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56>-깨달음의 길

한암, 일제치하 속 고요히 입적 - 소설가 이재운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도 하는 것이 없다.’

바로 이 귀절에서 자신의 깨달음이 깊지 않음을 자각하고 스스로 정진에 힘썼다.

그러던 중 경술국치의 해인 1910년 봄, 그의 고향인 평안도 맹산에서 보림에 힘썼다. 한암은 늘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덩어리를 안고 있는 것처럼 불안한 마음을 끌고다녔고 그 괴로움 속에서 화두를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참구하였다.

어느 날 부엌에 홀로 앉아 불을 피우던 한암은 홀연히 마음 속의 미진한 부분을 말끔하게 씻어내게 되었고 마침내 오도송을 읊었다.

아궁이에 불을 붙이다가 / 별안간 눈이 밝아오니 / 이걸 쫓아 옛 길이 인연따라 분명하네 / 누가 나에게 서래의(西來意)를 묻는다면 / 바위 아래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 젖지 않았다 하리라

한암의 나이 서른다섯이 되던 해 겨울의 일이었다. 나라는 일제에 빼앗겼지만 그는 깨달음의 빛을 얻었다. 덕분에 일제 치하에서도 우리나라 불교를 횃불처럼 높이 쳐들 수가 있었다.

말년을 오대산에서 보내던 한암의 속세 인연이 서서히 녹아가고 있었다.

마침 육이오가 발발하여 대중들은 더이상 절에 머물 수가 없었다. 한암은 대중들에게 각자 피난할 것을 지시하고 자신은 시자 한 명과 굳이 남아있겠다는 신도 한 명을 데리고 전란 속에서 절을 지키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가벼운 병 증세가 나타난 지 칠일만이었다.

“오늘이 음력으로 14일이지?”

그날따라 한암은 가사와 장삼을 단정히 입고 앉아있었다. 그때가 오전 열 시였다고 한다.

점심 때가 되자 시자가 죽을 쑤어 놓고 문 밖에서 물었다.

“죽을 드셔야지요?”

안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시자는 한암이 말할 기력이 없어 대답을 않나 보다 하고 죽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스님, 죽이 다 되었어요.”

시자는 수저를 들어 한암에게 건네려고 했다. 그래도 한암은 수저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히 여긴 시자가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좌선 자세를 조금도 흩뜨리지 않은 채 고요히 입적한 뒤였다. 천지창조 이전을 굳이 묻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경지를 체득하려던 것이었을까.

향수 76세, 법랍은 5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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