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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64>-깨달음의 길

효봉 고요히 무(無)를 외치고 입적 - 소설가 이재운

금강산 여여원에서 모든 대중이 좌정에 들어있을 때의 일이었다. 침묵이 계속되던 중 효봉이 갑자기 돌아앉았다. 평소에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참선 중에는 자세를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좌중의 선정을 방해하면서까지 돌아앉은 것이다.

까닭이 있었다. 그때 효봉의 눈에 얼핏 비친 문밖 풍경 때문이었다. 문 밖에 효봉의 친아들이 아내와 함께 절구경을 하고 있는 게 얼핏 눈에 띄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되어 자식이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이 선가에서만은 냉정하기 엄동의 쇳바람같아야만 한다고들 말한다.

효봉이 입적에 들기 전에 법정(法頂)이 물었다. 송광사의 법정 스님인 것 같다.

“스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 안 하십니까?”

“나는 그런 소리 안할란다. 지금까지 한 말이 다 그런 소리인데.”

그러고 나서 임종게를 읊었다.

내가 말한 모든 법은 / 모두 다 군더더기 / 오늘 일을 묻는다면 / 월인(月印)이 천(千) 강(江)에 비치리라.

1966년 10월 15일 새벽 세 시였다.

“나, 오늘 갈란다.” / “언제쯤 가시렵니까?”

“오전에 가지 뭐.” / 효봉은 호도알 단주를 굴리며 중얼거렸다.

“무(無)라, 무라...”

오전 10시에 문득 단주가 멎으면서 단주의 주인은 온 곳도 간 곳도 알 수 없는 생불생 사불사(生不生死不死)의 경지로 조용히 입적했다.

이윽고 산기슭을 타고 조종이 울려 퍼졌다.

열네살에 어머니를 잃고 충격을 받았다. 생사의 문제만큼 절실한 출가 동기는 고래로 없었던 것 같다. 출가자들의 출가 동기 가운데 대부분은 죽음의 문제다. 아직 스님이 되지 않은 시절의 경봉도 죽음에 대한 끊임 없는 추구 끝에 통도사에 입산했다.

사미 시절에, ‘종일 남의 보물을 세어도 자기에게는 반푼 어치도 이익도 없다.’는 귀절에 큰 감명을 받고 참선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찾아간 것이 내원사의 혜월(慧月)이었다. 혜월은 평소 그의 지침대로 경봉을 맞았다.

혜월의 질문이란 선문촬요(禪門撮要) 중에서 한 문구를 지적해서 해석을 시켜보는 것이었다. 초심자로서는 우선 한문도 어렵겠거니와 뜻을 알기란 여간 어려운 책이 아니 게 바로 선문촬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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