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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한·영욕 서린 天池 가 거기 있었다

본지 최연식기자의 ‘4박5일 백두산 등정기’

 

지난 9일 민주평통김포시협의회(회장 조진남)는 사회주의 국가연수차 중국의 백두산과 광개토대왕비, 북한과의 접경을 이룬 압록강 단동 지역 등을 탐방코자 4박5일 일정으로 장도에 올랐다. 이들을 동행 취재한 최연식 기자의 백두산 등정기를 싣는다.

연수단 일행은 9일 오전 인천공항을 떠나 심양을 거쳐 연길에 도착한 후 10일 백두산 등정에 나섰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속해 있는 연길시는 마치 우리나라의 여느 소도시에 온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한국적이었다. 모든 거리의 간판이 한글과 한자로 병행 표시되어 있었고 공영어가 한국어로 돼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길거리의 풍경이 우리와 다름 없어보였다.

연길시는 약 26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데 조선말기부터 일제시대 독립운동 등을 위해 우리민족이 대거 유입됐다.

연길시를 떠나 백두산이 있는 이도백화로 가는 도중에 민족시인 윤동주, 함석헌 등을 배출한 대성중학교에 들렀다. 학교에는 윤동주의 ‘서시’ 시비가 세워져 있었고 기념관에는 그의 육필원고와 사진 등이 전시 돼 있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시비를 보면서 바람 한 줄에 나부끼는 풀잎을 보면서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자 하는 시인의 고뇌를 새삼 가슴에 새겼다. 이 민족 앞에, 이 나라를 위해 한 점 부끄럼 없이 감옥에서 일생을 마감한 시인의 충정에 고개가 숙여졌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 우리의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해란강과 저 멀리 산정의 일송정을 마주하면서 낯설고 물설은 타향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 온 선열들의 삶을 반추해 보았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울창한 원시림을 이루고 있었다. 아침나절 빗방울이 뿌려서 어쩌면 천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으나 정오를 지나면서 하늘은 청명했고 마음은 가벼워졌다.

백두산이 가까워질수록 숲은 더욱 울창했고 금방이라도 조선 호랑이가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 반면 아쉬움이 일었다. 본래 김포평통은 북한의 삼지연을 통해 백두산 등정을 계획했었다. 그러던 것이 남북의 냉기류로 말미암아 계획이 무산되고 중국을 통해 백두산을 가게 됐다.

백두산 입구에 도착하자 ‘장백산’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북한을 통해 갔으면 백두산 팻말을 보았을 터인데 중국으로 오다보니 장백산을 오르는 꼴이 되었다. 일행은 백두산 아래에서 중국측이 제공하는 6인승 찦차에 몸을 싣고 천지로 향했다. 울창한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 10여분을 달리자 일순간 잡목이 사라지고 키작은 들꽃이 만발한 구릉지대가 펼쳐졌다.

백두의 흰 봉우리가 눈에 들어오고 백두산 아래 드넓게 펼쳐진 원시림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었다. 계곡과 능선에는 아직도 흰눈이 쌓여 있었고 이제 봄을 맞은 비탈에는 이름모를 붉은 꽃이 지천으로 피어 바람에 바르르 떨고 있었다.

옥문이 얼얼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달리는 지프차에 매달려 30여분을 오르니 백두산 산정에 당도했다. 봄 점퍼를 걸쳤지만 한기가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차에서 내려 50m 정도를 오르니 아! 하늘아래 천지가 새파란 가슴을 열고 온 몸으로 하늘을 감싸 안고 있었다.

일행은 저마다 감탄하며 천지를 활짝 열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천지는 1/3이 중국 영토, 2/3가 북한 영토로 돼 있다. 약 250년 전에 활동을 멈춘 사화산으로 둘레가 14km이고 총 16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연평균 기온 영하 8도, 눈이나 비가 내리는 날이 200일에 달해 천지를 마주하기가 매우 어렵다.

백두산 천지는 1/4 정도가 아직도 어름에 덮혀 있었으며 건너편 쪽으로 북한의 초소가 보이고 북한의 봉우리에서 천지 물가로 설치된 계단이 보였다. 새삼 내 나라 영산을 남의 나라를 통해 올라왔다는 자괴감에 슬픈 감정이 몰려왔다.

‘천지에 올라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인지 중국 관광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손을 합장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뗬다.

나도 천지를 향해 잠시 눈을 감고 조국의 통일과 건강을 기원했다.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이, 환인께서 “알았다”고 “네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대답하는 것만 같았다.

천지가 거기 있었다. 민족의 한과 영욕의 역사를 머리에 이고 꿋꿋이 살라고 배달민족 긍지를 갖고 세계로 뻗으라고 그리고 반드시 통일을 이루고 삼지연을 통해 다시오라고 손 흔들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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