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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존엄사 인정… 쉽지 않은 ‘사회적 합의 도출’

대법원 존엄사 합법화 판결 그 이후

지난 21일 대법원의 존엄사 합법화 판결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종교계, 의료계 등은 공통적으로 혼란스럽다는 입장과 함께 존엄사의 남용을 막기 위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의료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병원 등 의료업계에서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이같은 판결이 의료계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각 지자체와 관련 단체의 입장을 들어보고 해외 사례를 통해 향후 방향을 짚어본다.

●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

지난 21일 대법원은 치료가 더 이상 불가능한 환자가 자기결정권에 근거해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갖도록 존엄사가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며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77·여)씨 가족이 세브란스 병원 운영자인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 청구소송’에 따른 판결이다.

대법원은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 중단은 생명 존중의 헌법이념에 비춰 신중히 판단해야 하나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할 때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연명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 존엄을 해치게 되므로 환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또 “환자는 사전의료지시서 등의 방법으로 미리 의사를 밝힐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평소 가치관, 신념 등에 비춰 객관적으로 환자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인정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해 2월 폐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직검사를 받다 과다출혈로 뇌사에 가까운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었다.

● 인권단체, 종교계와 의료계의 엇갈린 반응

최선의 의학적인 치료를 다했음에도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존엄사로 일컫는 반면 안락사는 인위적인 행위에 의한 죽음을 뜻한다.

그러나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 약물 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인 소극적 안락사를 넓은 의미에서 존엄사 판결과 같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도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존엄사와 관련해 아무런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가 존엄사를 원했을 것으로 추정했다는 점에서 의료계, 종교단체 등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인권단체, 종교단체 등은 안락사 등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김정범 집행위원장은 “기계에 의한 삶의 연장과 약물에 의한 삶의 연장 모두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어 이번 판결이 의료계에 혼란을 줄 것이 분명하다”며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한국 사회에서 이번 판결을 빌미로 존엄사가 남용되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주교회의 관계자는 “카톨릭은 기계 장치에만 의존해 죽음의 시간을 미루는 행위는 반대해 왔지만 이번 판결로 소극적 안락사로 오인해 회생 가능성이 있음에도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의료계의 경우 극히 일부병원을 제외한 대부분 병원에서는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말기 암환자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등 세 가지 연명치료 항목에 대해 의사를 표시할 수 있도록 했고 서울아산병원도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심폐소생술 거부(DNR) 동의서’를 받고 있다.

특히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대형 병원에서는 유일하게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뇌사환자 ▲여러 장기가 손상된 환자 ▲식물인간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 환자들에 대해 환자와 가족의 동의, 의료위원회의 판단을 거쳐 존엄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료계에서는 혼란스럽다는 입장과 함께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원 내 아주대병원과 성빈센트병원의 경우 뇌사나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가 발생할 경우 뇌사판정위원회 등 윤리위원회를 열어 수술여부 등을 결정하고 있지만 존엄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타 병원들의 동향을 주시한다는 입장이다.

동수원병원의 경우는 존엄사 판결 수용여부에 대해 일체 공개하지 않는 등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존엄사 허용, 외국은 대부분 인정.

네덜란드는 지난 2002년 4월 세계 최초로 존엄사와 안락사를 합법화한데 이어 주변국인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도 뒤이어 이를 인정함으로써 베네룩스 3국은 존엄사와 안락사에 관해 국제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지역으로 분류된다.

다만 ‘혼수상태나 뇌사상태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능력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경우’는 안락사에 해당되지 않는다.

반면 외국 대부분의 경우 존엄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94년 오리건주가 처음으로 존엄사를 법적으로 인정한 이후 존엄사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둘러싼 법적 투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소극적 의미의 존엄사는 전체 50개주 중 40개주가 용인하고 있다.

일본은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눠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분류했으며 현재 존엄사에 대한 법제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존엄사에 대해서는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반면 안락사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독일의 경우 안락사는 물론 존엄사도 판례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인정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률이 미비한 실정이어서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존엄사 허용 확정 판결을 내렸으며 스위스는 적극적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소극적 안락사와 자살협조 행위는 허용된다.

● 존엄사 허용, 무엇이 필요한가?

존엄사를 인정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의료계에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존엄사를 합법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존엄사의 남용을 막기 위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수원의 성빈센트 병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인해 일부 의료계에서 생명경시 풍조로 변질될까 우려되고 생명의 존엄성이 걸린 민감한 사안인 만큼 병원 측에서도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구체적 법이나 규정이 없어 무리가 따르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경기도 의사회 관계자는 “병원에서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해 명확히 구분 짓고 환자의 특성에 따른 생명연장에 대한 결정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규정안이나 법제화가 필요하다”며 “아직 이르지만 충분한 검토를 통해 국가정책차원의 제도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대한병원협회 서석완 기획실장도 “병원별로 윤리위원회를 열어 개별적으로 세부규정을 만드는 등 이번 판결에 따라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병원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정부차원에서 종교계, 시민단체, 의료계를 통합한 대대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의견을 같이했다.

다산인권센터 김경미 상임활동가는 “존엄사 인정 판결에 따라 의료계에서는 혼란을 겪을 것이 분명해 법제화나 규정마련이 시급하다”며 “이를 통해 의료계에서도 혼란 없이 존엄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여론을 지켜보고 법제화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한 뒤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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