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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과천향교 개방사업

올곧은 선비정신 100년만에 빗장열다

 


“論語(논어) 안연(顔淵)편을 아느냐”
“예, 아옵니다”
“읽어보아라”
“비례물시(非禮勿視)하고, 비례물청(非禮勿聽)하며, 비례물언(非禮勿言)하고, 비례물동(非禮勿動)이라 하옵니다”
“그 뜻을 새겨보아라”
“예절이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며 말하지 말며 움직이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향교(鄕校)는 성균관과 함께 우리나라 전통시대의 교육 중추를 맡아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한 곳이었다.
조선왕조의 건국이념으로 자리 잡은 성리학(性理學)의 활성화를 위해 태조(太祖)는 즉위 원년(1392년) 향교 설치를 명했다.
1398년 시흥현 서이리에 창건된 시흥향교는 잇단 화재에다 인재가 탄생되지 않자 1688년 관악산 자락인 현 위치(과천시 중앙동 81)로 옮겨 지은 후 과천향교로 개칭, 나라의 동량을 길러냈다.
그 후 1910년 조선을 합병한 일제는 민족성 말살정책을 폈으나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유림들의 반발이 녹록치 않았고 이에 향교의 교육기능을 아예 없애버렸다.
존재가치를 상실한 과천향교가 빗장을 걸어 잠그고 기나긴 침묵의 세월로 빠져든 것도 이 즈음이다.
<편집자 주>

향교가 폐쇄된 지 한 세기가 흐른 올해 정월 초 과천문화원에선 과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최종수 센터장(과천문화원 원장)과 오은명 부위원장(한뫼국악예술단 단장)이 머리를 맞대고 유쾌한 모의를 했다.

테이블에 차 한 잔을 놓고 원장실에서 대면한 두 사람이 이날 나눈 대화의 주제는 향교 개방사업.

시흥, 안양, 군포, 의왕 등 7개시의 본향인 과천향교를 중심으로 교육의 본 기능을 회복시켜 우리 것을 지키고 끝없이 추락하는 도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자는 취지가 출발점이었다.

성공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자신감은 과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지난 2년간 어린이와 노년까지 폭넓은 층에게 문화예술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기여한 축적된 노하우였다.

‘향교 날개를 달고’란 그럴듯한 이름을 단 프로젝트는 그해 5월 11일 첫걸음을 뗐다.

백 년 동안 굳게 닫힌 대문이 활짝 열리는 가슴 벅찬 순간인 동시 아이들의 글 읽고 시조 읊는 소리가 관악산 기슭으로 낭랑하게 퍼져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프로그램은 교과와 연계한 ‘우리 춤’, ‘우리 향교’, ‘우리 색’, ‘우리 글’, ‘우리 음악’ 바로알기 등 다섯 갈래로 나눴으나 이들 지류의 합수머리엔 전통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에다 특화프로그램인 ‘효 체험’을 가미했다.

고객층은 우리 것을 알고 지키는 미래 주역인 학생과 일반인을 동시에 아울렀다.

참가자들은 종묘 문묘 재향 때 열을 지어 추는 일무(佾舞)를 관람하고 혹은 참여하면서 선현들의 문덕을 기렸고 강학공간의 중심인 명륜당, 문묘 대성전을 둘러보며 옷매무새를 다시 한 번 여미었다.

춘추 석전대제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은 훗날 어린 시절의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쌓았다.

중학생들은 대나무 잎과 치자, 울금, 단풍나무 잎 국화, 모시 잎을 이용한 천연염색 체험은 자연이 만든 곱디고운 색상에 넋을 빼앗겼다.

곧고 바른 선비들의 정신이 담겨있는 가곡, 가사, 시조 등 정가(正歌)를 따라 부르고 배우면서 지조와 절개가 배여 있는 가락을 익혔고 대금, 세피리, 해금, 거문고, 가야금 등 전통악기에도 슬며시 손을 얹어보았다.

사군자를 칠 양이면 교실 가득히 배여 나오는 묵향에 취해보고 행서와 초서를 쓰면서 번잡한 마음을 추슬렀다. 과천 출생으로 조선시대 대표적 효자인 최사립을 기리는 뜻에서 마련된 ‘가족과 함께하는 효 체험’에선 공연, 백일장, 그림대회, 한시짓기 등을 통해 부모와 아이 할 것 없이 효를 실행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엄마는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며 반가워했다.

10년 전부터 명맥을 이어오던 유교경전 교실과 여성 예절교실도 개방을 계기로 피치를 올렸다.

특히 여성 예절교실은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또 한 번 실감케 하는 현장이었다.

30여개의 책상이 놓인 교실은 7개시 주민들이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우려고 달려온 60, 70대 늦깎이 학생들로 항시 붐볐다.

지난 1일 시흥에서 먼 발걸음을 한 김성숙(62)씨는 “예절을 한 구절이라도 더 배워 실천에 옮기려 한다”고 했다.

겨울초입인 11월까지 진행된 향교개방화 교육에 참여한 인원은 총 3000여명.

7개월간 이들은 우리 것에 대한 이해와 소중함을 가슴깊이 새겼다.

이들 중엔 홈스테이로 과천에 잠시 머문 외국 관광객도 매듭공예를 배우고 자신의 고국보다 훨씬 앞선 지방교육 현장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의 반응은 만족 일색이다.

이상훈(과천중 1년)군은 “천연염색이 화학염색과는 질과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체험은 참으로 소중했다”고 했고 김희진(과천초 3년)양은 “선비들이 입던 옷과 모자도 쓰고 참가한 석전대제는 의미깊었다”며 “조상들이 남긴 과천향교를 더욱 더 알려 우리 고장이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형주(과천중 1년)군은 “최사립 선생이 아버지가 먹고 싶다는 수박을 못 구해 드린 것이 한이 맺혀 평생 수박을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소감을 말했다.

함선용(별양동) 주부는 최근 가슴 짠한 편지를 받고 눈시울을 붉혔다.

‘매듭으로 엮어주는 사랑과 감사의 편지’ 코너에 참가한 남편으로부터 생전 처음 받아본 편지엔 예쁜 매듭과 함께 글귀 말미 ‘사랑한다’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함씨는 부부의 사랑을 더욱 깊게 했다며 향교에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향교, 서원 아카데미화를 위해 경기문화재단이 추진하는 명예교장도 전국 향교로선 최초로 극동대학교 유택희(77) 이사장을 추대, 앞으로 학생들의 참여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종수 센터장은 “올해 경기문화재단과 과천시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많은 학생과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체험과 효 문화를 심어주었다”며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엔 개방사업을 더욱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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